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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Apr 24. 2022

그녀에게는 영감이 특별히 많이 떨어지는 줄 알았지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었다.

글의 퀄리티에 한번 이 정도 분량의 수필을 매일 써낸 생산력에 두 번 놀랐다.

그녀가 수필을 써서 매일 사람들에게 직거래로 글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농산물 직거래처럼 글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바로 직거래할 수 있다니. 왜 이슬아 이전에는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이슬아니까 가능한 걸까?


아무도 책을 안 보는 게 아니었다.

책을 보는 방식이 달라진 것뿐이지 사람들은 '이야기'에 늘 목마르다. 우리나라 드라마나 넷플릭스만 봐도 어마어마한 스토리들이 많다. 꼭 책이라는 도구가 아니어도 사람들이 글을 접할 수 있는 방식은 여러 가지로 늘어났다.


이메일 서비스도 그중 하나이다.

이슬아 작가가 월화수목금요일에 하나씩 글을 보내고 월 만원을 받으니 한편당 500원 정도 받는 거다. 그녀는 자신의 책에서 한편당 500원을 받는 이유로 '박리다매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스스로를 '연재 노동자'로 칭하고 매일의 노동을 성실히 해내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러한 연재 노동은 이슬아만 하는 일이 아니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의 저자인 박혜윤도 이메일로 글을 보내고 월 6천 원을 받는 이메일 구독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 인터뷰, 책과 미드, 영화 이야기, 육아 팁과 은퇴생활에 대한 팁 등을 글로 쓰고 그것을 구독자들에게 매 월 6개씩 글을 보낸다. 글 하나당 천 원꼴인 거다. <엄마의 20년>의 저자 오소희도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그 언니의 방>을 연재하는데 여기도 한 달에 5천 원의 구독료를 내면 글을 볼 수 있다. 이미 글의 직거래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거였다. 


이슬아, 박혜윤, 오소희 세 사람 모두 나에게 소중한 작가이다.

그녀들의 글을 통해 나는 사는 게 조금은 편해졌으니까. 이런 그녀들의 글을 직거래로 받아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 행복하다. 그런데 행복한 한편 가슴 한편에 아쉬운 마음도 든다. 


나는 소비를 통해서만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생산을 통한 만족을 갈망한다. 그녀들처럼 누군가가 흔쾌히 돈을 주고도 읽고 싶은 글, 그러니까 인생을 좀 더 재미나고 살기 편하게 만들어주는 생각을 글이라는 매체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다. 이것은 물욕과는 전혀 다른 거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능력. 돈이라면 뭐든 해결되는 자본주의 세상에 살아서 그런가. 이런 돈으로 안 되는 능력에 대한 욕구는 날이 갈수록 커진다. 남부럽지 않게 좋은 글을, 좋은 텍스트를 세상에 많이 내어놓고 싶다. 


출판사에 투고하고 거절 메일을 받는 동안 내가 좌절했다면 이슬아는 다른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녀는 2500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책을 쓰거나 투고를 하는 대신 '수필 직거래'를 시작했다. 자신의 글을 받아볼 사람을 직접 모집하고 월 만원씩 걷은 후 자신에게 돈을 지불한 사람들에게 매일 자정 글을 보냈다. 월화수목금요일 하루 한편씩. 


이 계획을 처음에 다른 작가들에게 공표했을 때 모두들 말렸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는 사람들이 돈 내고 글을 잘 보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다 갚고도 남을 돈을 번 것. 그녀의 이메일 서비스는 독보적이었다. 그녀가 일하는 방식을 소개한 티비 프로그램이 있어 보게 되었는데 그녀의 일상을 따라가 보는 것이 재밌었다. 출판사 겸 주거를 해결하기 위해 2층짜리 독채에 사는 그녀는 2층에서 1층으로 출근한다. 낮에는 부업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마당에서 직접 기른 채소로 스스로를 위한 밥을 정성껏 차려 먹는다. 오후가 되면 요가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몸을 가다듬는다. 늦은 저녁이 되면 글을 쓰기 위해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는다. 자정에 마감인 글을 쓰기 위해 저녁 9시부터는 자리에 앉은 그녀이지만 글을 바로 시작하지는 못한다. 하얀 백지에 커서만 깜빡이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괜히 책상 정리도 하고 책장의 책도 꺼내보고 안경도 닦아보고 드라마도 보며 글을 쓰기 위한 시동을 거는 거였다. 자리에 앉아 작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건 10시가 넘어서였다. 왜 더 빨리 쓰지 않았을까 후회할 시간조차도 모자를 만큼 시간이 촉박하게 남고 나서야 글을 쓰는 그녀를 보며 인간미가 느껴졌다. 그걸 보기 전까지는 나는 이슬아에게만큼은 영감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줄 알았다. 천재적인 작가들은 모름지기 하늘이 특별히 영감의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을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글이 안 나와 발버둥을 치며 애를 쓰고 매일 글이 안 팔릴 수 있다고 가정하고 최소 2~3개의 돈이 될만한 다른 직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 이슬아의 일상을 바라보며, 그녀에게도 공평하게 글쓰기가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녀가 수필 직거래로 매일 글을 쓰는 것이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 글을 쥐어짜게 하는 하나의 실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일정한 루틴을 만드는 그녀의 모습이 작가에 대한 환상을 깨 주었다. 그녀는 영감이 남들보다 더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글을 성실하게 써내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이슬아 작가가 보내주는 글을 읽고 메일 주소가 잘못된 경우 같은 사사로운 문제들도 이슬아가 직접 해결한다. 이런 잡무도 해결하는 1인 기업이자 노동자이자 매니저인 거였다. 세상에 쉽게 돈 버는 일은 없다. 


나는 이슬아는 아니지만, 돈을 받고 쓰는 글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가 닿아 그 사람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만들 수 있는 글을 성실하게 써보고 싶다. <브런치>를 하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은 이렇게 나의 글을 꾸준히 읽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 간간히 피드백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특히 브런치 북을 만들고 나서는 책을 만들어보는 연습을 해보는 점이 좋았다.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조금 쓰다가 마는 사람이 아니라 꾸준히 어쩌면 매일 쓸 수 있는 생산력을 가질 날까지 내공을 쌓고 싶다. 


가족이 모두 잠든 시간, 낮동안 머릿속을 오가던 잡념들을 글에 쏟아붓고 나니 진정이 된다. 글의 힘은 어쩌면 소비보다 역시나 생산에서 더 큰 것 같다. 엄청난 책을 쓴 사람들은 글을 쓰고 얼마나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 나도 그 기쁨의 일말이라도 가져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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