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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한우와 고양이 두 마리

살아는 있어요, 아무 걱정 말아요.

by 리꼴

이른 기차를 타고 엄마에게 갔다.

고양이 두 마리와 엄마마당 가운데 서 있었다.

"왔니?"

엄마가 반갑게 말을 건네자 고양이들이 순식간에 뒤뜰로 달아났다.


난 귤 한 박스를 현관에 부려놨고 엄마는 입꼬리가 올라가서는 귤을 실버카에 싣고 마을회관으로 사라졌다.

거실에선 은행냄새가 났다.


어느새 거실 창틀 밖에 앉은 냥이 두 마리가 나를 히 바라보고 있었다. 빛이 눈부셔 게슴츠레

'넌 누구냐?'고 묻는 듯하여


'너흰 팔자 좋구나',라고 응수하였다.


그때 밖에서 토바이의 그릉그릉 소리가 났고

"계세요?"

라고 묻는 말과 동시에 쿵 소리가 나더니 그릉그릉 소리가 멀어져 갔다.



계세요, 하던 택배 기사가 떨군 건 홍성 한우였다.

냥이 두 마리와 눈이 딱 마주쳤고, 나는 녀석들을 피해 얼른 한우를 안고 들어왔다.



혹한이었다.

헌데 영하 10도라지만 햇빛이 내리쬐는 창가는 쨍한 냉기를 피해 간 아랫목 같은 고요 자리 잡고 있어 냥이 두 마리의 기지개 켜는 소리며(관절소리) 먼지가 풀썩하는 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자식들이 내려올 때마다, 마을회관에 한 박스씩 사 온다는 로컬 농협판 귤을 엄마는 내게 꼭 사 와야 한다고 전날 두 번이나 전화를 했다. '세일하는 굵은 거 말고 26900원짜리로 사야 한다 반드시. 반드시.'



역에 내려 어깨를 옹송거린 채 십 분쯤 걸어올라 간 농협 마트는 물건이 듬성듬성했고, 난 안경에 뽀얀 김이 서려, 엄마가 말한 26900원짜리 귤을 찾는데 애를 먹는 중이었다.


5킬로에 만원 하는 귤박스들을 뒤로하고 안경을 셔츠로 닦아가며 26900원짜리 귤을 찾아 나섰지만



직원이 내게

"만 원짜리 사세요! 오늘까지 세일이에요!

한 번 드셔보세요"라며 내 입에 바짝 한쪽을 권하는 바람에


26900원짜리 귤을 찾는 내 두뇌의 흐름은 툭 끊고 말았다.

"그 귤은 없을 거예요, 이걸로 하세요"

직원은 내 앞을 막아서고는 그렇게 말했

나는 꼭 찾아달라고, 반드시 그 귤이어야 한다고 직원에게 사정을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26900원의 귤을 받아 들었다.



마을회관에 건너간 엄마는 돌아올 기미가 없었고

다시 나타난

냥이 한마리는 배가 볼록해 굼떴지만 호랑무늬는 창틀에서 폴짝 바닥으로 반원을 그리며 내려앉며 나를 구석구석 훑는 눈치였다.


볼록한 녀석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와 아이컨텍을 하며, 끝내 놓쳐버린 한우의 아련한 동선을 쫓는 그 새,


드르륵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가

'귤이 너무 맛있다며 할마씨들 반응이 아주 좋았!'라며 목청을 높이는 바람에 돌아보 냥이들은 사라져있었다.


"한우가 왔는데?"

그러자 엄마는 팔짝 뛰면서,

"아니 뭘 또 보냈다니?"


하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공에 손등을 나풀나풀리며

앞으론 그러지 말라 상대에게 당부 또 당부를 하며 전화를 끊 것이었다.


내용인즉,

반년 전 건넛집 김 씨 노인이 숨이 떨어진채 마당에 쓰러져 있는 걸 엄마가 발견했고, 그 즉시 119와 이장과 목사님에게 차례로 전화를 넣나서는,


마당 화단에 걸친 인의 머리와 얼굴이 흙범벅 피범벅이 돼 있어, 러번 수건을 적셔와 얼굴과 손발을 닦아주었다는 거였다. 노인은 수년간 중풍을 앓았고 여러번 넘어져 고비를 넘겨왔는데 그 마지막 낙상의 현장을 마가 발견한 것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시간이 흘러, 고인 집의 Cctv를 돌려본 아들이, 119에 신고를 하는 든살 먹은 구부정한 엄마가 부엌과 마당을 드나들며 노인의 얼굴과 손발을 닦아준 장면을 봤고 그 뒤로 벌써 몇 번째 과일과 고기를 보내온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게 뭐라고, 이 비싼 걸."


엄마는 김 씨 노인이 너무 더러워서

그렇게 차를 태워 보낼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간도 크지."


나는 엄마가 죽은 사람을 만졌다는 게 싫었지만...... 홍성한우 때문에 적어도 300그램 정도는 가벼워졌을 김 씨 노인의 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나는 창밖에 다시 나타난 녀석 때문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근데 는 하루종일 저기에 앉아 있어?"


"저 자리가 명당이잖어"


그때 생활지원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마을회관에 와있다며 엄마의 건강상태와 안부를 묻는 듯하였다.



한참 까무룩한 냥이 때문인지

정수리에서부터 식간에 졸음이 쏟아져내렸다.



감길랑 말랑한 그 사이로

엄마


"그래요, 오늘은 살아있어요. 아무 걱정 말아요."

하는 목소리가

떠지지 않는 눈자위에 아른아른거려


나는 다소 안심이 되었......


냥이가 아직도, 여전히 창가에 있는지,

몹시 궁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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