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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Jul 19. 2023

답이 없는 문제를 결정할 때

먼저 선택하고, 정답이 되게 만들자.

둘째가 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아서 다시 병원에 가려고 택시를 불렀다.

비가 쏟아지고 택시는 안 잡히고 아이는 해열제를 먹어도 좀처럼 열이 떨어지지 않아 불안한데 간신히 잡힌 택시를 타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00 어린이집.


심장이 덜컹한다.


어머님, 00 이가 열이 나요.


셋째도 열이 난단다. 앞이 깜깜해지고 속이 얹힌 듯 깝깝해졌다. 급하게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셋째를 픽업해 주실 수 있냐 여쭸다. 늘 미안하지만 늘 부탁하는 관계. 그나마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아픈 건 견딜 수 있었는데 동시에 아프니 정신이 없다. 병원에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넋이 나간 엄마의 얼굴이 이상했는지 둘째는 울지도 않고 순순히 진료를 봤다. 약을 받고 집으로 오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아픈 아이를 잘 먹여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뭐라도 만들어 먹어보지만, 아이는 뭘 갖다 줘도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젓는다. 사실 이런 날이 처음은 아니다. 어린아이들이 많은 집이 으레 그렇듯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은 돌아가며 아프고 병원을 가곤 했다. 아플수록 아이는 엄마에게 매달리고, 24시간 열보초를 서다 보면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을 쳤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애가 아프면 가정보육을 하며 혼자서 버틸 수 있었다.


복직을 앞둔 지금은 아이의 열로 인해 마음이 한없이 심란해졌다.


내가 일하는데 아이가 열이 나면 어떻게 하지?


세상의 수많은 워킹맘들이 이 고민을 하면서 일을 하러 나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별다른 대책 없이 각자도생 하고 있다는 것도.


이 답이 없는 질문 때문에 근 6년간을 직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쌍둥이를 낳은 해에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코로나에 걸리면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직장에 돌아갈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 나 혼자서라도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코로나 격리의무가 해제되었고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안정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9시 등원 5시 하원이 일상화되었다. 이번에 받은 복직여부를 묻는 전화에는 고민이 되었다. 조금만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한 달 정도 시간을 벌고 나서 복직을 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고민해 보고 써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면 알게 되는 가장 좋은 점은 평소에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거다. 복직에 대한 생각도 글을 쓰면서 조금씩 깨달았다.


나에게는 누군가의 아내나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온전히 '내 이름'으로 불리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이 아닌 다른 장소로의 출근과 다른 어른 인간들과의 관계가 내게는 필요하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고 남편과의 관계도 만족하지만, 그러한 만족이 나의 사회적 욕구를 모두 채워주지는 못한다. 놀이터에서 누구 엄마로서의 나와 집에서 애를 키우는 누구의 와이프로서의 나로는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영역이 있는 거였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이름으로 존재하고 나로서 인정받는 시간이 '하루 햇빛 권장량'처럼 일정량이 있어야만 건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휴직 중에도 가장 열심히 한 일이 독서모임과 글쓰기였다. 읽고 쓰는 일을 통해 나의 고유한 생각을 파고들고 생각의 줏대를 세우는 것에 몰두했다. 나에 대해 잘 알고 나자 답은 나왔다. 일단 가보기로 했다.


답이 없는 문제에서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 선택이 정답이 되게끔 노력하는 수밖에.  


결국 복직원을 쓰고 돌아오는데 왠지 모르게 후련했다. 수많은 고민들과 앞으로 생길 변수들의 답을 모두 찾지는 못했지만, 방향을 정하고 돌아오니 이제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쩌면 중요한 결정들은 그 결정을 실행할 때보다, 그 결정을 실행하겠다고 다짐을 하는데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복직을 하고서 아이들이 자주 아플 수도 있고, 의외로 안 아프고 잘 지나갈 수 도 있다. 복직 후가 어떨지 지금은 모른다. 다만 아이들이 아프다면 조퇴를 쓰든 연가를 쓰든 해서 보살피면 되니까 그때 가서 방법을 찾아보면 된다. 일이 되게끔 해보자. 가겠다고 다짐하자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려웠을 양해와 부탁의 말들도 이제는 먼저 할 수 있게 되었다.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민폐가 되는 게 아니다. 나중에 내가 도움을 줄 상황이 되었을 때에는 내가 받은 배려처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직장에서의 나의 모습에 대한 걱정보다는, 사실 엄마가 직장에 나감으로써 아이들이 느낄 허전함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최근에 읽은 책인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읽기>(박찬국 저)에는 자기애와 이기주의, 이타주의의 차이에 대해 나왔다. 자기애와 이기주의의 차이는 자기 자신의 성장과 타인의 성장을 함께 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102. 이기주의와 달리 자기애는 자신의 참된 성장과 행복에 관심을 갖는다. 자신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성장과 행복이 외적인 것들의 소유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지혜와 같은 자신의 이성적인 능력을 실현함으로써 주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타인을 지혜롭게 사랑함으로써 자신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지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 자신의 성장과 행복은 모든 인간과 사물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 비례한다. 자기 자신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관심은 다른 사람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관심과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양자는 서로를 요구한다. 우리가 만일 자신을 사랑한다면, 모든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


읽으면서, 내가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게 꼭 아이들에게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성장과 아이들의 성장이 함께 이뤄질 수 도 있다. 엄마로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제 몫을 하는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아이들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책에서는 자기애와 이타주의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나왔다.


105.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다른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그는 사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그는 이러한 공허감과 무력감 그리고 적의를 자기희생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한다. 이는 자기희생은 흔히 미덕으로 찬양받기 때문이다.
프롬은 이러한 현상을 지나치게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예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런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느라 자신은 삶을 즐기지 못한다고 항상 한탄한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자신의 이러한 희생을 알아줄 것을 요구한다. 이런 어머니는 아이를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아이를 사랑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상하기 위해 아이에게 지나친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이러한 사실을 헤아릴 능력이 없다. 아이들은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눈치를 보면서 어머니를 실망시킬까 봐 불안해한다.

지나치게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는 사실은 아이를 사랑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상하기 위해 아이에게 지나친 관심을 가질 뿐이라는 문장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실망시킬까 봐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여기까지 읽고는 나는 더 이상 아이들에 대한 걱정에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프롬은 이타주의나 자기희생 또한 '타인의 성장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건강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자기애를 가진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프롬이 이어서 이야기했다.

107. 프롬은 자녀들에게 사랑과 기쁨 그리고 행복이 무엇인가를 경험하게 하는 것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어머니의 사랑만큼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프롬은 또한 이타적인 어머니가 이기적인 어머니보다도 아이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본다.


자기애를 가진 인간이 되고 싶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내 삶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 궁극적으로는 나의 성장과 타인의 성장을 함께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복직이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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