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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Apr 18. 2022

같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

한 번 올랐던 산을 다시 오르기

요즘 독서모임에서 <코스모스>를 다시 읽고 있다. 작년에 처음 알게 된 이 책은 읽을수록 경이로웠다. 광대한 우주가 그려진 표지와 700페이지가 넘는 두께 때문에 선뜻 시도해보지 못한 책이었는데 막상 읽기 시작하자 빠져들었다.


과학책을 이렇게 아름답게도 쓸 수 있구나과학이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며 함께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를 거듭하기도 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과학자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지금에 이르렀다는 점을 깨닫고 과학자에 대해 선망을 갖게 되었다. 


읽을수록 가슴이 벅찼다. 이 책과 관련된 영화인 <콘택트>를 같이 보며 칼 세이건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에서 지구라는 푸른 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행운이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아내에 바치는 헌사는 어떤 사랑고백보다도 가슴 떨리고 달콤했다.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설명하는 것은 쉽다.

진짜 어려운 것은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칼 세이건은 천상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해냈는지 뽐내거나 과학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별을 공유하는 우리에게 애정 어린 시각으로 손을 잡고 하나씩 보여준다. 우주의 광활함과 우리 지구별의 역사와 현재의 우리가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손을 들어 멀리 지구 밖을 가리키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을 알려준다.


이 책을 두 번째 읽으면서는 필사를 하며 읽고 있는데 내가 읽었던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많다. 처음 읽을 때는 완독에 목표를 두고 읽느라 놓쳤던 부분들을 다시 곱씹으며 필사하다 보면 마치 칼 세이건이 내 앞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해주는 듯하다.


등산을 할 때 처음 오르는 산은 발만 보고 가느라 놓치는 경치들이 많다. 그러나 한번 올라본 산을 다시 오를 때는 이미 올라본 길이라 발이 익숙해져 있고 그제야 경치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그때 보이는 산은 처음에 오른 산과 결코 같지 않다.


책도 그러하다. 처음 본 책과 두 번째에 곱씹으며 필사를 또박또박해가며 읽는 책은 전혀 다르다. 놓친 구절을 다시 살펴보고 하나씩 곱씹다 보면 책 속에 숨겨둔 많은 이야기를 보물 찾기하며 읽을 수 있다. 이것이 재독의 매력이다.


특히 <코스모스>를 다시 읽으며 저자가 책의 장마다 붙인 이름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우주 생명의 푸가',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와 같이 음악적인 비유가 얼마나 절묘한지는 처음에 읽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푸가나 블루스라는 장르의 특징을 다시 찾아보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왜 푸가인지는 두 번째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지구 생태계가 하나의 음악 장르라면 우주에 다른 생명이 산다면 그것은 지구와 같지 않을 것이므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주 생태계는 다양한 음악이 함께 조화롭게 연주되는 '푸가'일 것이라고 비유한 거였다. 마찬가지로 '붉은 행성을 위한 블루스'도 '블루스'라는 음악 장르가 '부르고 응답하기'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화성에 생명이 있다, 없다는 논란이 역사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점과 화성의 생명체를 향한 부름과 응답을 기다리는 현재의 모습을 비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분명 읽었는데도 다시 읽을 이유가 이것이었다. 숨겨 놓은 비유를 찾고 각주를 다시 읽으며 저자가 하고픈 말을 온전히 듣는 거였다.


칼 세이건처럼 훌륭한 작가들은 어려운 내용을 평범한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게 쉬운 용어나 비유로 설명을 한다.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유전자를 '조정경기의 한 팀'으로 비유해서 설명했고, 염색체를 책의 '권'으로 유전자를 책에 쓰인 '페이지'로 비유해서 설명했다. <총 균 쇠>에도 멋진 비유가 나오는데 가축화된 동물의 특징을 안나 카레니나 법칙으로 비유했다. 즉, 행복한 가정은 비슷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족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책에 나오는 구절을 가축화된 동물의 특징으로 다음과 같이 비유한 거다. '가축화된 동물은 비슷비슷한 이유로 가축화가 될 수 있었지만, 가축화되지 못한 동물은 제각각의 이유로 가축이 되지 못했다'라고.


이렇게 적절한 비유를 섞어가며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과학의 경이로움을 알게 해주는 책을 읽으면 가슴이 벅차다. 나의 힘으로는 알 수 없었을 지식을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함께 바라보고 있으면 책이라는 물건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한편으론 나도 무언가 설명을 한다면 이렇게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를 적절히 들며 설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만의 지식과 생각을 쌓고 싶다.


7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쓴다는 것은 단지 지식의 양이 많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지식과 사고가 내재화되어 이것을 남에게 이해시킬 수 있게 적절한 비유를 들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 틀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자기만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남이 읽으면서 감동하고 전율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거다. 


내가 어떤 분야의 글을 쓰든 나만의 언어로 쓰고 싶다. 그것이 다른 이에게 가닿았을 때 쉬우면서도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그런 나만의 비유와 언어를 찾고 싶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훌륭한 책을 읽고 가슴이 벅찬 열혈 독자로 남아있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책을 발견하고 가슴 떨려하며 읽고 읽은 것을 나누는 것은 절대 지루하지 않을 좋은 취미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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