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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Jun 14. 2022

어느 구름이 비를 품고 있는지 모른다

매일 책을 읽고 자주 글을 쓰고 가끔 투고를 합니다.

실패할 것을 알고 무언가를 도전해본 적이 별로 없던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고는 실패할만한 것에 도전하는 것에 별 저항이 없어졌다. 

애초에 나는 글쓰기에는 문외한이니까. 못하는 게 당연하고,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생각나는대로 글을 쓰고 좀 잘 써졌다 싶으면 브런치에 올리고, 가끔은 글을 모아서 투고도 한다. 글쓰기 관련 공모전에도 나가보고 출판사에 투고도 해보고 딱봐도 딱딱한 벽이다 싶은 곳에 무작정 몸을 들이받는다. 튕겨 나오는 것을 예상하면서. 


다행인 건 내가 그렇게 튕겨 나오는 것에, 투고 거절에, 공모전 탈락에 별다른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글쓰기는 나의 취미니까. 이걸로 먹고 살게 아니니까. 더구나 나는 이 분야의 초짜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기예라고 했다.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책이나 강의로 배울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책 쓰기를 가르쳐준다'고 하는 강좌에선 출판까지 책임지고 해준다는데 비용이 상당했다. 나에겐 책을 쓰게 해 준다는 곳에 낼  450만 원이 없다. 애초에 450만 원이나 내고 책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에 책을 낸다면, 낼 수 있다면 책으로 낼 만하다고 인정받은 후에 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무작정 투고를 하고 공모전에 글을 냈다. 떨어질걸 알면서도.


피아노를 취미로 배운다고 해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길 꿈꾸는 것이 아니듯,

글쓰기를 취미로 한다고 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게 꿈은 아니다.

나는 애초에 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글을 썼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쓰듯, 육아라는 전쟁 같은 일상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꾸준히 글을 써 모았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지금까지 쓴 글들을 주욱 읽어본다. 낯설지만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때의 내가 있다. 이유식을 시작하며 막막해 하는 나, 뒤집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쩔쩔매는 나, 늦게나마 걸음마를 뗀 둘째를 얼싸안고 울고 있는 나. 


그 짭짤한 눈물의 맛이 느껴지는 글들이 나의 뿌리이다. 가끔은 내가 쓴 글에 내가 혼자 감정이 북받쳐 눈물짓곤 한다. 내 글에 내가 울다니.. 궁상이다 싶으면서도 그렇게 셀프 위로를 할 수 있는 스스로가 대견하다. 세상의 거친 말들에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글을 쓰고 힘을 내어 나아가는 나의 모습을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를 바라보듯 바라본다.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스스로에게 도파민의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는 건강을 해치는 것에 중독되거나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글쓰기로 일으켜 세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며 체력이 딸리고 정신력이 후달리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마다 쉽게 취약해졌다. 취약해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에 글쓰기만한 것이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에도 무엇을 쓸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잠시 주변의 소음의 데시벨이 낮아지는 듯 하다. 


소설가 김영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어떠한 감정에 대해 '짜증난다'라고 뭉뚱거리지 말고 '당황스럽다', '서운하다', '부끄럽다' 등으로 구별해서 써야 한다고 했다. 육아를 하면서 자주 느끼는 '멘붕'들에 나는 서로 다른 이름표를 붙이기 시작했다. 감정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면밀히 관찰해야 했다. 경험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며 내가 왜 그 순간에 그러한 격한 감정을 느꼈는지 생각해보고 상황을 조금 멀찍이 떨어져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달리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알아차린 순간들이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식탁에서도 글을 쓰고, 청소하다가도 멈춰서 메모하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서도 스탠드를 켜고 글을 썼다. 그러한 깨달음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같은 상황에서는 조금 더 나은 대처를 하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 


세상에 좋은 텍스트를 더 많이 남기고 공유하고 싶은 것이 나의 꿈이다. 


그리고 벽이라 생각한 것들에 몸을 들이받는 듯한 도전들에 하나씩 응답이 오기 시작했다. 

글쓰기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무수한 투고 거절 메일 속에서 함께 책을 써보자는 제안을 받고, 교육전문지에서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어느 구름이 비를 품고 있는지 모른다. 

나에게는 모두다 소중한 기회이다.  


메마른 땅을 무작정 파고 있는줄 알았는데

굳건히 닫힌 벽에 몸을 부딪히고 있는줄 알았는데 

조금씩 미세하게나마 흙속에 물 웅덩이가 보이고 굳건한 벽이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는 벽을 문이라고 한다. 


내게도 조금씩 문이 열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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