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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Apr 01. 2022

실패의 경험을 사서 해보기

출판사 투고 중입니다

나는 살면서 해볼 만한 일에만 도전해왔다. 

실패를 기정 사실화하고 일을 시작해본 적이 도무지 없다. 속된 말로 각이 나오지 않는 일은 시작도 안 해봤다. 점심메뉴를 고르는 일도 새로운 메뉴를 시켜보기보단 원래 먹던 것 중에 맛있었던 것을 다시 먹는 걸 선호한다. 그에 반해 남편은 새로운 메뉴를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둘이서만 밥 먹을 때엔 남편은 새로운 식당에 가보고 싶어 하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안전한 메뉴를 먹고 싶어 한다. 


먹는 일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남편은 나보다 좀 더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실패에 대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실패를 '색다른 경험'이라고 여기는 남편의 삶의 자세를 관찰하며 나에겐 없는 삶의 여유를 느꼈다. 나와는 달리 어릴 적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이 많아서 그런가 변화에 대해 두려움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어떤 환경에서든 물처럼 스며드는 것을 보며 놀라웠다. 


그때그때 상황에 유연한 그와 달리 나는 굉장히 딱딱하게 새로운 환경에 부딪히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가 적응이 오래 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해보기 전에 이게 성공할만한 일인가를 살피고 들어간다. 대학도 직업도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은 것들 중에서 골라서 했다. 하고 싶은 것보다 잘하는 것을 선택했다. 굉장히 안정된 루트로 삶을 꾸려왔다. 다행히도 적당히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밥벌이를 하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실패의 경험이 더 많았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어렸을 때의 실패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데 중요한 표지판이 되었을 텐데. 왜 그때는 이것 아니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좁은 선택지들 속에만 두었을까.

나에게 예방주사 같은 일들이 더 많았으면 얼마나 나의 삶이 풍요로워졌을까. 10대나 20대나 다른 사람들 눈에 좋아 보이면서 내게도 적당한 일들을 찾아다니지 말고 실패할 것을 뻔히 알고도 도전해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들을 이제야 해본다. 나에게 도전의식이 적었던 걸까? 나는 스스로를 현실적이라고 생각한 그저 철이 빨리든 어린아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실패의 경험을 뺏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이의 실패를 바라보는 것은 엄마로서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다. 놀이터에서 언니들과 놀고 싶지만 껴주지 않아 속상한 아이를 바라보는 일은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 같아서는 데리고 나와서 내가 놀아주고 싶기도 하지만 아이가 직접 부딪히고 경험을 해야만 깨닫는 일이 있다. 아이는 어떻게 말을 해야 언니들이 함께 놀아주는지, 어떤 언니가 자기와 잘 놀아주는지를 스스로 찾아가고 있었다. 이건 엄마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부딪히고 깨져가며 몸으로 배우는 일이다. 자전거를 배우려면 넘어질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타야 한다. 바스락거리는 은빛 포장지에 싸서 실패 없이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가 스스로 넘어지고 깨지면서 배워가는 것들을 내가 입안에 쏙 집어넣어 줄 수는 없다.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몸을 사려가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맨몸으로 부딪혀가며 배워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아마도 글을 쓰고부터였던 것 같다.

 

요즘 나는 두 권의 브런치 북을 다듬어서 원고를 만들어 투고를 하고 있다. 

출판사에 조금씩 모아서 보내고 있는데 답장이 오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나처럼 인지도 없는 사람이 책을 내려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출판사를 하나씩 찾아가며 투고를 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싶어 답답하기도 하다. 수십 통의 메일을 보내도 대부분 읽지 않고 읽어도 답이 없거나 아쉽지만 출간이 어렵다는 답을 받는다. (혹시 책을 출판하신 이웃분들은 어떻게 투고하셨을까요?)


이렇게 각이 안 나오는 일을 나는 처음 해보고 있다. 

어쩌면 실패를 가정하고 시작한 첫 도전인 것 같다. 내가 쓴 글들이 정보를 제공하는 글이라기보다는 나의 경험과 생각을 담은 글이기에 판매가 될만한 책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글을 쓰고 투고하는 과정만이 나의 것이다. 이후의 일은 아마도 선택을 받는다면 진행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영원히 책으로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가닿아 내가 쓰면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위로했던 나의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비슷한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촛불 같은 희망을 품고 쓰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월든>을 출판했을 때 팔리지 않고 집에 쌓아두고 살았다잖아. 그렇게 훌륭한 책도 그랬다는 것에 위로를 느낀다.


브런치를 2월에 시작하고 꼬박 한 달 반이 지나는 동안 3~4일에 한 번씩 글을 올렸다.

처음에는 나의 생각을 글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사람들이 읽기 쉽게 공개된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웠다.

일기장에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내 글을 좋아하고 구독해주는 이가 늘어나면서부터 더 적극적으로 글감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각을 잡고 글을 쓰려고 하면 글이 안 나오고 오히려 남편과의 대화나 아이들과 있었던 일을 쓰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줄줄 쓰게 된다. 어떤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쓴다기보다 일단 시작하면 이어지는 내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육아도 너무 잘하려고 하면 나의 말과 행동에 제약이 많아져서 버거워지듯, 글도 너무 잘 쓰려고 하면 글에 긴장이 들어가고 어색해지는 거다. 그냥 쓰다 보면 나오는 생각들, 떠오르는 책들을 같이 뒤적이다 보면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는 거다. 글에 생각을 쏟아부어 펼치고 마지막에 묶어 매듭을 꽉 조인 후 발행하고 나서 읽어보면 내가 쓴 것이 맞나 생경하기도 하다. 나의 뇌를 꺼내서 이리저리 관찰하는 기분.


글을 쓰면서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이거였다. 자유로움. 그러니까 쓰다 보면 나의 생각을 제한하지 않고 말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이 생긴다. 자유롭게 말하다 보면 나를 옭아매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실체가 없는 것이란 걸 알게 된다. 모른 척 뭉개 오던 생각들을 꺼내서 탈탈 털어 보다 보면 실체가 없는 일에 내가 휘둘리고 정작 중요한 일 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급한일들만 우선해서 하다 보면 중요한 일이 뒤로 밀리기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판사에 투고를 하며, 매일 거절의 메일을 열어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음 글을 쓰려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는 하루를 보내면서 실패를 가정하고 도전해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살면서 만나는 무수한 아픈 경험과 실패들에 대해 과민 반응하지 않게 나부터 실패와 도전에 초연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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