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지도부에는 오랫동안 내려오는 금기어가 있다.
요새 학교가 조용하네?
지나고 보면 추억이 많았던 생활지도부의 일들이 요즘 종종 생각나는 건 육아에도 금기어가 있기 때문이다. 영유아만 셋인 우리 가족이 양가 통틀어 2년이 넘어가도록 아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신기하긴 했다. 아마 어느 감기가 코로나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마음속으로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여보, 우리 집 말고는 다 걸렸어!!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얘기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다음 날 남편은 열이 오르더니 확진이었다. 금기어는 이래서 금기인 거다.
육아에도 금기어가 있다.
우리 애가 통잠을 자요! 하면 갑자기 밤에 깨서 운다. 우리 애는 순한 편이에요! 하면 갑자기 길에서 드러눕는다. 우리 애들은 골고루 잘 먹어요! 하면 숟가락을 내동댕이치고, 우리 애들은 잘 안 아파요! 하면 애들이 콧물을 줄줄 흘린다. 대체 이건 무슨 조화일까? 초보 엄마의 자만을 뭉개는 저주의 신이라도 있는 걸까.
이런 일들을 몇 번 겪고는 내 나름의 육아 금기어가 생겼다. 아이들이 순하다는 말이나 아이들이 잘 안 아프다는 말이나 아이들이 인제 좀 편해졌다는 말이 바로 육아 금기어다. 나도 모르게 혼자 생각으로는 '아 인제는 좀 살 것 같다.' 싶기도 하지만 남들 앞에선 '우리 애들이 순하고 밥도 잘 먹고 잘 안 아프고 그래서 내가 좀 살 것 같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일정한 주기로 생떼를 부리고 길에 드러눕고 편식을 하고 아프기도 하는데 괜히 우리 애는 안 그럴 거라고 기대했다가 실망을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친정 엄마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우리 강아지~ 할머니 강아지~"라고 부르길래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엄마가 '잘 크라'고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예전에 왕들은 어렸을 때 이름 대신 개똥이라고 불렀다고. 잡귀들이 개똥이라고 부르면 왕인 줄 몰라서 해코지를 안 한다는, 출처를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린 아이들의 생존율이 낮은 시기였으니 이런 미신이 있을 법도 한데 그렇다 치더라도 신기했다. 고귀하고 높은 왕이라서 이름도 고급지게 지었을 줄 알았는데 개똥이라니. 개똥아~ 부를수록 친근하긴 하다. 그런데 이것도 결국 금기어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나는 지금 개똥이 세 마리를 키운다. 우리 개똥이들은 자주 드러눕고 자주 깨고 밥 먹을 땐 편식하고 길에 드러눕고 생떼를 부리고 때때로 돌아가며 아프기까지 한다. 그래도 나는 우리 개똥이들을 너무나 사랑한다.
육아에 금기어가 있다는 것은 어쩌면 일상의 평화로움에 좀 더 감사하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이런 평화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실망하지만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잠시 위기가 와도 극복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이런 금기어를 섣불리 말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어 다행이다. 육아란 어쩌면 점점 더 겸손해지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개똥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한 일이듯,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있어주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다. 감사할 일이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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