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kg. 3알. 6개. 다시 3알.

by 열음

행운의 숫자가 3이라고 했던가. 아니다. 네잎클로버가 행운이니 다시 행운의 숫자는 4인가? 3이 행운의 숫자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다.


33kg. 할머니의 몸무게이다. 할머니의 키는 나랑 비슷하다. 아마 150초반에서 중반정도? 표준체중이 50kg라고 쳐도 할머니는 17kg나 모자라다.


할머니가 언젠가부터 살이 급격하게 빠졌다. 살이 빠지는 게 암의 전조증상이라는 걸 알았지만, 할머니는 나이도 많고 이미 투병을 했기 때문에 그 여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설마, 암으로 장기를 많이 도려내고 장루 주머니를 달고 사는 할머니에게 암이 들어설 틈이 있을까? 삶에 두 번이나 시련을 주시려나 싶었다. 몇 년 전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을 때부터 몸이 좀 쇠약해진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이상했다. 명절에나 생일날 함께 만나면 누구보다 밥을 맛있게 드시고, 회 한 점 더 먹으려고 하는 할머니가 살이 빠진다는 게. 끼니 때가 되면 먹고 싶은 게 생기고 홈쇼핑을 보다가 전화로 엄마에게 주문해달라고 하는 할머니인데, 살이 왜 빠질까?

그때 병원에 데려갔어야 했나.


장루가 있으니 상태가 나쁘면 혈뇨를 가끔 본다고 했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거다. 병원 안 간다. 괜찮다. 할머니의 말을 믿었다. 고집 센 할머니를 꺾어서라도 병원에 갔어야 했나.


할머니를 부축해주려고 팔을 잡기라도 할 때면 내 손이 닿는 곳이 아플까 조심하게 된다. 그 정도로 정말 뼈와 가죽만 남았다. 할머니의 옷을 입힐 때 척추뼈가 하나하나 만져지고, 다리가 젓가락 같다는 말이 할머니를 보고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한 입만 더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 밥상에는 항상 할머니가 좋아하는 과일을 씻어 놓는다. 차가운 건 또 싫다고 해서 따뜻하게 만들어 놓느라 미리 체리 꼭지를 따고, 두어 시간 상온에 두면 할머니가 좋아하는 따뜻한 과일 완성. 어제는 조금 욕심을 내서 방울토마토 3알, 체리 6개를 씻어놓았다. 체리에 시선이 머물면 "하나만 먹어볼까?" 유도해서 한 개만, 한 개만 더.


체리에 있는 씨를 툭 뱉어내다 내 옷에 튀었는데 하나도 화나지 않았다. 더 힘차게 뱉어 거실 사방에 튀었으면. 와구와구 먹어줬으면. 뭐가 먹고 싶다고 해줬으면.


과일 옆에는 약 3알을 꺼내 놓았다. 한 개는 장루에 설사가 나오지 않도록 먹는 지사제, 한 개는 소변을 편하게 볼 수 있는 약, 한 개는 혹시나 통증을 감소시켜줄까 싶어 놔둔 진통제. 3알도 한꺼번에 꿀꺽 삼킬 수 있는 나와 달리 할머니는 한 알씩 천천히 먹는다. 한 번에 이어서도 아니다. 한 알을 먹고, 한참 쉬었다가 다시 한 알을 먹는다.


엊그제 콜라를 한 입 먹고나서부터 밥 먹고 콜라가 땡기는지 콜라가 먹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가 "콜라.."라고 했는데 남편이 "걸레! 걸레 갖다드려!"해서 "아니아니 콜라." 하며 한참 웃었다. (오빠 혼자 있을 때.. 귀를 열고 잘 들어주기를 ㅎㅎ) 콜라랑 약을 삼킨다는 말에 안된다고 했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도중 몰래 삼킨 할머니. 먹고 싶은 게 과일이나 씹어 먹는 게 아니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콜라가 먹고 싶다는 건 너무 좋은 일이다.


앞으로 체리, 딸기, 포도, 방울토마토를 보면. 콜라를 보면. 된장찌개를 보면. 할머니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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