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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Jun 26. 2023

수지맞지 않은 계산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는 일

전문직 부부라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울 때까지는 여성이 잠시 일을 쉬고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하물며 나처럼 부부의 소득 격차가 크고 아이가 많은 경우에는?  엄마가 집에 들어앉아 육아를 전담하고 아빠는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오는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버거웠기에 다른 방식의 삶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직장에서 복직의사를 물었는데 처음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솟았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내가 제일 잘하던 일을 다시 해보고 싶었다. 어른들만 있는 공간 속에 있는 낯선 내 모습을 상상해 보고, 수업을 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긴장감에 온몸의 털이 솟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도 그 부산스러움이 재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이제는 내가 복직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노트를 펴서 하나씩 적어가 보았다.

복직을 해서 벌 수 있는 비용을 플러스로, 복직하느라 써야 하는 비용을 마이너스로...  


하나씩 적어보다가 때려치웠다.


이걸 쓰다 보면 나는 복직을 할 수 없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나가서 벌어오는 돈보다, 내가 직장에 나감으로써 드는 비용이 거의 맞먹는다. 아이가 셋이라 등하원을 도와줄 사람에 대한 비용, 가사나 반찬에 드는 비용들까지 생각하면 어쩌면 집에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일을 하러 다시 나가지 못한 이유가 그거였다. 남에게 맡기는 비용이 더 컸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영원히 일을 안 하는 게 이득인가? 그러니까 직장에 돌아가면 얻는 것보다 잃는게 많은건가. 그렇기에는 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일단 다시 일해보고 싶었고,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고, 집이 아닌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내 몫을 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해서 평가하는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나는 나의 가치도 내가 벌어올 미래 소득으로 평가했고 그래서 일을 다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공부하고, 내가 내 직업을 갖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 모든 것들은 내가 집에 있기 위함이었나. 돌아보았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일을 다시 하고 싶은데 아침에 육아시간을 쓰기 어려워 고민이라고. 남편은 자기가 출근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날 밤, 남편은 출근시간을 30분 늦추고 그만큼 퇴근시간을 늦추면 가능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혼자 아이 셋을 등원해 보겠다는 거였다.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그럼 나는 아침에 혼자만 나갈 수 있는 거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내 몸만 건사해서 직장에 나가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몰랐다. 지금은 생각만으로도 떨린다. 나 혼자 일어나서 나 혼자 밥 먹고 나 혼자 준비해서 지하철 타러 가는 일. 직장에 도착해서 커피 한잔 타고 컴퓨터를 켜는 일. 그 모든 일들이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남편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면 그가 하는 실질적인 업무량은 늘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등원을 맡겠다고 해주어 고마웠다. 그렇다면 나는 오후에 육아시간을 쓰고 퇴근한다면 내가 하원도 가능하다.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친구는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하냐고 말렸다. 낮에는 일하고 퇴근해선 애까지 봐야 하면 네가 다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은 남편이 돈을 벌어오고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다 보니 안정화되어 있지만, 내가 복직을 하면 둘 다 업무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지금처럼 우리 관계가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해보고 후회하고 싶다. 안되면 다시 휴직을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선택한 직업을 이렇게 타의로 인해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두려움 속에서 돌아가지 못하다가 이름이 사라지는 선배들을 봤다. 누군가는 탈출이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할 이유가 있었을 수 도 있지만 나는 그만둘 땐 그만두더라도 스스로 하고 싶다.


일단 복직을 해보고, 맞벌이를 해보고, 다시 직업을 가지는 생활을 해보면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싶다. 결코 좋은 근무환경은 아니라지만, 그럼에도 돌아가고 싶은 걸 보면 아이를 낳기 전 내가 한때는 열정적으로 마음을 쏟고 최선을 다한 직장에 대한 애정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복직을 할까 고민만 했는데도 갑자기 현재가 너무 소중해졌다. 복직을 할지 말지 생각을 하면 기대되는 마음 반, 두려운 마음 반이라 하루에도 열두 번도 마음이 오락가락 하지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아이들을 껴안고 있는 낮 시간이, 평범했던 평일의 일상이 너무나 소중해졌다.


평소였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평일의 일상도 두 달 후에는 누리지 못할 거란 생각에 두 배로 소중해짐을 느낀다. 뭔가 세상이 온통 흰색만 있을 때에는 세상이 희다는 것을 못 느끼다가, 검은색을 만나고 나서야 흰색이 얼마나 하얀지 깨달은 것처럼. 약간의 대비를 통해 지금 누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복직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새로운 변화는 두렵지만, 두려운 만큼 또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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