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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Apr 21. 2022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글 쓰고 싶어지는 순간

밤중에 눈이 가려워서 계속 잠에서 깼다. 안구건조증이 심해진건가 싶어 인공눈물을 넣어도 자꾸만 간지럽고 만지기만 해도 붓길래 아침에 병원에 갔다. 결막염이란다. 너무 눈을 많이 비벼서 각막에 상처가 많이 났다고. 당분간 렌즈도 금지, 눈을 혹사시킬만한 일도 금지란다. 눈을 최대한 쓰지 말라고. 


눈을 안 쓰고 사는 게 가능한가? 

이건 마치 수업을 많이 해서 성대결절에 걸렸을 때와 비슷한 상황 같다. 말을 하지 말아야 낫는다는데 말을 안 할 수 없는 직업. 나는 나을 수 없는 병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러하다. 눈을 쓰지 말라는데 하루 종일 눈을 혹사하고 있다. 나는 스마트폰 중독이자 활자 중독이니까. 무언가를 보지 않고는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도리어 묻고 싶다. 눈을 안 쓰고 하루 종일 가만히 있는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독서를 포함한 나의 루틴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인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어차피 스마트폰 붙잡고 있을 거 소비보다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 인증하고 영어공부를 하고 인증하고 글을 쓰고 인증한다. 


인증이란 무엇인가. 내가 남들 앞에서 약속을 공표하고 그것을 지켰음을 알리는 것. 도파민 버튼을 푸슝 푸슝 스스로 누르는 것. 자존감 지수를 매일매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매일 입증하며 살고 있는 거다. 아주 작은 루틴인데 이것이 매일 반복되면 굉장히 큰 힘이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은 남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직 스스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데 이런 루틴을 몇 년째 꾸준히 하다 보면 자존감을 일정 수준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장점이 꾸준함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빨리 하진 못하더라도 뭐든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한다. 또 다른 장점은 남을 질투하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을 부러워할 에너지가 있으면 어제의 나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진 오늘의 나를 만드는데 쓴다. 이 두 가지 장점 덕에 나는 매일의 루틴을 달성하는 것으로 삶의 활력을 찾는다. 


그런데 손목도 다치고 눈병도 난 지금. 오른손을 안 쓰고 눈을 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예 안 쓸 순 없지만 살살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내가 유독 손과 눈을 혹사하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래서 안 쓰려고 누워 멍하니 있다 보니 이걸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 그러니까 눈과 손을 최대한 쓰지 말고 있어야 되는 상황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바로 눈과 손을 이용해서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쓰고 싶어 진다는 이야기를. 쓰지 말라고 하니 더 쓰고 싶어 진다. 청개구리도 이런 청개구리가 없다.


한 가지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한다면 당신은 변할 것이다. 또한 한때 여럿이었던 당신은 하나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 하나가 잘 성장했을 때 당신은 그저 희생, 노력, 집중을 통해 모양을 갖춘 훈련된 존재에 머물지 않고, 사회와 합일을 이루는 통일된 인격으로서 규율 또는 문명을 창조하고 파괴하고 변화시키는 존재가 된다. 이는 모두가 안심하고 따르는 질서, 혼돈으로부터 어렵게 얻어낸 질서를 뒷받침하는 진리의 말이다. 최소한 한 가지 일에 최대한 파고들고 그 결과를 지켜보라.

_질서 너머(조던 피터슨) p230


최소한 한 가지 일에 최대한 파고들고 그 결과를 지켜보라는 문장을 읽으며 내가 파고들고픈 한 가지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한 때 여럿이었던 나를 하나로 만들게 해 줄 한 가지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읽고 쓰기. 특히 글쓰기에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여럿'이다.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교사이기도 하고 아내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고 며느리이기도 하고 읽고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서 모두 다 잘 해내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뇌한다. 이런 고뇌를 거듭하다 보면 글이 쓰고 싶어 진다. 그러니까 역할이 요구하는 것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다가 그냥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을 때 다시 얼굴에 찬물을 확 끼얹고 정신 차리라고 스스로를 깨우기 위해 글을 쓰는 거다. 어느 순간은 이것의 순서가 바뀌어서 번뇌를 하다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며 고뇌하다가 불현듯 스스로 깨닫기도 하는 거다.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다가 스스로 답을 찾는 학생처럼. 


그러니까 나는 글을 쓰면서 스스로에게 좋은 질문을 하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상황이나 문제들에 대해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싶지 않다. 변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 매달리느니 변할 수 있는 것에 매달리고 싶다. 매일 만나는 자극들에 대해 나만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싶다. 자극과 반응, 그 사이의 틈을 힘껏 벌려놓고 싶다. 그렇게 나만의 반응하는 방식, 삶을 대하는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싶다. 글쓰기라는 소중한 도구를 통해. 


그러려면 일단 손목과 눈부터 나아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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