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비둘기와 끽연에 관한 소고
"아니 내가 말했잖아요! 할마시 새 밥주지 말라고요!"
사내와 할마시는 서로 휠체어에 앉은 채 시퍼런 광선을 쏴가며 기선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야! 이 썩을 종자야 내가 새 밥 주는 게 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뭐가 문제가 된다는 거니 맘씨를 더럽게 쓰니 발이 날아갔지 이런 천하의 잡놈"
그러니까 이 개싸움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푸른 스카프에 빨간 립스틱을 바른 하얀 할머니가 간병인과 함께 옥상 휴게실에 나타난 건, 모두에게 허락된 공평한 한 뼘씩의 자유를 누리는 각별한 점심시간 직후였다.
이미 끽연 크루가 구석에서 연신 담배를 펴대고 있었고, 조선족 간병인 크루는 옥상을 빙글빙글 돌며 고단한 팔다리에 땜질을 하는 등, 제각각 고유한 세계에 빠져 들어 있었다.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화단의 꽁초를 줍고 누구는 유튜브를 보고 누구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남들과 같은 일상을 누리는 가상공간 같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된 엄마는 오전 내내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밥술을 뜨는 둥 마는 둥 옥상에 나가 햇빛을 보자고 채근했다.
그렇게 우리 모녀는 커피를 들고 앉아 공항 가까운 요양병원 위를 바짝 나는 커다란 비행기의 배꼽에 쓰여있는 숫자나 영문을 웅얼웅얼 거리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소음과 관계없이 비행기는 이곳에 발목 잡힌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이란 희망의 원형 같은 거였음으로, 소중했다.
그리고 마지막즈음에 등장하는 백발의 그녀는 휠체어를 탔을 뿐
세팅한 헤어와 단정한 손톱 그리고 세련된 머플러와 검버섯 없는 하얀 얼굴에 붉은 립스틱까지 요양병원만 아니라면 한남동 브런치모임에 앉아 대장 노릇을 했을 그런 위풍당당함을 풍겼다.
그런 그녀가 옥상을 천천히 한 바퀴 돌고 나서, 불시에 뿌리기 시작한 것은 한 줌의 쌀알이었다.
쌀알을 뿌리자마자, 하늘에선 메추라기와 만나가 떨어지듯 비둘기 떼들이 옥상 바닥에 내리 꽂혔고 그건 마치 히치콕영화 속 '새무리'를 연상시켰다. 그녀와 가깝게 앉아있던 우리 모녀는 비둘기 떼가 너무 느닷없어 두 손으로 머리통을 가린 채 '이것들은 다 뭔데?' 하는 눈빛을 황황히 교환했다. 가끔 비둘기가 내 엉덩이 옆에 배를 깔고 내게 '비켜라', 하는
상황까지 치달아,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 새떼들에 관한 사람들의 반응을 읽어보려 하였다.
어디 숨어있던 새들이었을까, 오묘했다.
"귀엽죠, 나를 알아보는 애들은 얘들뿐이에요."
그녀는 우리와 친해지고 싶어 했지만, 엄마는
시끄러운 사람이라며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허나 우리 모녀는 비둘기들이 망쳐버린 오수의 나른함이 애석하기보다도
십 년 가까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그녀의 투명한 말투와 가지런한 치아를 바라보며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발휘해 중력방향으로 머리를 주억거려 주었던 것이었다.
끽연 크루 사이에서 더러
새들 땜에 더러워 죽겠다는 투덜거림이 새어 나오긴 했지만, 곳곳에 가래를 뱉고 꽁초의 분진을 날리는 일과 셈셈으로 치듯 번번이 작은 투정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그날 사내는 달랐다.
"나는 새가 싫어서 닭발도 안 먹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일갈을 날린 사내가,
그녀를 노려보며 바닥에 퉤! 침을 뱉었을 때 난 둘 사이에 튀는 불꽃을 보았다.
그날따라 쌀알을 더 현란하게 흩뿌리는 그녀의 손끝은 날아가는 비행기의 꼬리부분과 닿아있어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낭만과는 별개로 비둘기들은 끽연 크루들의 발치에까지 기어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기에 이르렀고,
당뇨환자인 사내가 그녀를 쏘아본 것과 동시에
휠체어의 바퀴는 사정없이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사물함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저귀처럼 권태는 사라질 기미가 없었고
그래서 나와 크루들에겐 이 개싸움이,
의미가 있었다.
"잘들 논다."
엄마가 그만 들어가자고 내 팔을 툭툭 쳤지만,
난
좀만 더 보구,라고 말했다.
육탄전을 벌일 듯 욕설로 먼저 판을 까는 와중에
그녀를 향해 돌진하던 휠체어가 간발의 차로 멈춰 서고, 비둘기들이 늘어진 뱃가죽을 들어 옆으로 빠졌다가 다시 날아들다가 말다가 하고 있었으며,
힘줄 붉어진 사내의 관자놀이와 팔뚝과 불콰한 얼굴이 그녀의 하얀 얼굴과 대비되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고 나는 초집중해 싸움의 맥락을 짚어보려 하였다.
우리 모두는,
누가 먼저 선빵을 날릴지 초조하게 기다렸고, 하여 사위는 고요했다. 비둘기들만이 푸닥거릴뿐.
엄마는 내 팔을 잡아끌며 그만 들어가자고,
다시 인상을 그었다.
마지못해 엄마를 쫓아가며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 말란 말이요 할마씨!"
하는 사내의 허스키한 괴성이 들렸고
다시,
"여긴 공동 구역인데 왜 새똥천지를 만드냔 말이요! 대체 왜왜왜"
"이 잡놈아 내 맘이다! 니가 버린 더런 꽁초 내가 다 주웠다!"
이둘의 투닥거리는 말들은 유리문에 닿자마자 바닥에 떨어졌고,
나는 그들의 한판승이 궁금했지만
창너머로
비둘기들과 휠체어를 탄 사내와 할마씨가
뿌옇게 보일뿐.
그 둘은 여전히
목을 길게 빼고 손을 사방으로 흔들고 있었는데
그 둘 사이를 비둘기들이 날아다녔고,
햇빛도 적당해
돗자리만 깔면
소풍 나온 모자(母子)처럼
여겨질 만하였다.
유리문 너머로 고개가 자꾸 돌아갔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둘의 사정보다 그저 승부(누가 먼저 머리채를 잡았나)가 알고 싶었던
대낮,
비둘기와 끽연에 관한 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