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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Jul 31. 2022

책을 쓰기로 하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빅씨스를 시작했다.

1. 출판권 설정 계약서를 쓰다.


2022년 7월 5일.

출판권 설정 계약서를 썼다. '공식적으로' 책을 쓰기로 한 거다. 처음 책을 써보자는 제안을 받고는 내가 평소에 쓰는 종류의 글이 아니라 망설였다. 제대로 글이 나올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일단 시간을 좀 달라고 한 후 주제에 맞게 한번 써보겠다고 했다. 2주의 시간을 벌었다. 2주 동안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책도 찾아보고 노트북 앞에 앉아 하얀 화면에 껌뻑이는 커서를 하염없이 노려봤다. 한두 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도 마른걸레만 쥐어짜는 느낌이 들길래 어느 순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왜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출판하기 어렵다고 하고 내가 써야 하는 글은 도무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지 원망의 마음만 울컥울컥 올라왔다.


그냥 안 하겠다고 해야지. 드러누워 며칠을 보내니 2주의 시간은 금세 지났다. 약속한 2주가 거의 다 지난날 어느 새벽이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이들은 쑥쑥 자라고 남편도 직장 잘 다니고 양가 부모님 건강하시고 가족들이 모두 평화로운데 왜?? 하루하루가 평온한데 왜?? 스스로 자문하다가 깨달았다.


내게 온 기회를 이대로 그냥 날리는 것이, 또 이렇게 '해보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껴 포기하는 것이, 안정된 삶이라고 포장된 '늘 먹어본 것만 먹는' 따분한 일상이 이어질 거라는 사실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삶을 또 이어갈 생각에 답답해지는 거였다.


그러니까 나는 책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날리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 잠이 안 오는 거였다. 이런 아쉬움을 품고 살 바에는 글쓰기를 시작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 새벽에 나는 이렇게 괴로워하느니 차라리 되든 안되든 쓰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냈다. 안 쓰고 괴로워하느니 망하더라도 해보자 싶었다. 새로운 일을 해볼 절호의 타이밍이란 없다. 그냥 시작하면 그게 바로 적절한 타이밍이다. 잘 쓰려고 하지 않고 일단 썼다. 어깨에 힘을 빼고 쉬운 단어로 내 생각을 담으려고 했다. 잠이 오지 않아 식탁에 앉은 그 새벽에 나는 첫 번째 샘플원고를 완성했다. 아침에 다시 읽으며 너무 감성적인 글을 쓴 것은 아닌지 검토했다. 적당히 퇴고를 해서 출판사 편집자에게 보냈다. 이렇게 쓴 샘플원고를 보고 나서도 나와 계약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이러이러한 조건으로 계약서를 쓰고 싶다고 의견까지 적어 메일로 보냈다.


막상 메일을 보내고 나니 마음은 후련했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답을 기다렸다.

편집자의 답은 호의적이었다. 꼭 계약을 했으면 한다고.


나는 아직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었기에 두 번째 샘플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두 번째 꺼까지 보내자 편집자는 다급하게 답이 왔다. 글을 쓰기 전에 목차를 먼저 써야 한다고.


나는 설계도도 없이 집을 일단 짓고 있었던 거였다. 브런치에서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순으로 글을 썼기에 나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샘플원고를 쓰기 전에 목차를 먼저 써야 한다는 편집자의 조언 덕에 나는 글쓰기를 멈추고 목차를 쓰기 위한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글쓰기와 책 쓰기는 이렇게 분야가 달랐다.


도서관에 매일 들르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 오고 매일 조금씩 도토리를 모으듯 목차를 쓰는 것에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목차까지 완성해서 보내고 나서야 계약서 파일을 받았다. 출판권 설정 계약서였다. 내용을 읽어보고 7월 중으로 직접 만나 쓰기로 했다.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 샘플원고 2개와 목차만 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세 번째 샘플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계약서를 쓰기로 한 날 세 번째 샘플원고까지 가져갔다. 나는 책을 쓰는 것은 초보이기에 전문가에게서 이 글이 책으로 나올만한 것인지 확인을 받고 싶었다.  


출판에 관해서는 나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험이 많은 편집자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쓰기로 마음먹은 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원고를 쓰는 일이고 그 이후의 일은 편집자의 일이다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일단 쓰고 보자.





2. 책을 쓰기로 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출판 계약서를 쓰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빅씨스를 시작한 일이었다. 빅씨스는 뉴욕에 사는 44세의 몸매 좋은 언니가 홈트를 하는 영상을 올려주는 유튜브 채널이다. 맨해튼의 탁 트인 고층 아파트 뷰를 배경으로 운동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따라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책을 쓰기로 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다. 뉴욕에 대한 환상도, 예쁜 몸매의 여자에 대한 선망도 없는 내가 빅씨스를 하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무라카미 하루키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 습관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는 영감이 오는 대로 글을 쓰는 게 아니었다. 그의 삶은 예술가라기보다 노동자에 가까웠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동안 원고지 20매 분량의 글을 쓰고 오후에는 10킬로 달리기를 하거나 1500미터 수영을 한단다. 그러고는 저녁에는 책을 읽거나 재즈음악을 듣고 쉬고 9시면 잠이 드는 생활을 매일 한다고 했다. 그가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꾸준한 습관들 때문이라고.


그는 달리기를 꾸준히 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혼자 있고 혼자 있으면서 글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그가 매일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쓰고 달리기를 매일 하면서 조금씩 우물물을 퍼내듯 글을 길어 올리는 거였다. 우물물이 바닥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일정하게 퍼냈다. 그래야 다음날이면 다시 우물이 차오를 테니.


글을 써 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나도 매일 글을 쓰다 보면 자주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뭉친다. 가만히 앉아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여기저기 쑤신다. 그리고 오래 앉아 있는다고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아니다. 앉아서 괴로워하다가 이리 딴짓하고 저리 딴짓한다. 브런치처럼 자유로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목차를 잡고 책을 쓰는 일은 어찌 보면 기계처럼 작업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정한 분량의 글을 쓰고 멈춘 후 몰입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했다. 하루키처럼은 아니라도 나도 오랫동안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하나 골라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라테스는 비싸고 헬스는 집에서 멀고 등산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렇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운동 안 하는 사람도 이유는 다양하다. 그렇게 운동을 놓은 지 몇 달 되니 몸 여기저기가 삐걱대었다. 문제는 아이들을 안을 때도 글 쓰느라 의자에 앉아있을 때도 통증이 느껴진다는 거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싶은 마음이 들 때에 빅씨스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작업실인 집에서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고 가는 시간을 줄이고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막상 빅씨스를 시작하자 한 시간을 꼬박 온몸의 근육에 집중할 수 있었다. 덤벨을 드는 것도 아닌데도 그저 맨몸 운동으로도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 한 시간 동안은 다른 잡념에서 자유로워졌다. 오직 내 타오르는 복근과 허벅지 근육, 떨리는 팔뚝살에 집중했다. 한 시간을 동작에 집중하며 따라 하고 내 몸의 무게와 중력의 힘을 온전히 느끼며 운동을 하다 보면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온몸의 땀구멍이 열린 듯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느끼며 내 숨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은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머릿속을 떠다니던 잡념들도 어느덧 사라졌다. 몸을 고되게 할수록 정신은 또렷해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근육통조차 반가웠다.


예전에 뉴스 기사에서도 1교시에 체육 수업을 한 학생들이 그냥 책상에 앉아 자습을 한 학생들보다 학업성취도가 더 높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하는 것이 공부를 할 때 집중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나도 매일 빅씨스를 하면서부터 글을 쓸 때 좀 더 집중이 잘 되었다. 일주일에 목차 중의 1개씩을 쓰는 것을 목표로 쓰고 있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쓰려고 노력한다.





3.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 기회도 없다.


출판 계약서를 썼고 빅씨스를 시작했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나의 삶은 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나의 뇌에 새로운 뉴런이 빼꼼 삐져나왔다.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던 그 새벽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애초에 글을 쓰기로 했다면, 책을 쓰고 싶었다면 더 이상은 물러서지 말자. 안 쓰고 후회하느니  쓰고 후회하자. 그게 남는 장사니까.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당신이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작품을 몇 편 발표하기 전에는 당신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욕망을 마주하고 풀어내면 분명히 통쾌할 거다. 가끔은 고생스럽기도 하겠지만 그 고생에는 의미가 있다. 책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자. 의미를, 실존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중심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 기회도 없다.

_ <책 한번 써봅시다> (장강명) p60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내가 써도 될지 써야 할지 망설여지는 밤이면 이 말을 되뇌어 보려고 한다. 자기 의심을 할 시간에 빅씨스 한번 더 하고 글 한 줄이라도 더 써야지 다짐해본다.


첫 출판권 설정 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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