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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 귤 넣은 사람은 누구?

계단 세 개가 있었을 뿐.

by 리꼴

"살려주세요!"

"사람 있어요!"


목이 쉬어서 더는 울 수도 없었다.

그들은 나를 이곳에 가두고 가버렸다.

간밤에 방 두 칸이 전부인 우리 집엔 외가에서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이쳤고, 너구리굴마냥 줄담배를 피우고 막걸리를 마시며 아싸리판을 만들더니 대충 겹쳐 쪽잠을 자고 식간에 사라졌다.

서울에서 결혼식이라도 있을라치면 친가 외가 모두 거쳐가는 대합실이, 이곳, 우리 집이었다. 서울역이 가깝기도 했고, 행당동 큰 이모가 이민을 간 후로는 큰집 작은집 외삼촌의 자식들까지 올라와 짐을 풀었고 취업이 되거나 결혼을 하면 짐을 꾸려 떠났고, 그다음 타자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행당동이모와 바통터치를 한 엄마는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친가 고모와 함께 자신의 조카들을 언니와 내 방에 나란히 재웠다. 그들은 먹고 자고 싸는 모든 동선이 나와 겹쳤고 잠귀 밝고 예민한 내가 괴팍한 어린이가 되는데 일조했다.


왜들 시골 친척들은 이렇게 자식들을 많이 낳았으며 그들은 어째서 방 두 칸짜리 이 가난한 집의 문턱을 자꾸 넘어오는가, 해서 그들 때문에 나는 더 바깥으로 나돌았고 다락방에 숨어들었다.


"엄마 이제 다 보내!"


내 그런 호소는 씨알도 안 먹혀 나는 언젠가 소심한 복수를 하리라 다짐을 했고,

큰외삼촌의 큰딸 즉 내 스물두 살 먹은 이종사촌을 언니와 힘을 합쳐 다락방에 가버리기에 이르렀다.


"문 열어 문 열어 안 열어? 니들 다 죽을 줄 알아!"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온 이종사촌언니는 어느 공장을 다녔는데, 월급의 대부분을 옷과 가방 구두를 사는데 썼고 또 흔치 않은 코 성형을 감행하기도 한 멋쟁이였다. 그런 그녀는 월급날 게 용돈을 준 적이 없었고 바쁜 아침에 오래 씻었으며, 오 년 전 올라온 같은 또래 내 친고모를 실없이 잘 웃고 먹성이 좋다는 이유로 무시했다.


수시로 오가는 객들 때문에 엄마는 김장을 산더미처럼 했고 나는 초겨울 마당에 쌓인 피라미드를 닮은 풀 죽은 김치의 둔덕을 씁쓸하게 바라보 누렁이와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 배추들은 앞으로 꾸역꾸역 닥칠 누군가의 얼굴이면서 그들이 우적우적 집어삼킬 내 자유의 다른 이름처럼 여겨, 나는 몹시 우울해졌다.


결혼식이 있거나 초상이 났을 때도 이들은 떼로 몰려왔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


외가 쪽 장손이 인 뺑소니 사고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일이 벌어진 후 척들은 부리나케 올라와 우리 집에 모였는데 NSC긴급회의 같은 모양새였다. 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빠져나가려던 나를 아빠는 뒷덜미를 낚아채 오늘은 나돌아다지 말고


재떨이를 비우라


고 말했고 친척들의 어두운 얼굴과 그들의 화를 엿들으며 그 진지함만으로도 뭔가 엄중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유?"

"그만햐"

"우쨘댜"

"뭐여?"


대개가 이런 말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NSC 별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피해자 측과 합의를 하지 못해 오빠는 수감이 됐고 충청도 양반들의 생의 주홍글씨가 돼버리고 만 것.

그런데 라운 사실은 그가 되려 그곳을 나온 더 쾌활한 사람이 됐다는 이었다. 오빠는 출소한 후 우리 집에 얼마간 머물렀는데 그때 엄마가 차려준 밥상머리에서


"오빠가 거기서 목으로 짱 먹었잖"


라면서, 밥풀로 까맣고 하얀 바둑알을 만들어

오목을 두었던 소회를 해맑게 밝힌 것이었다.

마치 무전여행을 잠시 다녀온 거처럼.

밥풀을 돌돌 말면서.



그러니까 간밤에 들이닥친 그들의 최종목적은

그 집의 밥풀 장인, 오빠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장손의 흠결 때문이었는지

외가식구들은 쪽수로 세를 과시하려 한 듯, 이웃한동네의 장정들까지 싸그리 몰고 올라왔다. 다락방에 가둔 적 있던 사촌언니는 동생의 결혼식에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반짝이 재킷을 입고 나타났고,


큰외삼촌은 기 몸집보다 더 큰 양복을 입고 행동대장처럼 나타나 일부는 우리 집에 그리고 일부는 근처 몇몇 여관으로 보내는 등 일사불란하게 들을 두지휘며, 장손의 기를 살려주려 애썼다.




너무 사람이 많아, 그들은 나를 잊은 게 분명했다.

한창 시끌시끌한 때 나는 슬그머니 다락방에 기어올라왔고 빨랑 저들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잠이 든 것이었다.


결혼식장에서 과연 내가 없다는 걸 그들이 알기나 할까. 안다고 해도 가족들은 그리 걱정하진 않겠지. 나는 항상 어딘가를 쏘다니거나 숨어드는 아이였으니까.

언니는 친구집에 놀러 갔고 동생은 식장으로, 그리고 나는 이곳에,

갇혔다.


누군가 혹시 엄마에게 이수는 어딨어요?라고 물어봐준다면, 엄마는 다락방에 잠든 나를 떠올리며 아뿔싸, 문을 잠그고 왔네 하며 달려왔을까.


"걔걱정 마! 어딘가에 잘 있겠지!"

이때 못된 사촌언니가 끼어들어 그렇게 말진 않았을까.

어쩌면 나를 가둔 사람이 혹시 반짝이가 아니었을까.



내가 다락방에서 눈을 떴을 때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건 확실했다.

배가 고팠고, 계단을 내려가 문이 잠긴 걸 알았을 때만 해도 사실...... 그리 겁을 먹지 않았다.

환한 대낮이었고 누군가는 나타나 열어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요일이었고, 마당 넓은 집에는 네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으며 다락방엔 손바닥만 한 창이 하나 나 있었서 얼마든지 구조요청이 가능하다고......

잠시 믿었던 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여기 사람 있어요!"


적막.


"도와주세요!"


적막.


"사람 살려! 제발 살려! 살려줘!"


적막.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해가 졌다.


다락방엔 흐릿한 전등이 하나 매달려 있을 뿐.

해가 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나는 누군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진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수시간을 벽을 치고 창을 흔들고 창틈으로 머리를 끼워 넣으려 애써보고 물건들을 던져봤지만 지구종말의 날처럼 이 마당 넓은 집엔 인기척 없이 고요만이 흘렀다.

잠시 누렁이가 컹!하고 짖을 뿐.


"누렁아 누렁아."


그렇게 나는 누렁이를 부르며 울었다.


게다가 이 동네는 작든 크든 아이들 울음소리가 트라이앵글의 파열음처럼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곳이었기에 나는 불리한 여건에 있었다.


그렇게 쉼 없이 울부짖다가, 목구멍에서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올 즈음에서야 울음을 멈췄다.


그리곤 드러누워 낮은 천장을 바라봤다. 창으로 작은 빛이 새어들었다. 창을 뜯고 나가려 시도하다가 창틀이 어긋나는 바람에, 그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왔고


조도 낮은 백열등 아래 나는 거의 반시체가 돼 숨을 헐떡였다.

몇 번 안방 전화가 길게 울렸지만 끊어졌고,

나는 희망을 포기한 채,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빛이 사라진 뒤 나타날 그것들 때문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해가 지면 다락에서 내려와 집안을 어슬렁거리는 이 반쯤 잘린 귀신들을 수도 없이 상상했고 그것들이 실제 한다고 믿었고, 하여 불면에 시달렸다. 그래서 얼마 전 담장을 마주한 교회의 주일학교에도 등록을 한 판이었다.


'하나님 발 십자가의 힘으로 이 공포에서 나를 건져주세요.'


이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서서히 트렁크를 열고 끼기긱 소리를 내며 기어 나올 그것들에게 얼굴이 찢기고 눈알이 튀어나오고 머리채를 뽑히며 사지가 잘리는 그런 상상 머리속을 회오리치며 윙윙거렸다.


뿐더러 갖은 짐들을 부려놓은, 천장낮은 다락방은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떼굴거릴 정도의 좁은 공간으로

내 관짝이 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한 줌뿐인 빛이 완전히 사라졌고, 창틈으로 황소 같은 바람이 들이쳤다.

나는 부려놓은 짐들 사이 트렁크를 열고 오래된 보자기를 한 장 꺼내, 망토처럼 두르고 덜덜 떨리는 턱과 정신을 한데 모아 마지막 투혼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먼저 주기도문을 외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러다가 다시 쥐어짜서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제발요 저 죽어요! 아아아 아아아"


목소리가 나왔는지 바람 빠지는 피융피융 소리만 났는지 모르지만


인기척이 들렸고 문이 열렸다.

2층에 사는 주인집 아줌마였다.


"아니 하루종일 어디서 애 우는 소리가 나긴 하는데,

설마설마했는데 세상에.

아가, 종일 여기 있었니?"



아줌마는 빨간 보자기를 원더우먼처럼 두르고 콧물눈물이 범벅된 이 모자란 아이를 두 손으로 번쩍 안아 세상밖으로 꺼내주었다. 나는 내 뒷목을 기다란 손톱의 빨간 귀신이 확 낚아채려는 서늘한 기운을 떨치고 얼른 아줌마의 목에 두 팔을 감쌌다.



티비에선 연말 시상식이 한창이었고,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기절한 듯 잠이 들었다.


"아니 애를 다락에 놓고 간 에미가 말이 돼?"

아빠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애가 종일 울었다는데 (가여워라)

아니 근데 다락문이 왜 잠겼을까"

하는 엄마의 목소리도 들리고


어둡고 서늘한 다락방의 세 칸 계단 아래, 이곳은 너무도 가운 곳이었는데


아홉 살 나는, 과 어둠의 경계

고작 세 개의 계단

그 성찰이 쓸쓸한 것이도 하여


누군가 내게 쏙 귤한쪽을 입에 밀어 넣어주 바람에

다시 올라오려던 속울음이

스르륵 내려가됐다는,


긴 겨울밤.

린 시절 다락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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