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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강철저 Oct 12. 2022

똥 마려운 강아지도 아니고

글이 안 나와서 잠 못 드는 밤

브런치에서는 2주 정도 글을 발행하지 않으이런 독촉 알림이 온다.

2022년 2월 브런치를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이 독촉장을 딱 두 번 받았다. 그러니까 딱 2번의 일주일 빼고는 매주 한 개 이상의 글을 써온 거다. 일주일에 한 개가 아니라 두세 개씩 쓰기도 했고 밥을 먹다가도 멈춰서 메모하고, 길을 가다가도, 대화를 하다가도 글감이 떠오르면 기록했다. 글이 안 나오면 생각에 시동을 걸기 위해 책을 필사하기도 했다. 항상 달릴 준비가 된 마라토너처럼 글을 쓸 준비가 된 사람처럼 생활했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쓰기로 하고 나서부터는 브런치에 매주 1개 이상을 쓰는 것이 어려워졌다. 출판 계약서를 쓴 후 매주 원고 하나씩을 보내겠다고 편집자에게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정한 약속이기에 사실 지키기 힘들면 조정해도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일주일에 원고를 하나씩 보내기 위해서는 일주일을 꼬박 그 원고를 쓰기 위해 바쳐야 했다. 


나의 일주일은 대충 이러하다.


월화- 쓸 원고와 관련된 책 최대한 찾아서 읽기(도서관)

수목- 읽은 책과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틀 잡기+초고 쓰기

금- 퇴고 후 편집자에게 보내기

토일- 다음 원고 생각하기


막상 이렇게 써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월요일은 도서관이 대부분 휴관이라 책을 찾아 상호대차 신청을 하느라 하루를 보내고 화요일에는 상호대차가 아직 안 왔기에 다른 책을 보며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수요일에는 상호대차로 온 책들을 보고 목요일쯤에야 초고를 쓸 틀이 대략적으로 머리에 잡힌다. 그러면 보통 목요일 밤에 부랴부랴 초고를 쓰고 금요일 오전에 퇴고를 해서 보내거나 하루 더 묵혔다가 주말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퇴고 후 편집자에게 보낸다. 이렇게 일주일 단위로 글을 써서 보낸 게 지금까지 총 14개다. 그리고 지금 15번째 원고에서 막혔고 이게 오래 걸리니 브런치 글도 안 나와서 독촉장을 받게 되었다.


신기한 건 글쓰기에도 '기세'라는 것이 있어서 출판사에 보낼 원고가 잘 써지면 덩달아 브런치 글도 그 기세로 수월하게 써진다. 반대로 원고가 막히면 브런치 글도 안 나온다. 이번 주에 둘 다 못 쓰고 나니 마치 변비에 시달리는 느낌으로 잠이 들었다.


'아 오늘은 똥을 싸고 자야 되는데.'라는 만성변비인의 마음처럼 '아 오늘은 글을 꼭 쓰고 자야 하는데.'라는 마음으로 잠이 드는 거다. 심지어 아침에 개운하지 않은 것도 똑같다. 똥 마려운 강아지가 서성이듯, 글이 나올 듯 안 나오는 나날들이 이어지면 초조하다. 조금이라도 글쓰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괜히 예민해진다. 


반대로 글이 잘 써지면, 그러니까 원고도 마음에 들만큼 나오고 브런치 글도 가볍지만 탄탄하게 글이 나왔다면 그런 주에는 뭘 해도 흥이 난다.  그럴 땐 그 기세를 몰아서 책을 빨리 쓰고 싶은데 또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글쓰기란 샘물과 같아서 매일매일 일정한 양의 물만 퍼낼 수 있고 다시 물이 차오르길 기다려야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 틀어박혀 책 읽고 글만 쓰다가 오고 싶다가도 막상 그런 상황이면 책도 글도 눈에 안 들어올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독서실에 가서 각을 잡고 앉으면 괜히 책상을 정리한다던가 하며 집중을 못하지만 시험기간에 잠시 보는 텔레비전은 뉴스조차도 흥미로운 이슈의 연속인 것처럼 말이다. 육아와 살림이라는 끝없는 '해야 하는 일들' 속에서 짬을 내서 책을 보고 글을 쓰기 때문에 이 재미를 오랫동안 누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브런치 독촉장을 받은 지 어언 열흘. 결국 묵은 원고도 쓰고 오랫동안 묵힌 브런치 글도 시원하게 썼다. 글을 못 써서 잠들 때 찝찝한 마음을 느끼는 게 큰만큼, 글을 써서 매듭을 묶어 발행을 하고 났을 때의 시원함은 쾌변의 시원함과 버금간다고 하면 너무 일차원적인가?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 되기 전에는 하루하루가 정리되지 않고 잠들었다면, 매일 글을 쓰면서부터는 일상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잠들게 되었다. 책을 쌓아만 놓는 것이 아니라 분류하고 제자리에 꽂아두는 도서관처럼,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나의 일상들을 분류하고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고 생각을 정리해서 있어야 할 제자리들에 꽂아둘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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