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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다시 부르기

1982년, 오하이오 랩소디

by 리꼴 Feb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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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조용필로 들끓었다.

동네 아줌마들은 우리 집에 모여 테이프가 늘어 때까지 바느질을 하며 조용필을 듣고 또 들었다.

뜨개질 부업이 성행했고,

그녀들은 아침밥을 먹고 득달같이 모였다.


금세 머리와 옷에 하얗게 실이 내려앉고, 그녀들의 대바이 창에 든 햇빛아래 지그재그로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조용필 문을 열었다.


"기도하는!"

그렇게 비련의 첫 소절이

쨍하게 울려 퍼지면


삼십 대의 그녀들은 대바늘을 정수리까지 치켜들며 빠! 오빠! 를 환호했다.


오빠.


조용필 최초의 팬덤은

어쩌면 이곳 봉천동의 마당 넓은 집,

뜨개질 크루들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짐작하는 바이다.


나는 학교를 다녀와 엄마 옆에 붙어 앉아 저녁나절까지 함께 조용필의 노래를 같이 들었고, 작게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겨울방학 연례행사처럼 내려갔다.

간이역 가까운 외가엔 소 다섯 마리와 돼지 다섯 마리가  열명 남짓되는 대가족과 함께 살았다.


나는 이 집 소들 다른 집 소들보다 더 우렁차게  울어

성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여물통과 소들의 얼굴을  간간히 들여다보도 하였다.



참으로 느릿느릿 시공간이었다.

역사에 나가 기차를 구경하거나 외양에 소들을 바라봤고



마침,

사촌오빠가 금성 카세트 플레이어에 꽂아놓은 공테이프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데,


이것은 어쩌면 무료한 겨울 한낮의 치트키였던 셈으로

배를 깔고 누워, 심심풀이 땅콩으로

그곳에 조용필의 노래를 육성 녹음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나는 이미 뜨개질 크루들과 조용필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수없이 들었던 터였고,

그래서 살짝은 변주까지 가능한 상태였다.

바이브레이션을 넣는다던지 노래가 끝날 때 음을 질질 끌어 여운을 남기는 식으로.


그리고 겨울방학이 끝났고

다시 도돌이표처럼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대바늘 잘돌아가,

그곳으로 나는 돌아왔,


그 심심했던 겨울을 었다.

 


그런 어느 날,


오하이오로 이 년 전 이민을 간

이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시차를 무시하고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였고

요금이 비싸 부고가 있을 때만 주고받던 통화였는데


이모는 엄마에게 안부를 고는 바로

나를 찾았다.


"이수야! 빨랑빨랑 큰 이모! 미국미국! 요금 많이 나오니 빨랑빨랑 일어나서 전화받아 얼른!"

호떡집에 불난 식으로 엄마는 나를 흔들어 깨웠고 나는 울듯이 일어나 전화통을 붙잡고 섰다.


"여.. 보.. 세.. 요"

"이수니?

큰 이모야."

"......"

"니가 부른 조용필 때문에 이모가 너무 행복해

우리 친정집 기차소리랑 외양깐 소리까지.

너무 고마워 이수야. 여기 교회사람들까지 다 같이 듣고 있어"


그러면서 조용필의 '일편단심민들레'의 몇 소절을 허밍으로 조금 불렀고 콧물이 나는지 훌쩍였다.


내가 그날 녹음했던 테이프가 어떤 사연으로 오하이오  시골 동네까지 가게 됐는지 그것보다도,

이모가 왜  밤중에 비싼 전화를 걸어와

훌쩍이는지 인들이 찬송가도 아닌 아이가 부른 조용필의 노래를 듣는지 아리송할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이모는 혼자 한참 뭐라 뭐라 말을 했는데

그 이후의 말들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전화를 끊고 엄마는

"돈이 얼마나 나올 거야! 세상에!"

하면서 나를 심각하게 바라봤던 그 표정만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타국으로 이민 간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곤 했던 카세트테이프는 

편지보다 생생하고 전화보다 요금이 저렴했으며 온 가족의 목소리를 다 담을 수 있으니,

실속 있는 이템이었다.

 

내가 불렀던 조용필이

가족들의 목소리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오하이오 앞마당에 어떻게 가 닿았지는 모르겠지만


이모는, 향수병으로 지친 심신에

큰 위로를 받 듯 보였다.



한인교회에서 돌려가며 내 노래를 듣는다는 풍문은 

뜨개질 크루에게까지 아들었고

그녀들은 오빠가 세계적인 스타가 된 듯,

아이처럼 기뻐했다.


"이수 넌 커서 꼭 가수가 돼라!"


그녀들은 조용필과 나를  동시에 응원했다.


소들이 중간중간 '음메' 코러스를 넣고

마침 지나던 기차 관악기처럼

내 목소리에 음영을 드리웠던 그 현장을

나는 오래도록 각별 기억했다.



놀라운 세상.


2025년 조용필을 떠올리며.

오래오래, 사세요.

나의 가왕 조용필.


(노찾사, 사계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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