할머니에겐 너무 힘든 목욕

by 열음

할머니를 엄마 집으로 모시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목욕이다. 할머니는 장루 환자이기도 하고, 방광암 말기 환자이기도 하고, 방광암 때문에 혈뇨를 보고 있어서 빈혈 환자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일과 중 대부분이 어지럽고 매 시간 손, 발이 차다. 추위에 약한 할머니에게 겨울은 매우 취약하다. 그리고 고약하다. 건강한 나 조차도 샤워하고 나오면 추운 게 싫어서 샤워를 고민하는데, 할머니가 목욕 하기 싫은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할머니는 매일 목욕하지 않는다. 집에만 있어 더러워질 일도 없고, 나이가 많아 유분기가 심하지도 않다. 머리는 3일에 한 번 정도 감고,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 하면 된다.


할머니가 혼자 살던 집은 오래된 옛날 복도식 아파트이다. 34평에 거실이 엄~청 크고, 안방도 그 다음으로 큰, 전통적인 아파트 구조이다. 화장실은 1개, 1개라 그런지 크기가 넉넉하다. 욕조가 없어서 바닥이 넓다. 할머니는 커다란 빨간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고, 아파트 보일러 온도를 왕창 높여 놓는다. 아무도 볼 사람이 없으니 편하게 다 벗고 목욕을 했겠지. 목욕을 다 하면 물기가 한 방울도 남지 않게 싹싹 닦아낸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체력이 떨어졌으니 다시 잠을 청한다.


혼자 목욕하는 걸 본 사람이 없다. 특히, 장루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머니가 춥지 않게 목욕을 하는지. 목욕 의자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목욕바구니는 어떨 때 쓰는지. 할머니가 엄마 집까지 오기 오래 걸렸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목욕 때문이니까.


할머니가 12/24 에 집으로 왔으니 혼자 목욕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어제 저녁 큰 맘 먹고 할머니를 목욕 시켜주기로 했다. 보통 집보다 따뜻하게 해 놓은 우리 집에서도 할머니는 내복 바지, 내복 상의, 수면잠옷 상의, 수면양말을 입고도 춥다고 한다. 그래서 거실에 나와 있을 때면 뜨끈한 돌침대에 담요를 덮어주고 식탁에서 식사를 할 때면 망토 담요를 위에 둘러준다. 그러면 그제서야 춥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니, 목욕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할머니가 춥지 않게 해주는 것이었다. 거실, 할머니가 쓰는 방, 중간 방 보일러 온도를 30도로 틀어놓는다. 화장실 보일러가 없어서 화장실에는 온풍기를 틀어 공기를 훈훈하게 만든다. 할머니가 입을 옷을 미리 전기장판에 데워 놓는다. 씻자마자 큰 수건을 둘러줘야해서 큰 수건도 준비한다. (남편이 집에 가서 가져다줬다. 항상 고맙고 미안한 내 편) 빨간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할머니가 씻는 동안 발을 담그도록 한다. 이제 준비 끝.


할머니를 목욕시키는 건 엄마가 한다. 아직도 할머니는 벗은 몸을 손녀에게는 보여주기가 싫은가보다. 온 몸을 가리기에 바빠, 엄마만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럼 나는 무얼하냐고? 기다린다. 화장실에 틀어 놓았던 온풍기를 화장실 복도쪽으로 옮겨서 나오자마자 따뜻하게끔 틀고 할머니 방에 있는 가습기를 틀었다. 엄마가 무언가 필요하다고 할지 모르니 화장실 앞에서 서성이며 대기한다. 샤워기 물소리가 끊기고 할머니 목욕이 끝났다. 수건으로 돌돌 감아 할머니를 방으로 데려가서 옷을 갈아 입힌다. 나에게 끝까지 장루는 보여주지 않았다.


"기저귀는 파란색 선 그어져 있는 부분이 뒤쪽이야."


엄마가 나에게 설명했다. 내가 해야 할지도 모르니 설명한거겠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할머니 목욕이 무사히 끝났다. 집에서 가져 온 온풍기가 큰 몫을 했다. (온풍기를 선물해주신 옆반 부장님께도 항상 감사합니다.) 휴.. 다행이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욕을 하니까, 할머니가 목욕을 딱 50번만 더 하면 좋겠다. 1년만 더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 엄마가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


[할머니와 소소한 즐거움]

-할머니와 커피

일찍 퇴근하고 할머니가 배고플까 허겁지겁 밥을 차려주러 엄마 집에 들어갔는데, 할머니가 한 손에 커피캡슐을 들고 있었다.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려 먹으려고 했다고.. 내가 아는 할머니는 절대 커피머신을 내리지 못할 것 같아서 "커피 먹으면 잠 못 자서 안돼~"하고 슬쩍 뺏고 얼른 밥을 해 드렸다. 써서 커피를 안 마실텐데.. 혼자 생각하며 할머니 밥 먹는 걸 지켜보고 약 삼키는 것까지 다 보고 일어났다.


저녁에 백패커2 재방송을 보다가 햄버거와 콜라를 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할머니의 한마디.. "커피 맛있겠다." 할머니가 괜히 커피 캡슐을 들고 있던 게 아니라는 생각에 믹스커피를 타서 갖다드렸다. 내가 선물한 잔에 따뜻한 믹스커피를 담으니 두 손으로 잡아 호호 불어 먹는 모습이 참 아기같았다. 곧 80살이 되는 할머니가 아기 같다니 이상한가? 그렇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할머니가 정말 아기같다는 것이다. 커피를 다 들이키고는 너무 맛있다며 웃는 모습에, 하루 한 잔 커피를 허락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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