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한 마음
그러니까 뭐부터 말하면 좋을까. 내 직업에 대한 묘한 거부감과 무거운 의무감에 대해. 심리상담사가 직업이고 주로 심리상담과 검사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공과 직업을 선택했을 때 나름의 의미가 있었을 텐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티가 난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소명의식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이 지점이 마음 한편을 짓누른다. 심리학이나 상담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 그러니 깊은 확신을 갖고 심리상담을 권하기도 어렵다는 것. 물론 어느 바닥이나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사람의 마음을 살핀다는 것 때문인지 직업에 대한 진한 애정과 인류애를 동시에 갖춘 분들이 많기는 하다. 그리고 이런 분들은 진정성 있게 심리상담을 권할 수 있다. 상담 수신자이자 동시에 행위자인 그들은 두 역할 모두에서 진한 체험을 한 거다. 부럽고, 존경한다.
비단 직업에 대해서만 이중적인 마음을 갖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 가자미눈을 하는 일이 허다하다. 뿌리 깊은 확신에 찬 선택을 한 일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가진 재주는 이것뿐. 어떻게든 활용하는 것이 도리(?)인데. 가만, 여기저기서 듣기로 브랜딩의 본질은 자신에게서 찾는 거라 했다. 그래야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며 타인으로부터 '당신은 ~~ 한 사람이군요'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특히 사랑하는 것을 마음껏 말할 때의 싱그러움은 못 따라간다. 혹시 꾸꾸라고 들어보셨는지. 차주영 배우의 팬덤명이다. 꾸꾸들의 트위터를 염탐하다 매료되었다. 최애를 향한 마음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낙낙하게 만들었다. 이렇게까지 좋아한다고(굉장히 귀여운 방식으로)?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감탄과 동시에 차주영 배우가 궁금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심리상담의 힘과 의미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의 언어도 다르지 않다. 상담자도 상담을 받는 경우가 흔하고 혹은 상담을 받을 때의 체험이 너무 귀했기 때문에 이 길로 뛰어들기도 한다. 자신이 경험한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는 힘이 있다. 강하게 믿기 때문에 내담자에게 건네는 말에도 진정성이 담긴다. 좋기 때문에 알린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나는 어떤가. 사실.. 뭐랄까.. 심리학을, 그리고 상담을, 그렇게 사랑하지 못한다. 심리상담은 삶을 나아지게 하는 방법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다만 당연하게도 이게 유일무이한 무언가는 아니라서.. 이런 방식의 체험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삶과 상처에 대해 정돈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 심지어 내담자분들이 귀한 마음과 감사를 표현해주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건 내 이슈이겠지.
"가장 위험한 것은 의심을 품지 않는 확신이다" (영화 콘클라베)
태생이 무언가에 확신을 가질 수 없음이 분명하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굳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의심 부스러기들과 동행이 더 익숙하다. 10년 뒤에 누군가 물어봐도 비슷할 거다. <심리상담받으면 좋아요? 아.. 네, 좋죠. 안 받는 거보다 훨씬 좋아요.> 하지만 콘클라베의 대사처럼, 의구심과 함께 나아가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틀에 대해 온전히 믿지 않기 때문에 관행이라 여겼던 부분들을 좀 더 챙길 수 있지 않을까? 상담의 과정과 흐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누군가에겐 분명하고 섬세하게 말하기 위해 표현을 연습하고, 세밀한 언어로 마음에 닿기 위해 좋은 글을 많이 접한다든지. 상담 이외에 다양한 해소 방법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겠고. 지금의 내가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나름의 방식이 있을 거다.
<이게 정답은 아닐 수 있어요. 사실 누군가에겐 맞지 않을지 몰라요. 그런데 이왕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 거, 일단 할 수 있는 만큼만 얘기해 볼까요? 끝날 때 즈음 어땠는지 다시 물어볼게요.>
예를 들면 이런 톤인 거다. 좀 더 고민을 이어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