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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Mar 11. 2022

하늘이 두쪽나도 하루에 두쪽읽기 3년이면 세상이 바뀐다

모든 것은 하두하두에서 시작되었다.

쌍둥이를 낳고 백일 즈음.

정신없는 와중에도 잠깐 틈이 생기면 스마트폰에만 자꾸 손이 가는 스스로가 짜증스러웠다.

 

눈도 침침한데 어영부영 틈새 시간을 보내느니 책이라도 읽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펼쳐도 자꾸만 집중이 안되었다.


아무리 읽어도 돌아서면 까먹고 여러 번 읽어도 책 내용은 파악이 안 되고.

가슴에 답답함이 쌓여갔다.


급작스러운 난독증을 출산 탓으로 돌리고 싶진 않았다.


망망대해에 유리병을 집어던지며 도와달라고 외치는 심정으로

같은 직업군의 맘까페에 글을 올렸다.


저 책 읽는 걸 좋아해서 첫째 낳고는 육아서든 뭐든 한 달에 세네 권은 읽었어요.
그런데 쌍둥이 낳고는 책이 눈에 잘 안 들어와요ㅜㅜ
그리고 서점엘 못 가니 요새 어떤 책이 좋은지 몰라서요.
혹시 저처럼 책은 읽고 싶은데 책이 잘 안 읽히는 분들 계시다면 우리 서로 독려하며 책 읽어보는 게 어떨까요? 좋은 책 있음 서로 추천도 하고요!


이렇게 던져놓은 공이 불러 모은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 소모임 이름은 <하두하두> 였는데 그 뜻은 이러했다.

 

하늘이 두쪽 나도 하루에 두쪽 읽기


최소한 두쪽이라도 매일 읽자는 다짐이었다.


책은 펼쳐만 놔도 두쪽은 되니까.


일단 시작해보자고 함께 다짐했다.

스마트폰을 무의식적으로 켜듯

책도 매일 자동적으로 펼쳐볼 수 있길

바라고 지은 이름이었다.


뭐든 네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고심 끝에 고른 이름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들었다.

'하두하두'라는 음절이 입에 착 붙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인생의 '화두'를 찾는다는 동음이의적인 의미도 있었기에 그런 것 같다.


어쩌면 인생의 가장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고 있던 나를 이끌어줄 횃불이 될 수 있다고 직감했기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독서모임에 이름을 붙여주자 책 읽기에 생기가 돌았다.


처음에는 하루 동안 읽은 책을 간략하게 인증하는 식이었다.

책 사진을 찍거나 인상 깊은 문장을 공유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점차 공감하고 의견을 표현하고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얼굴도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오직 책을 매개로 이야기하는 것은 묘한 자유로움을 주었다.


나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과 장소의 제한도 없이 각자 편한 시간에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공유하는 것은 매력적인 대나무이었다.


그렇게 2020년에 시작한 독서모임 하두하두가 올해로 3년째이다.


하두하두를 3년째 하면서 느낀 나의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책 읽기, 읽은 것을 요약해서 쓰기, 쓴 것을 공유하기, 공유한 생각에 피드백받기, 받은 피드백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하기. 

이 과정을 독서 인증을 하면서 매일 한다. 

당연히 책을 읽고 요약하는 연습을 매일 하니 핵심 주제를 파악하는 연습이 되어 책에 집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빠르게 줄어든다. 

펼치면 바로 집중하게 된다.

읽으면서 어떤 부분이 중요한 핵심인지를 끊임없이 파악한다. 다 읽고 나서 한번 더 눈으로 살피며 주요 문장을 찾는다. 정리하며 글을 쓰면서 핵심을 한번 더 파악한다.

매일의 '독서 인증'이라는 과정 안에서 이렇게 다양하고도 심도 깊은 과정이 숨어있다.



2. 새로운 책이 어떤 것이 있는지 요즘 사람들이 무엇을 읽는지를 '직접' 파악이 가능하다. 

인터넷 검색이나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 인터넷 서평 후기 등은 대부분 광고가 많다. 객관적인 서평을 구하기가 어려운 환경에 독서소모임은 실제로 나와 비슷한 상황(육아휴직 중인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책으로 삶에 도움이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흘깃 본 책에서 나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3. 궁금증이나 의견을 한번 더 정리하면서 나의 생각을 구조화할 수 있다. 

이건 특히 벽돌책이나 어려운 책을 함께 읽을 때 빛을 발한다.

내가 요약정리하면서 한 번

다른 사람의 요약정리를 읽으며 또 한 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번 읽으며 서로의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거나 의견을 나누다 보면

나의 생각을 좀 더 또렷하게 구조화할 수 있게 된다.

여러 사람과 같은 책을 읽으며 소통을 하면

생각이 진화한다.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그 과정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면서 정반합의 과정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4. 맛있게 음식을 먹는 '먹방'을 보면 그 음식을 먹고 싶어 지듯

맛있게 책을 읽는 '읽방'을 보면 나도 같이 읽고 싶어 진다. 

하두하두에서는 다들 자기 책을 맛있게 먹기 때문에 '지금 읽고 있는 책 다 읽으면 나도 저책 봐야지' 하며 저장해 두는 책 위시리스트가 점점 늘어난다.

읽고 싶어지는 책이 많아질수록 독서에 재미가 붙는다.


5. '혼자 읽기'는 하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포기하기 쉽다. 포기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같이 읽기'를 하면 이것은 여러 사람과의 약속이 된다. 포기를 하려면 여러 명 앞에서 '저는 포기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꾸준히 할 수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


6. 루틴이 된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양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일상에서 소중한 루틴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할 일이 책 읽기가 된다.

이빨을 안 닦고 자려고 누우면 찝찝하듯 책을 두 쪽이라도 읽지 않고 자려면 굉장히 찝찝하다.

개운하게 두쪽만 읽고 자야지 하고 책을 펼쳤다가 한참 책에 빠지게 되기도 한다.

책에 머리를 푹 담갔다가 나오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스마트폰에 담갔다가 나온 거랑은 비교가 안된다.


7. 읽을 수 있는 책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얇은 에세이 위주로 시작했더라도 어느 정도 양이 쌓이면 고전이나 두꺼운 벽돌책들도 도전해보게 된다.

양적인 변화가 질적인 변화를 낳는다.

어느 정도 양이 쌓이면 사고에도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어떤 책을 새롭게 읽어도 이전에 읽은 책들과 연결이 된다.

비로소 사고가 확장된다.

거인들의 사고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전에는 알 수 없던 커다란 구조가 보인다.

책 한 권으로 나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세상을 멀리까지 볼 수 있게 된다. 


8. 문해력이 올라간다.

예전에는 조금만 길어져도 읽기 싫어졌다면 조금 긴 문서도 차분하게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긴 글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텍스트에 대한 익숙함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전거를 매일 타는 사람은 어떤 자전거가 와도 일단 탈 수 있는 것처럼

책을 매일 읽는 사람은 어떤 텍스트가 와도 일단 눈이 읽고 머리가 정리하고 있다.  


9.  나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된다. 책을 읽을수록 내가 살고 있는 현재를 바라보는 해상도가 올라간다.

급변하는 시대에도 나만의 철학을 정립하고 일상을 영위하며 무수한 선택들을 하는 과정에서

책을 통해 올라간 시력이 도움이 되었다.

책을 다방면으로 읽으며 지금도 적용할 수 있는 고전 속의 비유를 찾는 과정도 즐거웠다.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10. 메타인지가 가능하다. 

일상에서 만나는 무수한 좌절들과 고난들.

세상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돌아가나 싶은 막막함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잠시 스스로를 떠나 지구 위에서 나를 내려다봐야 한다.

지구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면 바위 같은 문제점들이 그저 우주의 티끌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허무하거나 억울하지 않았다.

나라는 연결고리가 있기에 우주가 굴러가고 역사의 강물은 흐른다.

일상에서 힘들 때마다 나의 힘듦에만 파묻히지 않으려고 한다.

나의 힘듦을 나로부터 잠시 떼놓고 현미경에 올려놓고 관찰한다.

이렇게 억지로 거리두기를 통해 바라봄으로써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한다.

다시 내 몸에 붙이는 한이 있더라도 어떤 문제점인지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10가지의 변화로 인해

나는 사는 게 조금은 수월해졌다.


행복하냐고 스스로 묻지 않게 되었다.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묻지 않게 되었다.

삶의 목표가 뭐냐고 묻지 않게 되었다.


매일의 일상에 감사하게 되었다.

오늘과 같은 내일이 오길 기도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언젠가 사무치게 그리워할 순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이라는 덫에 걸린 건 아닐까라는 좌절감에 당혹스러워질 때마다 하두하두로 도망갔다.


그곳에는 내가 문을 열기 전까지는 조용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왁자지껄 해지는 시장통이 있다.

그 속에서 잠시 왁자지껄한 이야기 소리를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역사라는 커다란 강물을 통해 인간의 삶은 이어진다.

나는 그 이어지는 삶들 속에 있다.

그 속에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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