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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Apr 26. 2022

놀이터 노역 가기 딱 좋은 날씨

쌍둥이는 이단 분리 중

요즘은 해가 서서히 길어지고 날씨가 따뜻해서 하원 후 놀이터에 가기 좋은 날씨다. 우리 아이들도 하원 후에 놀이터에서 꼭 2~3시간은 놀다가 가는데 나는 이것을 '놀이터 노역'이라고 부른다. 노역이란 노예로 부려지는 일. 즉, 스스로 원해서 놀이터에 와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라는 '주인'의 명에 따라 억지로 끌려온 부모들의 자조적 표현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주인이 많은 노예 축에 속다.


그런데 막상 하원하기 전까지는 월요일 출근길처럼 무겁던 발이 놀이터에 가면 나도 모르게 빨라진다.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아이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몸이 노곤해진다. 조금 큰 아이를 둔 엄마들이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아이를 풀어놓고 휴대폰을 바라보며 쉰다면, 영유아 셋을 데리고 온 나는 이단 분리, 삼단 분리되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여념이 없다. 가끔 휴대폰이 진동해서 보면 하루 걸음 수 만보가 넘었단다. 니들 덕에 내가 운동이 된다. 절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게 실질적으로는 강아지의 건강보다 인간의 건강에 더 좋다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결국 사람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게 아니라 강아지가 사람을 산책시키는 거다. 아이들과 놀이터에 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에 가는 것이지만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쫓아다니다 보면 침울해지던 기운이 어느덧 사라지고 아이들을 따라 몸을 부산히 움직이다 보면 잡념이 사라진다. 햇빛을 뒤에 받으며 빛이 나는듯한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 생동하는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감탄한다. 아이들 덕에 이 좋은 시간에 내가 햇빛도 보고 걷기도 하는 거다. 그렇다. 아이들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아이들 덕분에 삶이 건강하다.


쌍둥이를 데리고 혼자 놀이터에 간 날은 정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주차장 쪽으로 뛰어가는 아이 하나를 들쳐 매고 오면 다른 아이가 반대 방향으로 도망간다. 엄마가 잡으러 오는 것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마치 톰과 제리 같다. 우리 집에는 제리가 세 마리니 엄마 아빠 톰은 매일 뛰어다니는 게 일이다. 아이들이랑 지내다 보면 사소한 일상에서도 웃을 일이 많다. 이런 웃는 순간들을 사진에 담듯 내 머릿속에도 오롯이 담고 싶다. 빛바래지지 않게 간직하고 오래오래 마음에 두고 꺼내보고 싶다.


미래를 걱정하고 과거를 후회하느라 시간을 보내지 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게 가능한가? 도리어 묻고 싶었었다. 성인군자나 그게 가능한 거 아니냐고. 그런데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던 '현재에 살기'가 어떤 건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갈 때는 목표를 갖지 않고 나가기 때문이다. 아니, 놀이터에 가는 것 자체가 목표인 거다. 그 속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도 얼마큼 할지도 정하지 않고 마치 여행을 온 것처럼 시계를 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산 그림자가 길어진다 싶으면 슬슬 주저앉는 아이들을 달래 집으로 돌아온다. 실컷 뛰어놀고 돌아와 흙이 툭툭 떨어지는 옷가지를 벗기고 욕조에 아이들을 넣고 물을 뿌리면 목욕시간도 아이들에겐 노는 시간이 된다. 뽀송해진 아이들을 수건으로 감싸서 꺼낸 후 로션을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에 바르고 있으면 고새 몸이 다부져지고 조금씩 길어진 듯해서 신기하다. 아기 살결의 냄새와 촉감이 좋아 로션을 바른 몸을 꼬옥 끌어안고 기저귀를 채우려고 하면 도망가려고 버둥대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밥과 반찬을 꺼내서 부산스레 차리고 식탁에 두면 허겁지겁 와서 앉아 오물오물 먹는 입이 귀엽다. 잘 먹고 쑥쑥 자라다오. 짧게 기도하고 길게 행복을 누린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바로 이 시간이다. 매일매일을 마치 여행을 온 것처럼 사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삶을 대하는 긴장을 조금 내려놓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놀이터만 와도 여행을 온 것처럼 지낼 수 있다.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새로운 곳에 가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다. 나도 나의 일상을 매일의 여행처럼 보내고 싶다. 익숙한 장소도 여행자의 시선으로 보면 색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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