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예민함
"맛있는 빵을 사놓는다. 한두 개는 미리 맛보고 차게 보관해야 할 것은 냉장고에 넣어둔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 빵을 먹을 생각에 기뻐하며 잠든다. 출근 전 빵을 먹었더니 상상한 맛이 그대로라 너무 행복해졌다."
저는 이 문장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기쁘게 잠들었다는 부분에서 경로를 이탈했죠. 빵을 얼마나 사랑해야 아침 기상이 즐거울 수 있다는 걸까요. 사실 빵을 애정하는 것은 크게 관계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상상했더니 기뻐졌다는 게 핵심이겠죠. 이 심플함이란.. 경험할 수 없을 것에 대한 탄식과 버거움이 동시에 몰려옵니다. 동시에 조금 억울하더군요. 저 사람은 짜증과 넌더리에 점철된 일상을 알까. 편안한 만큼 분명히 더 행복하겠지.
한 때 눈에 불을 켜고 이런 사람들을 찾아다녔어요. 어떤 보존 법칙을 따르기라도 하듯 집단에 한 명씩은 존재했으니까 말이죠. 무던한 누군가가 레이더에 걸리면 면밀하게 관찰했습니다. 대관절 저 이는 어떤 사유로 예민함과 거리가 멀고 사람들과 불화하지 않는가에 대해. 그들은 대개 '그러려니'가 쉽더군요. 사람마다 하나씩 갖고 있는 취약함은 빼고 모진 말을 듣거나 노력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만났을 때 동요되는 정도가 덜했어요. 그렇다고 특별한 기술을 연마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거든요. 아무튼 무던한 사람들과 가까이하며 그들의 모든 것을 흡수하고 싶었어요. 예민함과 그로 인한 굴레를 벗어던지고 순둥이로 다시 거듭나길, 가능하지 않은 소망을 자주 품었습니다.
대부분 무던한 사람을 좋아하지요. 싫은 내색을 크게 하지 않고 모난 구석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해요.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예민함과 불안을 알아채고 거리를 둡니다. 그걸 내뿜는 사람까지도요. 본디 사람은 안락하고자 하니 동요를 일으키는 누군가를 멀리하고픈 마음을 일부 이해합니다. 그러니 예민한 사람들은 상대를 마음에 품기에도, 품어지기에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거지요. 이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묘사가 추가됩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 군상이군(예민해서).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러니까 왜 예민해서 그래. 네가 예민하지 않으면 될 일이잖아'라는 기막힌 자기 비난을 창조해 내거든요.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얼마나 환대하느냐/배척하느냐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나도 내 예민함이 버겁고 힘든데, 이걸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네. 어라. 그럼 예민함이 잘못된 거잖아!라고 이어지는 거예요. 이러니 무던함에 대한 갈급함이 생길 수밖에요. 그렇게 오랜 기간 되지도 않은 순둥이 코스프레를 몇 번이고 시도했으나 장렬히 실패했답니다. 맞지 않은 옷이었던 거예요.
무던함에 대한 추앙도 소용없다면, 예민함을 어떻게 뫼셔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