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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May 23. 2023

새벽 기상은 킥보드다.

AM 5:30 몰입의 시간

새벽기상을 시작한 지 꼬박 3개월째다. 이제야 확실히 몸에 익숙해진 것 같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올빼미로 살아왔기 때문에 새벽기상을 하는 사람들은 뭔가 나와는 다른 종족이라고 여겼다. 태생이 잠이 없거나 밤에 할 일이 없는 그런 종족, 그러니까 나는 나이트사파리에서나 그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동물이라면 미라클 모닝을 하는 사람들은 뭐랄까 새벽 어스름부터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가젤과 같은 종이라고 생각했던 거였다.


그런데 책 쓰기의 슬럼프가 지속되자 무력감은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집중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산출물이 나오지 않았다. 책을 쓰는 일은 예상보다 더 고되었다. 자료를 찾아 읽고 내 것으로 만든 후에 그것을 잘 숙성시켜서 남이 읽기 쉽게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끊임없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나의 좌절의 양상은 이러했다.


늦게 잤기 때문에 아침에는 힘겹게 눈을 떠서 비몽사몽 아이들을 챙겨 등원하고 집에 오면 어질러진 집을 치우다가 주저앉는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마음에 몸을 배배 꼬다가 커피를 때려 부어 정신을 깨우고 간신히 책상에 앉아 오전 한두 시간 정도 읽고 쓴다. 그러고 나면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이 돌아와서 먹을 것들을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하원시간, 하원을 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고 나오면 녹초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도 오늘 한 줄도 못썼다는 불안감에 다시 책상에 앉아봤자 책이 눈에 안 들어온다. 집중이 잘 되지 않는 시간에 앉아만 있으며 괴로워하다가 늦게 잠들고 다음날 다시 힘겹게 눈을 떴다.


나에게는 방해받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효율성이 최악인 상황에서 탈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찰나에 새벽기상 소모임을 모집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보자마자 망설였다. 내가 할 수 있을까? 30년이 넘게 올빼미로 살아왔는데... 새벽에 눈을 뜰 수 있을까?


어떤 일이 몸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단 3주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상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하고 소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긴장을 한 탓인지 알람소리보다 일찍 눈이 떠지기도 했다. 일단 5시 반에 노트북 앞에 앉았다. 밖은 깜깜했고 집은 적막했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두 시간가량을 쭉 읽고 쓰고 퇴고를 했다. 잡스러운 생각들 없이 온전히 읽고 쓰기에 집중했다. 새벽 두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정신이 맑은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3주 동안 새벽 기상을 성공하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5시 반 기상이 자연스러워졌다.


새벽기상이란 잠을 줄이는 게 아니라 깨어있는 시간의 환경을 바꾸는 거였다. 새벽 1시에 잠들어서 8시에 일어나나, 저녁 10시에 잠들어서 5시에 일어나나 7시간을 자는 건 마찬가지다. 다만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의 시간보다 아침 5시에서 7시까지의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 더 효율이 좋았다. 오늘 하루 종일 글 한 줄 못썼다는 불안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잠을 자는 시간대의 변경만으로도 스스로의 효율성이 좋아진 느낌이었다. 


이러한 과정 또한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집중하기 좋은 최적의 시간대를 알아내서 그 시간을 확보하는 것. 그럼으로써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몰입의 과정을 통해 사람은 자기만의 삶의 활력을 생산해 낸다.


선순환이다. 새벽 두 시간 집중해서 원고를 쓰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짐을 느꼈다. 그러면 아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을 수 있고 아이들을 준비시켜 등원하는 것도 수월해졌다. 등원시키고 집에 와서는 새벽에 쓰다만 글을 마무리하거나 퇴고했다. 이미 집중의 궤도에 올랐다가 다시 하기 때문에 시동을 거느라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 등원길.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보니 새벽기상이란 마치 킥보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발만 구르면 목표지점까지 슝 간다. 새벽 기상은 그저 아침 기상시간을 두 시간 당긴 것뿐이지만 나를 목표지점까지 빠르게 데려다주고 있다.


인생에서 나만의 킥보드를 여럿 가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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