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강철저 Feb 07. 2023

돈은 안 벌어도 꼬박꼬박 셀프연말정산은 합니다.

육아휴직 만 5년 성과 결산

올해로 휴직 6년 차를 맞이했다.

아무도 연말정산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작년을 돌아보며 나의 1년을 셀프 연말정산 해본다.

한 해를 돌아보며 새해에는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고 싶다.

연말정산이 다 그러라고 있는 거 아닌가. 많이 받았으면 뱉어내고 덜 받았으면 더 받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직장을 다니는 게 아닌지라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지만 내 나름의 성과는 있다.

그것들을 하나씩 돌아보려고 한다.





1.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하는 힘에 대해서_ 하두하두 4년 차를 맞이하며.


휴직 기간 동안 가장 잘한 일을 뽑으라면 아무래도 독서 소모임을 시작한 일이다. 독서소모임 <하두하두>를 시작한 지 4년째가 되었다. 백일이 된 쌍둥이를 품에 안고 새벽에 잠 못 자고 힘든 와중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했던 독서소모임이었는데 어느덧 4년쯤 되니 자동으로 굴러간다. 매일 책 읽는 서른 명이 넘는 동지들과 함께 책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나는 든든한 빽을 얻은 듯하다. 읽기는 쓰기로 이어졌고 <브런치>로 나를 이끌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글쓰기의 매력을 빠졌으니 결국 모든 것은 <하두하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매일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도 몸소 깨달았다. 양적으로 쌓이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이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는 어떤 소모임을 시작하든 쉽게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끝까지는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



2. 루틴 만들기_생활의 뿌리 만들기


마치 프리랜서와 전업주부처럼 출근과 퇴근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삶을 6년째 살다 보면 생활리듬이 흐트러지기 쉽다. 그럴수록 마치 정시 출퇴근을 하는 것처럼 시간표가 정해져 있어야 한다. 직장을 다닐 때보다 좋은 점은 최적의 시간표를 남이 아니라 내가 짤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가족은 오전 7시~8시 사이에 일어나서 다 같이 아침을 먹고 8시 20분 즈음 5명이 모두 다 집밖으로 나온다. 집 앞의 유치원에 첫째를 들여보내고, 걸어서 둥이의 어린이집까지 남편과 같이 가서 들여보내고 나서 남편은 지하철역으로 출근하고 나는 집으로 다시 들어온다. 어질러진 집을 대충 정리하고 노트북 가방을 챙겨 나온다. 도서관을 가든  커피숍을 가든 일단 밖으로 나와야 한다. 집에 있다 보면 집안일이 계속 보이고 급해 보이는 일들을 하다 보면 오전은 훅 가버린다. 오전 시간은 가장 집중력이 높은 시간이라 이 시간을 놓치면 하루는 어영부영 가버린다.(=망한다.) 


일단 밖으로 나왔으면 중요한 일을 먼저 한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쓰고 있는 책의 원고를 완성하는 일이므로 자료 조사를 하고 글을 쓰는 시간을 오전에 쏟아붓는다. 이렇게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나서 길어야 두 시간 정도가 집중도가 최상이다. 이때 써야 한다. 이 시간은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독서 소모임에 인증할 책을 읽고 짧게나마 기록한다. 매일 책을 읽는 것은 매일 영양제를 먹는 것처럼 새로운 생각을 흡수하게 도와준다. 내 머리가 샘물이라면 글쓰기로 매일 퍼가기만 해서는 금방 바닥난다. 새로운 책을 읽으면서 경험의 폭을 넓혀야 새로운 샘물이 들어온다. 읽고 쓰기에 일정한 시간을 붓고 나서는 점심을 먹고 아이들 하원 후 먹일 음식을 준비하고 자잘한 일들을 해치운다. 집을 치우고 아이들을 데려갈 준비를 하는 것은 하원 전 1~2시간 이내에 끝낸다.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집안일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려온 후 재울 때까지는 오롯이 아이들에게만 집중한다. 



3. 급한 일 vs. 중요한 일 _ 중요한 일 먼저하기


어린아이 셋을 키우다 보면 항상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 그런 일들이 생기면 루틴은 깨지고 주먹구구식으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아이들이 다니는 기관에서 문제가 생기면 나의 모든 루틴을 멈추고 그 일에 매달려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둥이들이 세돌이 지나자 기저귀도 떼고 대화가 되면서부터는 나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급하게 처리할 일이란 게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일의 경중을 떠나 지레 겁을 먹거나 상황을 과대평가하느라 당황하고 걱정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젠 웬만한 일은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검색을 하느니 빨리 결정으로 내려 가장 에너지가 덜 드는 방향으로 정하고 행동으로 옮겼더니 훨씬 부담이 줄어들었다. 육아짬바는 이래서 무시 못한다. 


아이의 교육에 관해서도 너무 많은 관심을 갖고 알아보는 것도 소모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육 정보는 과잉이고 아이의 교육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그 근원에 부모의 불안을 먹이로 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적당한 선에선 멈추고 할 수 있는 선에서만 해주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생각한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뭔가. 아이의 공부인가, 나의 공부인가. 내 공부다. 내가 맡아서 쓰고 있는 이 책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것. 좋은 텍스트를 만들어서 세상에 보내는 것이 내겐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진 급한 불을 먼저 끄는 삶을 살았다면 올해부터는 현실에 최선을 다하지만 마음은 중요한 일이 뭔지를 항상 새기며 살고 싶다. 급한일을 우선으로 하다가 자꾸만 중요한 일을 뒷전으로 두고 싶지 않다. 발은 땅에 붙이고 열심히 움직이더라도 머리는 창공을 향하고 싶다.



4. 나는 휴직 중이 아니라_ 육아 경력을 쌓는 중이다.


휴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현장에 대한 감을 잃는 것이 두렵다. 내가 떠나 있는 동안 천지개벽했을 직장의 모습을 생각하면 뒤쳐진다는 느낌에 마음이 불안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복직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또 휴직을 연장하며 넋두리를 했더니 어떤 분이 말씀해 주셨다.


  휴직을 또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육아경력을 쌓는 중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휴직도 경력의 연장선이니까요.


이 말이 인상 깊었다.

지금 내가 일을 쉬는 게 아니라 육아라는 새로운 경력을 쌓는 중이고 이것이 내 직업 경력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내 직업의 특성이 미숙한 아이들을 인간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라면 지금 나의 경험도 소중한 경험이 되는 것은 맞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이 경력을 어떻게 쌓아나갈 것인가에 집중하기로 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쌓고 아이들의 교육에 주관을 갖는 일. 그리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일들 모든 것이 다 내 경력을 쌓는 일이다. 경험과 주관은 어떠한 물건이나 돈으로도 대체 불가능하니까. 



5. 2023을 바라보며_ 원하는 나의 모습


2022년을 돌아보며 자체 연말정산 결과 딱 한 줄로 나의 강점과 단점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나의 강점 : 꾸준함

나의 단점 : 미리 걱정하는 성격


그렇다면 2023년을 바라보며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을 써본다.


1. 안 해본 일 해보기_ 늘 하던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일 도전해 보기. 

2. 미리 실패하기(실패의 횟수 미리 쌓기) _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작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미리 실패해 봄으로써 충분히 면역력을 기르기. 성공이란 많은 실패를 선불로 주고 이루어내는 것임을 기억하기.  

3. 초반에 힘 빼지 말기_ 1년은 생각보다 길다.  초반에 무리하지 않고 길고 오래 꾸준히 가자. 





2022년 한 해 동안 아이들은 컸고 나는 성장했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두려운 마음보다는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크다. 

이 첫 마음을 잘 간직한 채로 2023년을 보내고 싶다. 

이전 11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은 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