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내가 사는 아파트는 재래시장과 퍽 가깝다.
덕분에 수시로 시장통을 가로지르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973년 관측이래 가장 평균기온이 높다는 올여름,
총각네과일가게 고양이 제리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녀석은 상인들 뿐 아니라,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인기다.
이 폭염에 갸르릉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종일 누워있는 게 일이지만 녀석의 느긋함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구의 녀석이 하는 일이라고는 가끔 몸을 뒤집거나 기지개를 켜고 가게 주변을 한 바퀴 휘둘러보는 일뿐인데도 제리를 모두가 좋아한다.
그에 반해 맞은편 생선가게 아저씨는 금방 녹아버리는 얼음 때문에, 맘이 편치 않다.
생선위에 얼음을 아무리 올려도 금세 녹기 일쑤여서, 속수무책이다. 해서 흐물흐물한 전복을 뒤집는 아저씨의 손끝은 여름내 시무룩할 예정이다.
그 옆 떡집에선 여름 내내 옥수수를 판다. 어릴 적 뻥이요! 기계처럼 가마의 커다란 뚜껑이 열리면 훅! 김이 솟구치고 그 사이 떡집 할머니의 굽은 어깨와 얼굴이 까무룩히 보인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전혀 표정변화가 없다. 그래 여름이구나 그래 가을이구나 그래 겨울이구나 하는 무심함이랄까. 뭉툭한 손은 오늘도 화로의 커다란 솥과 함께 뜨거운 열기를 그저 받아들일 뿐,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까.
햇빛이 내리 꽂히는 시장통을 오가는 행인들 역시 숨이 가쁘다. 한 손에 쥔 음료와 얼굴이 동시에 녹아내릴 것 같고 그래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티비에 방영된 적도 있는 인기 탕수육 가게 젊은 사장님은 지열과 고온의 기름 사이에서 아스라해 보인다. 아지랑이인지 기름연기인지 모르겠는 그 활활 거리는 튀김솥 앞에서 그는 이온음료를 단숨에 끝까지 들이켜보지만, 더위에 일하는 손끝이 무디게 느껴지는 건 별수 없다.
또 건너편 정읍 갓김치와 겉절이를 파는 최근 입점한 가게의 부부는 방금 머리채를 잡고 싸운 사람들처럼 냉한 기운이다. 그저 무연히 지나는 행인들을 바라보는데, 여자의 '하! 지겹다'하는 맘속 볼멘소리가 짐짓 들리는 듯도 하다.
그렇게 시장통에서 후끈 달궈진 얼굴로 들어와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호러영화 한 편을 본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컴컴한 거실 에어컨은 23도로 유지.
외딴 도로. 클랙슨을 한번 울렸다는 이유로 여자가 덤프트럭에 쫓긴다. 아무리 따돌려도 더위에 들러붙은 껌처럼 다시 나타나는 괴한. 그렇게 쫓고 쫓기다가 여자가 죽는다. 클랙슨 한 번에 왜 이런 원한이 생겼났는 지 알 수 없고 괴한은 여자를 난도해 죽이자마자 다시 사냥을 나서는데.
이게 끝?
헌데 영화가 끝난 까만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이 무척 낯설다. 콜타르처럼 아스팔트에 축 늘어진 영화 속 여자의 볼때기와 닮은 저 여자가 나란 말임?
그러니까,
나를 흉내 내는 여자가 볼을 어루만지고 있는 이 시각 바깥 기온은 37.5도.
이리 허망히 늙어버리다니.
그저 같은 건 폭염뿐.
끈적거렸고 습했고 곰팡내 났던 나의 20대, 그 폭염의 길목에서
나는 작은 lg 비디오비전 앞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있다. 방은 어둡고 그곳엔 이블데드와 캔디캐인, 버닝 같은 호러영화를 보며 여름밤을 지나는 자매가 있다.
언니와 나는
폭염 내내 호러 비디오를 빌리러 집 근처 비디오가게 문턱을 넘었다. 기다렸던 테이프가 눈에 띄면
'앗싸!' 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득달같이 뛰어들어 왔던 반지하 작은방.
더운데도 무섭다며 보풀난 이불을 뒤집어쓰기도 했던 언니는 영화가 끝나면 냉동실에 얼려놓은 얼음수건을 가져와 내게 던졌고, 내가 '앜!'하고 소리를 지르면 '스트라이크! '라며 웃었다. 침대는 둘이 눕기엔 작아서 모로 누워야 했지만 겨드랑이에 낀 얼음수건이 녹기 전에 잠들어야만 했으므로 '야! 녹기 전에 빨랑자!'라며 서로 채근을 했던 기억.
열대야에 수건은 금세 풀이 죽어 미지근해졌고
땀에 절어 새벽잠이 깨면 하나뿐인 안방의 선풍기를 아빠 몰래 들고 나와 혀가 쭉 빠진 강아지(카스)앞에 놔주고는
싱크대에 얼굴을 박고 목덜미에 찬물을 맞았던 그 어둠 한가운데 내가 있다.
그리고 시간은 흐른다, 다시 맞닥뜨린 어느 날 내 마흔 살 폭염 속, 나는 어느 노인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여주 5일장)
엄마가 살던 D빌라 3층
80대 칼갈이 노인이 나무아래 펼쳐 놓은 녹슨 칼, 무뎌진 칼, 길쭉한 칼, 납작한 칼들이 햇빛에 빛이 탕탕 튀어 오르던 눈부신 정오,
노인의 목덜미와 이마의 주름사이에 고여있다 흘렀던 땀방울을 기억한다.
나는 노인에게 두 번 김밥과 박카스를 사다 줬는데, 라면박스를 뜯어 쓴
'칼 가라요'라는 문구를 고쳐주진 못했다.
한 자루에 2천 원.
말기암 걸린 딸을 데리고 살았던 노인은 유난히 더웠던 2013년 폭염의 기세에 눌려,
'칼 가라요'널빤지와 칼을 자전거 뒷좌석에 올리고 페달을 밟는 동시에 기우뚱했고,
즉사했다.
노인은 얼린 페트병을 목덜미에 대고 숨을 자주 헐떡거렸고 몇 자루의 칼을 갈다 보면 얼음이 반토막난 병의 물을 벌컥 마셨다. D빌라의 주민들은 노인이 딸보다 먼저 죽어 다행이라고 말을 했지만, 난 노인의 죽음이 아까웠다.
에어컨 없는 방, 딸을 위해 커튼을 닫고 머리맡에 떠다 놓은 물과 얼음 물에 말아놓은 밥. 작게 잘라놓은 빨갛고 노랗고 푸른 젤리 몇 개가 남았고, 딸은 더위에 눌어붙은 젤리를 다 먹기 전 노인의 죽음을 알았을 터였다. 딸은 그 방에서 반년정도 더 살았다.
나는 가끔 노인의 칼가라요와 노인이 잘라놓고 간 끈적한 젤리들, 그리고 얼음수건과 몇 분이 지나면 끼끼긱 영화 속 괴한의 덤프트럭처럼 소리를 내곤 했던 고물 선풍기가 떠오른다.
내 폭염의 기억들은 이렇듯 끈끈하고 텁텁한 것들이지만
총각네청과집 제리는 오늘도 내일도 이 여름이 끝나도록 능청스럽고 천하태평일 터이고,
나는 그래서
우리가 폭염을 대하는 자세가 이러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포토그래퍼 나경희 냥냥이 시리즈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