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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Oct 17. 2022

카카오톡이 먹통이 된 날

온라인 세상에서의 단절은 오프라인 세상에서의 단절과 다르다.

1. 코로나로 인한 고립


코로나 시대에 아이를 낳고 아예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가끔씩 만남을 갖던 친구나 지인들과의 모임마저도 기약이 없어지고, 육아휴직이라 직장에 가는 것도 아녔기에 나는 고립을 선택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남편이 쌍둥이 신생아 시기에 일을 잠시 쉬고 아이들을 함께 돌볼 수 있었던 점이었다. 가장 불안했던 시기는 그렇게 전쟁통에 지하벙커에 들어가듯 세상과 동떨어져 보냈다. 그 시기.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험난한 세상에 아이를 셋이나 낳은 게 잘한 일일까'라는 생각으로 괴로웠던 그 시기,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섬처럼 보내던 그 시기에 나는 외롭고 힘든 마음을 온라인 공간에서 풀어갔다. 온라인에서 소모임을 만든 것은 이런 나의 일상에서 느껴지는 무의미들과의 싸움이었다. 이게 무슨 소용이지? 와의 싸움이었다. 어떻게든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러니까 아이를 돌보는 일로만 하루를 채우는 게 아니라 '나도' 돌보고 싶었다. 독서 소모임과 글쓰기 소모임을 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상에서 느끼는 무의미에 함께 싸웠다. 읽고 이야기하고 가슴속 불안과 괴로움을 풀어가면서. 


온라인상에서 만난 인연들과 소모임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미션 수행의 날들로 채워갔다. 작은 성취감이라도 매일 느끼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고립과 싸우면서 그렇게 온라인 인연들의 힘으로 헤쳐갔다. 오프라인 세상에서의 단절을 온라인 세상으로도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천만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아마 백일 된 쌍둥이를 안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자기 연민에 빠졌을 거다.




2. 카카오톡이 먹통이 되다


그런데 엊그제 카카오톡이 먹통이 되고 나서 나는 코로나 때 겪은 단절과 비슷한 고립감을 느꼈다. 나는 소모임을 거의 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으로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적막했다. 해야 할 일, 함께 으쌰 으쌰 하던 일들이 모두 음소거를 누른 듯 조용한 하루가 되니 적막함을 넘어 불안감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인터넷 세상에서의 단절은 오프라인 세상에서의 단절과 느낌이 달랐다. 그러니까 나에게 소중한 일상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인연들과의 소통의 창구도 함께 사라진 느낌이었다. 나는 독서소모임을 3년 반, 글쓰기 소모임은 1년 반이 넘어가고 있으니 어쩌면 이 소모임 사람들과는 남편보다 더 많은 카카오톡 대화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카카오톡이 먹통이 되면 다른 소통의 방법이 없는 거였다. 다행인 건 카카오톡 말고 완독한 도서 리스트를 <네이버 밴드>로 올리고 있었기에 그곳에 임시로 독서소모임 인증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카카오톡의 장점. 그러니까 대화가 물 흐르듯 이어지게 하는 플랫폼의 장점이 없어지고 나니 대화가 아닌 뜨문뜨문한 독백만 이어졌다. 


근본적인 불안감도 생겼다. 카카오톡으로만 소통하는 인연은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엔 그 사람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겠구나. 그러니까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이 생겨도 우린 서로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겠구나. 그렇다면 온라인상의 인연은 신기루 같은 걸까?


아이를 낳고 직장에 나가지 않은지 5년이 되자 나는 가끔 나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 이전에 내 이름으로 불리는 직장에 8년여 일했다. 그리고 복직을 하면 다시 그 자리로 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교사였다는 것이 가끔은 전생의 기억처럼 아득하다. 친정에 갔다가 아빠가 이면지로 쓰던 종이의 뒷면을 무심코 봤는데 내가 출제했던 시험문제들이 있었다. 이런 걸 내가 가르쳤었지. 이런 걸 내가 공부했었지, 낯설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얼굴을 맞대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이렇게 가물가물한데, 온라인상의 소통은 나중에 내게 어떻게 남을까? 만약에 이렇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면 나는 그 시기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3. 온라인상의 기록의 취약성


자주 가던 동네 맘 카페가 하루 만에 폭파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저 눈팅만 했던 나도 당황했는데, 규모도 크고 역사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애정을 갖고 기록해두던 이들이 정말 많았다. 그들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전쟁통에 집을 잃으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서로를 찾고 그러모으고, 누군가 손이 빠른 이의 덕에 새로운 카페가 생기고 사람들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임시정부처럼 생긴 카페에 모인 이들은 이전 카페가 사라진 것에 대해 망연자실했다. 


물론 역사 속에서도 쌓아놓은 정보나 지식들이 사라지는 일은 자주 있어왔다. 분서갱유도 있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괴된 것도 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그저 '맘카페'였을 뿐이라 생각하더라도, 그곳에 담아둔 정보들이 그렇게 하루 만에 사라져 버린 것은 문화재가 불타버린 듯 허망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지식의 보고들이 불타 없어지는 것은 반복되지만 옛 유적터라도 남아있는 것에 비해 온라인 공간에서의 폭파는 흔적을 찾을 수 없기에 더 황당했다. 그래, 허망함보다는 황당함이 컸다. 그냥 이렇게 사라질 수도 있는 거구나. 온라인상의 기록이란.


그러니까 내가 브런치에 기록해둔 글들도 그냥 하루아침에 이렇게 사라질 수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니 약간 오싹해졌다. (브런치는 다음과 연결되어있다. 다음은 카카오톡으로 접속하기 때문에 나로서는 카톡 먹통 =브런치 먹통이다.)


카카오톡이 만약에 복구가 안된다면? 나는 브런치의 글을 따로 저장해 두지 않았다. 고로 그 글들은 사라진다. 존재하지 않게 된다. 온라인상의 기록은 사라졌을 때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수 있다니...


나는 나의 뇌의 일부를 온라인상으로 업로드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단절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 인터넷에 업로드된 것들은 그 어느 것이나 영원할 수 없다. 우리는 데이터센터가 어떠한 방식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분류하는지 모른다. 작은 화재만으로도 전 국민의 일상이 마비될 수 있을 정도로 카카오톡은 취약했다. 

기록을 이원화시켜야 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브런치에 쓰는 글들은 꼭 다시 한글로 저장해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록을 다양한 방식으로 남겨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론 실물로 나타낼 수 있는 지식, 손에 쥐어지는 책으로 표현한 나의 뇌의 일부. 이런 것들에 대한 욕망이 더 강해졌다. 종이책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 


휴대폰에 기록되어있는 아이들 사진들도. 이것을 어떻게 저장해둘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한편으론 온라인상의 인간관계가 가진 근원적인 취약점을 알게 되었다. 매일 대화를 나누지만 스쳐 지나가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소통이 끊어지게 된다면 다시 찾기 어렵다. 





4. 아날로그에 대한 애정


카카오톡이 먹통이 된 주말. 적막하기도 했지만 조금은 마음이 가볍기도 했다. 그러니까 뭔가 숙제가 한꺼번에 사라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열어보듯 카톡방을 열곤 했었는데 막상 카톡이 먹통이 되니 그 자리에는 숙제 없이 집에 온 아이의 마음처럼 홀가분함이 남아있었다. 


다시 일상은 돌아올 테지만, 이때 느꼈던 홀가분함을 종종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시간에는 잠시라도 휴대폰을 다른 방에 두고 작업을 해야겠다. 읽고 쓰다가 막힐 때마다 주기적으로 폰을 열어보던 습관을 벗어나야겠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휴대폰 없는 오전 시간을 보내다 보니 브런치 글도 비교적 수월하게 나왔다.


어렸을 때 집에 불이 난 적이 있다. 우리 가족은 무사했지만 집은 모조리 불에 탔다. 타버리지 않은 물건들에서도 매캐한 냄새가 나서 가지고 나올 수 없었다. 모두 버렸다. 소중한 추억을, 삶의 터전을 잃어 슬펐다.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새로운 집에 가서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거실을 보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홀가분함을 느꼈었다. 새로운 출발을 하는 기분. 우리가 이고 지고 살아오던 짐들을 벗어던진 기분. 


물건들이 사라지고 텅 빈 새로운 곳에서는 함부로 물건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배낭여행을 하듯 모든 짐들이 내 어깨를 누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물건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안 사고 꼭 사야 되면 작은 걸로 골랐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 다시 떠오르는 건, 카카오톡이라는 매개로 이루어진 모든 온라인상의 활동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러한 위기감 덕분에 나에게 정말 필요한 활동이 무엇인지를 역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온라인 생활에 잠식당하지 않고 오프라인의 나와 온라인상의 나의 비율을 조절해야겠다. 


정말 소중한 것은 흔적을 남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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