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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Mar 03. 2022

마스크 없이 온 가족이 밖에서 뛰어놀 자유를 샀다

5인 가족의 첫 에어비앤비 이용기

나는 호텔을 좋아한다.

순백의 침구와 깔끔한 가구들, 머리를 질끈 묶고 맨얼굴로 가서 종류별로 누워있는 조식 메뉴를 쓱 둘러보며 접시에 담는 것도, 약간의 스낵과 샴페인으로 입맛을 돋우는 해피아워도, 아침에 혼자 일어나 즐기는 사우나도 모두 좋아한다.

떠날 것을 염두하고 지내기에 호텔에 있는 시간은 늘 만족스럽다.


아이가 하나일 때는 이런 호텔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온돌방이 있는 호텔들만 찾아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호텔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쌍둥이를 낳고 나서는 호텔에 가지 못한다.

나의 호텔 사랑에도 불구하고 호텔이 우리를 싫어한다.

정확히는 호텔이 5인 가족을 싫어한다.


호텔에서는 어떤 방을 잡아도 아이는 최대 2명만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까?

호텔 자체가 일종의 노키즈존처럼 아이는 두명만 허용 가능하다는 뜻이다.


한옥 호텔에서 아이들과 쉬고 오고 싶어서 인천의 어느 유명한 한옥 호텔을 전화했을 때는 기함했다.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갈까 해서 가장 큰 방을 예약하려고 했는데도 아이가 셋이라고 하니 방을 2개를 잡으랜다. 젤 큰 방은 7인 용인가 그랬는데도...


고로 아이가 셋이면 오지 말라는 거다.


몇 군데 호텔에 전화를 돌리면서 깨달았다.

우리나라의 호텔들은 4인 가족이 기준인 거다.

아이가 셋 이상이면 너무 소란스러워질까 봐 그런 걸까?


서운함을 넘어 화도 났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도 호텔 불편하거든?!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해가며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리조트도 다녀봤지만 마스크를 잘 못쓰는 아이들과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도 겁이 났다.

부대시설을 누리지 않을 거 같아 리조트도 포기했다.


키즈풀빌라나 키즈 펜션은 장난감들 사이에 껴서 자는 느낌이라 가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다.


아이들과 좁은 집에서 열흘쯤 가정보육으로 24시간을 붙어있었더니 나의 인내심은 바닥나고 있었다.


세 아이가 돌아가며 감기를 앓았기에

코알라처럼 내게 매달리는 아이를 어르며 집안에만 처박혀 있었기에

나의 멘탈은 이미 궁지에 몰린 생쥐와 같았다.


여행을 가서 이리저리 몸을 떠밀리며 다니고 싶지 않았다.

계획을 짤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곳을 찾자!


처음으로 에어비앤비를 검색했다.

 

단독 주택, 마당,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 숲 뷰로 검색해서 나온 집.

 

주변에 아무 시설도 없고 아이들과 갈 곳도 없고

그저 덩그러니 숲을 향해 마당이 나 있는 2층짜리 전원주택을 통째로 빌렸다.


아이들 장난감도, 내가 읽을 책도 안 가지고 갔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가도 될까?

심심하지 않을까? 라는 고민도 잠시.


일단 새로운 공간에 우리 가족을 둬보자 싶었다.


태어날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고,

밖에 나가면 입과 코가 가려진 사람들만 만나는 아이들마당을 뛰놀게 해주고 싶었다.


서울에선 할 수 없었던 숲 속에서 눈뜨고 뛰놀고 구르는 일상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그렇게 마스크를 안 쓰고 밖에 나와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를 2박 3일간 만끽했다.


마스크 없이 온 가족이 밖에서 뛰어놀 자유를 산 이었다.

그것이 '자유'라는 것은 경험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이 마당으로 난 통창을 바라보며 놀다가 나가자고 하면 그냥 통창을 열어 나가게 해 주었다.

입고 있던 내복에 양말만 신은 채로 아이들 잔디로 된 마당에 뛰어나가 놀았다.


남편과 나도 실내복에 슬리퍼만 신고 마당에서 함께 아이들과 공을 찼다. 햇볕이 따사로워 캠핑 의자를 놓고 앉아만 있어도 등이 따뜻해졌다.


바람은 차고 햇볕은 따뜻하고 얼굴에 아무것도 씌우지 않고 우리 가족끼리만 있을 수 있는 시간.

 

바람 빠진 풍선 같았던 나의 영혼이 충만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시계도 보지 않고 배고프면 주방으로 가서 밥에 국을 말아 한 그릇씩 먹고 다시 마당으로 나가 놀았고, 해가 지고 나서는 다시 집으로 들어와 2층 계단을 쿵쾅대며 올라가고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는 말도 소리 지르지 말라는 말도 안 해도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인지.


그곳에 있는 동안은 아이들은 징징대지 않았고 우리는 버럭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서서히 깨달았다.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공간'이 필요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바깥공기를 마시며 뛰어다닐 공간이.

뛰노는 아이들을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공간이.


아이들도 장난감을 찾지 않고 나도 책을 찾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밖을 바라만 봐도 좋았다.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당 옆에 작은 인디언 텐트가 있어서 꺼내 줬더니 아이들이 텐트 주위를 뛰며 한참을 놀았다.

커피를 한잔 내려서 들고 나와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영화 <기생충>에서 다송이의 인디언 텐트가 떠올랐다. 


다송이가 누리는 것은 인디언 텐트만이 아니라 바깥공기를 나가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구나.


집에서는 스마트폰이든 책이든 활자를 놓지 못하던 내가 여기에 와서는 잔디밭에 캠핑의자를 두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활자중독이 아니었다.


유현준의 책 <공간의 미래>에서는 이것을

'양질의 오프라인 공간의 유무'로 설명했다.

  <기생충> 영화 속 가난한 주인공들은 비좁은 반지하 집에서 인터넷이 연결되기 위해 인터넷 와이파이를 찾아서 헤맨다. 현실 속 오프라인 공간이 열악한 이들은 온라인 공간으로의 접속이 절실하다. 반면 부자 주인공의 집에는 거실에 TV도 없다. 대신 햇볕이 잘 드는 마당을 바라볼 수 있게 소파가 놓여있다. 이 집에서는 쉴 때도 TV를 보는 대신 마당에서 햇볕을 받으면서 책을 읽는다. 초등학생 어린이도 스마트폰으로 놀지 않고 마당에 텐트를 치고 논다. 부자의 공간에서는 미디어에 대한 의존이 없고 인터넷 공간이 필요 없다. 양질의 오프라인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_<공간의 미래> p247


부자의 공간에서는 미디어에 대한 의존이 없고 인터넷 공간이 필요 없는 이유가 양질의 오프라인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니...


내가 잃고 있는 것이 바로 '양질의 오프라인 공간'이었다.


나에게 부족한 오프라인 공간 때문에 그렇게 온라인 공간에 목을 맨 거였구나.


이번 여행에서 오롯이 집을 누리는 여행을 경험해보고 나는 '양질의 오프라인 공간'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족이 함께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바깥에서 뛰놀 수 있는 공간'


아이들이 모두 어리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에겐 이런 공간이 필요했다. 우리만의 마당이.


지금 당장 가질 수 없다면 여행에서만이라도 이런 마당에서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이번에 처음으로 지금까지의 여행과는 다른 여행을 했다.

2박 3일간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여행이었다.


집을 온전히 누렸다.

집이라는 공간에 포함된 부분이 마당까지 확장되니 우리는 어디론가 가지 않아도 답답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심심해하지 않았다.

서로가 있고 함께할 공간만 있으면 충분했다.

공 하나만 던져주니 호텔 시설도 리조트 부대시설도 필요하지 않았다.


가족의 규모가 커지고 환경의 변화가 생기면서 여행도 진화한다.


지금까지의 여행이 관광지나 새로운 경험 위주였다면 앞으로의 여행은 이렇게 집을 누리는 여행을 하게 될 것 같다.


에어비앤비의 모토가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라고 했던가?

우리 가족에게 맞는 방법의 여행을 찾은 것 같다.


호텔들아 각성해라.

니들은 에어비앤비에 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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