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달라지는 할머니

by 열음

12/24 처음 엄마 집으로 온 할머니는 3끼에 과일까지 챙겨 먹었고 끼니 때가 되면 배고프다며 부엌에 나와 있었다. 30~40분에 한 번 화장실에 갔고 혼자 옷을 갈아입고 양치도 하고 세수도 했다. 거실에 나와 tv를 보거나 나랑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길었다.


오늘 아침 출근해서 엄마랑 카톡을 하는데, 어제 밤에는 기저귀를 하고도 이불을 버렸다고 한다. 전기장판을 깔아놨는데 젖을까봐 실수한 후에도 침대 밖으로 빼놨다는 할머니. 새벽 4시에 이불을 갈아주면서 엄마는 방수 매트리스 커버를 주문했다. 잘 흡수되는 기저귀도 찾아 주문해본다고 했다. 요즘 할머니를 위한 장바구니 목록이 점점 늘어난다. 푹 잠에 들면 실수를 해서 옷을 갈아입으며 이불을 빨아야 하고 잠에 들지 못하면 10분마다 화장실에 가야 하는 삶이라니.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할머니의 작은 몸이 안쓰러웠다.


스스로 소변을 가리기 힘들어진 할머니는 무슨 마음일까. 이제 마음이라는 것도 없을까? 할머니의 얼굴은 너무 지쳐 아무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1/8 병원 예약할때 가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지금 미리 가봐야 기다려도 진료 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아직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할 만큼 아픈 게 아니라고 한다. 할머니를 위해 소변줄을 꽂는 게 좋을까. 소변줄을 꽂을 수는 있을까. 소변줄을 거부한다면 계속 화장실을 다니는 게 맞을까. 하나의 질문에도 수만가지 답변을 떠올리고 뭐가 더 나은 선택인지 곱씹고 곱씹게 된다.


어제 저녁 8시쯤 종일 누워있던 할머니가 거실로 나왔다. 하루 종일 먹은 게 없으니 배가 고프기도 했겠고 가족들이 한 데 모여 있으니 함께 있고 싶었겠지. 된장찌개가 속이 편해서 먹고 싶다는 말에 없던 된장찌개를 10분만에 만들어내며 '제발 빨리 익어라.' 바라고 또 바랐다. 할머니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다 끓은 된장찌개와 밥을 주면서, 한 숟가락이라도 편하게 먹었으면 했다. 내가 끓인 된장찌개랑만 밥을 먹는 할머니에게도 고마웠다. 고등어 살을 발라놓았는데 딱 한 입이었지만 그거라도 씹어 넘겨줘서 고마웠다. 원래 반 공기는 기본으로 다 먹었는데 반의 반 공기를 먹더라. 먹기 싫다는 듯 밥그릇을 밀어 놓길래 체리를 할머니 앞으로 밀어 놓았다. 체리 5알을 닦아서 차지 않게 식탁에 올려 둔 건데, 할머니가 체리, 딸기, 포도는 좋아한다. 체리 5알 중 4알을 먹고 또 화장실을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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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가족 앨범을 들여다보며 나와 동생 어렸을 때, 엄마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사진을 봤다. 사진 뒤에 날짜와 장소를 적어놓은 과거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역시 꼼꼼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밥을 먹고 답답한 마음에 콜라를 꺼내 먹었는데 할머니의 시선이 멈췄다. 생각해보니 추위를 잘 타는 할머니라 차가운 물이나 음료를 준 적이 없었다. 시원한 음료를 얼마나 벌컥벌컥 마시고 싶을까. 작은 컵에 콜라를 따라주니 너무 맛있고 소화가 잘된다며 마시길래 집에 콜라를 더 사다놔야겠다고 생각했다.


잠깐, 희망적이었다. 할머니가 이렇게 웃으며 식탁에 앉아 이야기 하는 날이. 내일도 다시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침에 엄마 이야기를 들으니 어제도 죽을 힘을 다해 앉아있었을 할머니에게 미안했다. 나는 아무 힘이 들지 않는 일도 할머니에게는 안간힘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가끔 보여주는 할머니의 행복한 표정이 다 잊게 만든다.


혹시나 할머니가 침울해져서 울었냐고 물어봤는데, 울 기력도 없어 보인다고 했다. 참, 누구라도 붙잡고 원망하고 싶다. 고통 없이, 삶을 정리하는 할머니를 보고 싶었는데 그것까지도 내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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