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움에 관한 소고
어느 날 갑자기
정수리부터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가려움증이 돋아났다.
염병 혹은 깃털처럼.
누군가에게 말하기엔 너무 소소한 데다, 느닷없었고, 시와 때를 가리지 않아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발가락이 가려웠던 그 지점이,
밤이었는지 낮이었는지 비가 왔는지 바람이 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이 때문에 장례식장에서조차 슬픔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울다가 긁고, 육개장을 퍼 나르다 긁고, 누군지도 가물가물한 상객들과 맞절을 하며 계속 발가락을 비비 꼬았고 맞절한 상대가 등을 보이면 방이나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박박 긁었다.
그러니까
정수리에서 시작된 가려움이 겨드랑이와 가슴, 허리와 사타구니로 내려왔고
마침내 언니가 죽은 날,
급기야 발가락을 내어주었던 것이다.
불특정한 어느 봄날,
나는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일평생 처음 맛본 듯한 고요였고 부드러운 공기였고 오늘 죽어도 충만한 하루였다. 하루를 48시간으로 쪼개 쓰기에 급급한 일상 가운데 천천히 걷고 콧노래를 부르며 내 자유를 침범당하지 않은 기쁨에 겨운 시간 바로 그 지점,
공원 중턱에서 정수리에 깃털 같은 소소한 가려움이 느껴진 것이다. 그리곤 소소한 가려움이 맹렬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릴 적 간절히 기다리던 소풍날, 뇌우가 내리 꽂혔던 이른 아침을 맞닦뜨렸을때 느꼈던 그 서늘한 기분이랄까, 뭔가 사달이 나려는구나......
내 촉이 그랬다.
누군가 간지러움은 갱년기의 전조라고도 했고,
또 누군가는 간이 안 좋냐 물었으며, 최근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지 않았는가 산책 중 벌레에 물린 것은 아닌가, 어려서 자주 앓던 종기와 관련이 있나, 편식이 심해 면역체계에 문제가 생겼나, 뜨거운 물에 두세 시간씩 반신욕을 즐긴 때문인가, 아님 혹시 키우는 개로 인한 발작적 알러지인가.
가려움은 그날 이후 너무 가열차서 가렵지 않은 시간이 과연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네이버에 구구절절 가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투척했고 현실에선 병원을 찾아 헤맸다.
병원마다 비슷하게 받아온 스테로이드액제를
시도 때도 없이 발랐지만 그때뿐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샤워기에 머리를 맡기고 서있거나 얼음물에 머리통을 담갔다. 그리곤 상상했다.
어쩌면 피부 아래
나 몰래 기어들어갔을 벌레가 까놓은 알들이 부화해 꿈틀거리는 장면을.
실제로 나는 유년시절 시골에서 놀다가 귓속으로 뭔가가 들어와 박혔고, 밤마다 귓속에서 그놈이 몸을 비틀며 서서히 말라죽어가는 현장의 소리를 생생히 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녀석의 실체가 불분명해
마땅히 하소연할 대상이 없었다.
"엄마...... 귀에서 맨날 부스럭 소리가 들려"
바쁜 엄마는 밥을 잘 안 먹어서 그런 거라며, 눈을 흘기거나 귀속에 후! 하고 바람을 불어넣어 주고는 일을 하러 나갔고, 해서 나는 놈이 내 한쪽 귀에 무임승차한 걸 알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그 곤충의 사체는 3년이 흘러 귀에서 빠져나왔고 나는 그 까맣고 동그란 사체를 목도하고 나서야 내 한쪽 귀가 뚫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양쪽귀로 듣는 선생님의 풍금소리와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얼마나 입체적인가, 이것은 새로운 차원의 세상이 아닌가. 나는 양쪽귀를 팔랑거리며 운동장을 마구 뛰어다녔던가.
그래서 이 가려움의 진앙지가
그 소풍 같던 봄날, 정수리에 내려앉은 어떤 곤충의 저주? 공격 이런 게 아니었을까, 로 거슬로 올라갔던 것이다.
여하튼 가려움과의 사투가 길어지려는
그 지리한 와중에,
갑자기 언니가 죽었다.
노모를 이끌고 장례식장을 잡고 십수 년 전에 한번 봤던 사람들까지 들이친 그곳에서
얼굴을 알듯 말듯한 누가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말을 하면
나는 미간을 좁히며
'그러니까요'라고 답을 했다.
번번이.
답을 할 수 없었고
더 길게 말을 하려고 해도 나는 계속 발가락이 가려워 이 모호한 관계와 시간들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면 후련하겠다고 생각했다.
떠나거나 남은 손님들을 바라보며
미지근한 육개장에 엄마가 남긴 밥을 말아먹았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발가락을 긁으며
'언니의 발'을 추모했다.
영안실로 내려가기 전
침대에 방치된 언니의 발은
물기와 핏기가 빠져 200미리쯤 돼보였다.
뱀파이어가 대충 빨아먹고 던져놓은
속살 없는 꽃게 발처럼 보였는데,
내가 원통했던 건......
언니의 발이 너무 무기력해 보였다는 사실이다.
몸에 뭔가를 주렁주렁 달고 있고 입에도 호스를 물려놔서
그녀는 중환자실에서 발가락이 가렵거나 등짝이 가려웠을 때 어떤 호소도 할 처지가 아니었거니와,
비명을 지르기에 언니의 발은
너무 작고, 하물며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언니와 나는 싱글침대에서 사춘기를 지나 20대 중반까지 함께 잤는데
떨어질까 봐 내가 벽에 바짝 붙으면 언니는 내 등짝에 또 바짝 붙어 그렇게 노련하게 잠을 자야만 했다.
가끔 쌍욕을 박으며 머리채를 틀어쥐고 싸우기도 했지만
서로 등을 자주 긁어주던 그런 사이였다.
언니는 무지막지해서 발바닥에 난 내 티눈마저
얍! 기압소리와 함께 커터칼로 쓱 도려내는 그런 맷집의 소유자기도 했다.
나는 발가락을 긁으며 나를 찾아왔던 여러개의 종기(언니가 죽기살기로 짜주었던)와 티눈들의 기억과 함께,
언니를 추모했다.
장례식장 육개장 대파는 어째서 이리도 멋대가리 없이 큰가.
발가락은 계속 가렵고 잠은 오지 않고
마른 장작 같던 그날밤
가려움에 관한 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