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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어딘가에 놓고 온 내 단추

내가 놓고 온 단추, 우산, 볼펜, 수첩...... 사람들.

by 리꼴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시댁가까이 있는 공원이었다.

한겨울 뼈마디에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날이었고 그날 유적지는 온기라곤 하나 없이 버려진 유원지 같았다.

1998년 아이엠에프 금융위기의 정점을 지나, 남편이 뉴질랜드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울 우린 화순 고인돌 공원을 갔다. 시부모님들에겐 금융위기에 이 생에선 다신 만날 수 없는 좋은 직장 때려치운, 답답한 아들 내외였음으로 우린 눈치를 살피다가 '여기 고인돌 공원 있는 거 알아?' 하는 남편의 말에 '어! 그런 데가 있었어?', 하며 반갑게 공원으로 향한 것이었다.



한겨울이었고, 공원은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지구종말의 날 같다"고 말해놓고 나니

종말을 맞는 장소가 고대 무덤가라는 게 좀 그럴싸해 보여 나는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우린 천천히 수많은 고인돌을 무슨 보물 찾기를 하듯 하나씩 둘러보았다. 조금 크거나 납작하거나 둥글거나 모난 돌덩이 돌덩이들이었다. 우린 그저 별말 없이 걸었다.


회색 코트를 입었던 나는 목까지 단추를 잠갔지만, 뼛속까지 찬기운이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남편과 나는 무슨 막대한 임무를 부여받은 요원처럼 수천 년 전 무덤들의 사연을 캐는 그런 진지한 표정으로 영혼들을 훑어갔다.


걸어가는 길가엔 잔돌들이 많아 걸을 때마다 짜갈짜갈하는 소리가 났다. 전 세계에 7만 개 고인돌 중 4만 개가 우리나라에 있고 우리가 걷고 있는 이곳에만 2만 개가 있었다. 이곳에 어떤 연유로 이 많은 돌무덤이 모여있나. 가는 길엔 채석장마저 보였다. 나는 선사시대에서 현재까지의 시간이란 게 일초 이초가 아닌 누군가 자의적으로 강약강약 조절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거대한 2만 구의 무덤은 사연이 켜켜이 있을 터이지만, 우린 집으로 돌아가 빨리 먹고 살 일에 관해 머리를 맞대야으므로, 그들의 사연에 멈춰 설 맘의 여유가 없었다.



"추워?"

"아니 전혀."


우리는 앞으로 맞닥뜨릴 현실이 날씨보다 더 추울 거란 걸 짐작했기에, 서로 거짓말을 했다.

가도 가도 돌덩이뿐.

이 큰 돌덩이를 이고 지고 이곳까지 온 사람들의 그 길 위에 우린 서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 핑매바위는 무려 200톤에 달했다.

받침돌마저 없어 그 아래 누운 시신은

후회막급할 터.


이 돌을 떼어내어 이곳으로 끌고 오기까지

동원된 사람들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였다.

영원히 닳지 않을 자연물에 기댄, 죽어서도 세등등한 당신들,

그 속편함이 슬쩍 부럽고 생각하는 찰나

남편이

"그만 가자."고 나를 채근했다.


우린 부모님께 전화로 인사를 대신했다.

차에 타자마자, 나는 졸음이 쏟아졌는데

목덜미께가 선선해 보니, 단추 하나가 사라져 있는 게 아닌가.


"어! 내 단추.

단추 떨어졌나 봐."

"가서 비슷한 거 하나 사서 달면 되지."

그러면서 남편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듯 바로 시동을 걸었다.

나는 차에서 내내 목덜미를 만지며 돌무더기 사이에 떨어져 있을 내 '단추'를 생각했다.

"아, 가서 찾아볼......"



그렇게 우린 돌아왔다.

'경제가 최악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보자, 우선 올라가자마자 신문과 우유를 끊자, 건강하니 뭘 못해! '

뭐 이런 잡다한 얘기를 늘어놓는 남편에게 응응,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고인돌왕국에 놓고 온 내 단추,


플라스틱 내 동그란 단추.

내 단추 위로 쌓일 시간들을 생각다.

자꾸 생각하다 보니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거 같았다.

고작 단추였는데...... 그랬다.

썩지도 않을테니,



외롭겠다

내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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