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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Apr 07. 2022

애벌레처럼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된다

계속 읽다 보니 쓰게 되었다

매일 책을 들고 살다 보면 왜 내가 책이라는 물건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무생물이 주는 위안 중에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위안이 있을까. 종이를 매만지다 보면 나무의 나이테를 손으로 쓰다듬는 듯하다.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위안은 단순해서 좋다.

책등을 한 손으로 받히고 다른 손으로 책을 움켜쥐고 엄지를 스르르 풀며 책을 넘기다 보면 눈길을 끌어당기는 페이지가 있다. 잠시 멈춰 그 페이지를 서성이다가 털썩 주저앉는다. 

한참을 그렇게 주저앉아 책을 읽다 보면 나를 둘러싼 현실을 잠시나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을 수 있다. 

현실은 가까이에 있기에 그 특수성을 느끼기 어렵지만 책에서 만나는 다른 세계는 그 일반성 때문에 특별하게 느껴진다. 더 일상적이고 더 개인적인 이야기일수록 그것이 주는 영향이 오래도록 지속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런 세상도 있구나.라는 생각들 사이에서 추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거다.


너같이 많이 읽는 애는 언젠가 쓰게 된다.
애벌레처럼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는 거야.

_시선으로부터.(정세랑)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를 읽으며 이 구절에서 멈칫했다. 애벌레처럼 읽는 사람이라니. 집이라는 공간에 갇혀 생활하며 책으로 위안을 받는 나의 모습도 마치 애벌레 같아 보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 


내가 책을 쓴다면 어떤 책을 쓰고 싶은가.

 

처음 떠오른 생각은 <프랑스 아이처럼> 같은 책이었다.

육아서이지만 육아서 같지 않고 에세이지만 에세이 같지 않은 책. 정보를 나열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살려 자기만의 육아방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 그런 책을 쓰고 싶다.


그렇다고 육아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지 않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쓰고 싶다. 나라는 인간의 성장에 대해서도. 그런 면에서 <프랑스 아이처럼>도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프랑스에선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 살기에 쉬운 나라인가 보다. 우리는 엄마가 되고서는 여성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나라인데. 아이를 낳은 엄마도 자기 본연의 정체성과 고유한 여성성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되어있는 나라의 육아와 대한민국에서의 육아는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여성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한 노력들에 대해서, 나와 우리 부부, 우리 가족의 모습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나만의 길을 걸어가며 보고 느끼고 배운 것에 대한 글이 될 것이다. 나의 글이라고 해서 모두 나의 경험만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겪은 경험과 주고받은 대화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도 책으로 쓸만한 것일까? 써도 될까? 


남의 생활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만을 하지 말고 자기 인생에 대한 소박하고 성실한 이야기를 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_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에서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생활에 대해 주워들은 것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의 공허함을 잘 안다. 글을 쓰면서는 이런 공허함에서 벗어나 두발로 땅을 단단히 디디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나의 인생에 대해 소박하고 성실한 이야기를 꾸준히 쓴다면 그것이 그 나름의 색깔로 남을 것이다. 어차피 책이란 것도 하나의 취향이자 약과 같아서 자기에게 꼭 맞는 것이 있는 거지 만인에게 고루 맞는 책은 없다. 나와 비슷한 상황이거나 혹은 전혀 다른 상황이더라도 공명하는 부분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같은 북소리에 장단을 맞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이야기. 나의 인생에 대해 소박하고 성실한 이야기를 꾸준히 쓰는 것, 그것을 한데 묶어 매듭을 지어 나의 인생을 한 권의 종이 묶음으로 내어놓는 것. 그것이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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