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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Apr 16. 2022

불시에 찾아오는 고민과 이상한 낌새

글쓰기라는 가장 훌륭한 도구

미용실에서 머리를 말며 멍하니 읽던 잡지에서 <파친코>의 저자인 이민진의 인터뷰가 눈길을 끌었다. "저마다 이야기를 품은 젊은 여성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뭐냐는 질문에 대한 이민진의 답은 이러했다.


불시에 찾아오는 고민과 이상한 낌새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여라. 그럴 때 글쓰기는 가장 훌륭한 도구가 돼준다. 자꾸만 머릿속을 맴도는 사건과 주제에 대해(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게 느껴지더라도) 지속적으로 쓰면서 충분히 고민해 볼 것. 그리고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굴 것. 마지막으로 개인적 화두에 몰두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할 것. 이런 시간 끝에 창의적인 영감과 에너지를 장착하는 여성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질 거라고 확신한다.

_<파친코> 저자 이민진의 인터뷰


불시에 찾아오는 고민과 이상한 낌새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라는 말이 메아리처럼 머리를 울렸다. 나도 불시에 찾아오는 무수히 많은 고민을 갖고 있고, 어디서든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그래서 글쓰기를 취미로 하게 되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의문들을 외면하지 말고 들여다보고 글로 풀어봐야겠다. 이민진이 제안한 세 가지를 스스로에게 적용해 보았다.


1. 자꾸만 머릿속을 맴도는 사건과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쓰면서 충분히 고민해 볼 것.

요즘 나의 머릿속을 맴도는 주제는 단연코 '글쓰기', 아니 '책 쓰기'이다. 나는 애초에 책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종이 더미로 된 글을 쓰고 싶었다. 그것이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에세이든 정보서든. 쓰고 싶은 글의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책'이라는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 한 권의 단단함으로 느껴지는 종이책이라는 지식의 보고를 갖고 싶었다.

글쓰기는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니까. 머릿속에 꽉 차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쏟아내고 나면 정리되는 카타르시스를 좋아하니까. 공개적인 글을 쓰는 것도 좋았다. 책에서 필사한 문장들의 모음, 내가 읽고 좋았던 책들을 추천하는 글은 써도 써도 계속 나왔다. 육아를 하며 느꼈던 일상의 작은 깨달음들이 내가 읽었던 책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나서부터는 그 연결고리를 일부러 찾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2022년 2월에 처음 시작한 <브런치>글쓰기에 날개를 달아줬다. 글쓰기에 최적화된 플랫폼이라 그런지 글의  가독성이 좋아졌다. 나의 경험과 책의 문장과의 연결고리를 좀 더 명확하게 보여주고 싶어서 다른 브런치글보다는 조금 길이감이 있는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책 쓰기는 글쓰기와 전혀 달랐다. 나의 글을 모아 원고를 만들어 출판사에 투고해보니 이 글은 책으로 팔릴만한 글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육아 에세이라면 모름지기 박혜란 님처럼 자식이 셋다 서울대를 가거나, 지랄발광 하은맘처럼 자식을 연대를 보냈거나, 아니면 오은영 박사님 정도는 돼야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조차도 남이 자기 애 키운 이야기보지 않는다. 내가 쓰고 싶은 분야와 읽고 싶은 분야 다르다니.

오히려 다른 제안을 받았다. 내가 수학교사이고 글을 꾸준히 쓴다는 것을 아는 출판사에서 다른 종류의 글을 써보자고 제안했다. 학생들이 읽기 쉬운 수학 에세이를 써달라고.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책의 종류라 고민해 볼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도서관에 가서 수학과 관련된 책을 우수수 빌려왔다.

읽으려고 폈는데 한숨만 나온다. 수학교사인 나도 이렇게 수학과 관련한 책이 눈에 안 들어오는데... 이걸 어떻게 쓰지. 2주의 시간을 고민해보기로 해놓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조차도 감이 안 온다. 일단 2주동안 고민해 보기로 했다.


2.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굴 것

혹독하게 나를 다그치는 내 속의 감시자를 바라본다. 며칠 전 쌍둥이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첫째 하원을 갔다. 나를 보고 달려 나오는 첫째가 친구와 함께 주차장으로 뛰어가길래 급하게 부르며 뛰어가다가 야트막한 내리막길에서

쌍둥이 유모차 째로 엎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쌍둥이를 태운 채로 아스팔트 바닥에 엎어진 거라 아이들이 자지러지듯 울었다. 나는 패닉에 빠졌고 얼른 유모차를 일으켜 세운 후 아이들을 살폈다. 다행히 얼굴에 살짝 멍이 들고 입술에 피가 난 정도였다. 놀란 나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몰랐는데 하루 지나니 오른쪽 손목이 찌릿찌릿 아팠다. 젓가락질만 해도 손목이 아파 먹기가 싫어질 정도였다. 손목보다 더 문제는 그때 넘어진 게 계속 머릿속에 슬로 모션처럼 자꾸만 머릿속에 재생되는 거다. 내가 아이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조심성 없는 스스로를 다그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남이 그랬다면? 남에게도 이렇게 혹독하게 탓할까 싶었다. 너도 얼마나 놀랐겠냐고 다독여주고 아픈 손목부터 쉬라고 말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스스로에게 친절할 것. 자꾸만 잊어버리는 말이다.


3. 자기만의 화두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

요즘 가장 내가 갖고 싶은 것이 바로 이거다. 나만의 화두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나는 보통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식탁에서 주로 책을 읽고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느라 어질러 놓은 식탁을 치우고 앉으면 노곤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는 의지는 식탁을 치우다 보면 스르르 퍼지게 된다. 작은 협탁이라도 독서실 책상만 한 크기라도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이 오더라도 읽던 책과 노트북에 쓰던 글을 치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간절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틈틈이 밥상 앞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때문에 더 간절한 건가 싶기도 하다. 식탁에서 미처 정리되지 못한 생각을 노트북에 쏟아붓고 주위를 살펴보면 보이는 일상의 모습들이 살짝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나만의 화두에 몰입할 시간이 더 간절하다. 불현듯 떠오르는 걱정과 이상한 낌새에 충분히 의문을 갖고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작가 이민진은 <파친코>를 쓰기 위해 1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두 번째 책이지만 평생 5권의 책만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게 쓰고 싶다는 이민진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며 조급한 나를 반성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스스로를 달래 본다. 나의 장점은 꾸준함이니 앞으로의 시간 동안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써보리라.


쓰다 보면 나아지겠지. 나아가겠지.

쓰고 싶은 글과 써야 하는 글의 괴리가 좁혀지겠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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