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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라디오

다음 생엔 뱅앤올룹슨

by 리꼴 Mar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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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술 인생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술술술 인생이 나락 가는 사람도 있었다.


내 아빠.


아빠의 음주이력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이른 나이에 발화됐다. 혹자는 1966베트남 파병 즈음 참전한 스물세 살 때부터였을 거라 했지만 난 친모 홀로 자신을 놓고 떠났던 일곱 살 칠흑 같은 그날 밤,  부뚜막에서 비롯됐을 거라 짐작하 바이다.


아빠는  어릴 때 할아버지가 받아놓은 술을 마신적이 있다고 지나는 말로 내게 실토한 적이 있었고,


여섯 명의 배다른 동생들과 새엄마 사이에서  술을 마시며 외로움을 이겨냈을 거라, 는 상상하곤 했다.


이후 베트남에서 돌아와 엄마와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낳고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그의 음주이력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여행을 갔던 아들이 사고사를 당한 그 날이후, 다시 시작됐다.

헤라클레스 맷집의 소유자였던  하루아침에 바람 빠진 공기인형처럼 박에 숨이 죽었다.


용산의 모여고에 다녔던 나는, 바람 빠진 아빠를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학교를 가기 전 재떨이를 비우고,  물을 떠다 놨으며, 잘 잡히지 않는 라디오의 표준 Fm주파수를 잡았고 스채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한강대교를 지나며  작고 어두운 방에서 그림자처럼 일어나 구부정히 앉아있을 아빠를 상상했다. 그나마 고물 라디오라도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수업이 끝나고 다시 한강을 지나 집에 돌아오면 일나 간 엄마를 대신해 열무를 씻어놓거나, 세탁기를 돌렸 아빠가 좋아하는 현인(가수)이 티비에라도 나오면


"아빠, 현인 나왔어!"


하며, 바람 빠진 그의  살가죽을 흔들어도 보았다. 


이미 사업에 망한 아빠는  강남의 모 아파트 경비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동생의 사건 이후 강남아파트의 여러 곳을 떠돌았다. 술병을 숨겨놓고 마셨고 주민들과 싸웠. 아빠의 사정을 알고 부조금을 보내왔던 착한 주민들도 손바닥만 한 경비실바닥에 배를 까고 누워 잠든 아빠를 더는 감당할 수 없었, 이제 아빠는 방에 들어앉아 자신의 그 옛날 부뚜막으로 돌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모두에게 하찮고 귀찮은 존재였다.



경비일에 잘린 날은 백팩을 질질 끌고, 골목을 걸어 들어오곤 했는데 아빠의 가방에선 경비 옷가지와 컵, 신문, 모자, 선데이 서울 같은 잡지 나부랭이가 그의 망가진 내장부속처럼  널브러졌고 나는 그것들을 주워 어두운 아빠의 방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오래된 골드스타 라디오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평소와 똑같던 주일 저녁었다.

예배를 다녀온 나는 재떨이를 비우고, 물을 떠놓고, 그가 숨을 쉬고 있는지를 확인했.


그런데 문득 계시처 방안 가득 들어찬 술냄새

그의 날숨과 들숨 그 사이

지긋지긋하다기보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길을 잃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고



해서, 라디오를 부쉈다.



라디오가 박살이 났을 때 난 드디어 숨구멍이 트인 기분이었다. 그리고 잔해 아래 누워 있는 아빠가 죽었으면 바랐다. 



재떨이와 물컵과 그의 목울대(숨 쉬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을 대봄)와 라디오와 주일 예배가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 누가 묻는다면 를 살리고 싶었노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 긴장의 연속선상에서 나는 라디오를 힘껏 던졌고, 그 가여운 녀석은 아빠의 얼굴과 가슴팍에 파편처럼 떨어져 내렸다.

놀란 아빠가 뭐라 뭐라 웅얼거렸다.


"이 시끼, 이 시끼, 아빠 라디오를 왜 부쉈냐."


나는 이 장면을 수십 년간 되돌려보고 되돌려봤다.

그건 후회라기 보단,



우린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진실.



아들을 잃고 작고 어두운 경비실에서 그나마 자신을 위로해 줬을 오래된 라디오가

내 손에 운명을 다했던 그 시간. 그의 뱃가죽 위에 떨어진 파편들은 전우의 시체를 밟고 살아남았던 오래전 타국의 참호 속 현장 뭐 그닥 차이가 있을까마는.




브런치 글 이미지 1

기억의 뿌리를 뽑아내 다시는 얼씬대지 못하게 할 비법이 있다면,

이터널 선샤인 조엘이 썼던 투구를 써서라도 이 장면을 밀어내고 싶은 여러 밤들이 있었다는 고백을 이제야 한다.



라디오를 부수고

나는 오랫동안 미안함을 가졌다.

아빠의 라디오는 그날 이후 여러 전파사를 거쳤지만, 잡음 때문에 이전의 몸으로 돌아가진 못했다.

나는 전파사 아저씨들에게 제발 고쳐달라고 애걸했지만,

벌어진 일은 벌어진 거였고,



하물며 라디오도, 아빠도 살려내지 못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커피를 마시며 뱅앤올룹슨 스피커에서 흐르는  티끌만 한 잡음도 없는

이 세계가


전장에서 홀로 살아남은 게는

......



너무 차갑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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