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한 마음
유독 이 시리즈의 글은 '상담자 답지 않은'꼴의 실토 꾸러미다. 이왕(?) 이리된 거 이번엔 가장 최근에 빚어진, 직업 정체성에 딱히 도움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역시나 수요 없는 공급이고 훌륭하고 훌륭한 다른 상담자 선생님들과는 거리가 있을 내용임을 미리 밝혀둔다.
상담 밑천이 바닥나고 있는 느낌이다. 너무 상담을 많이 하고 있냐면, 양적으로 쪼들릴 만한 수냐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컨디션과 지속가능성을 부득부득 지킨다. 무리하며 무식하게 일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적정 노동량을 찾으려 애썼다. 누군가는 더 성실히, 더 많이 상담 사례를 소화하기 때문에 나만 힘들다고 보채는 느낌이 영 마뜩잖았다. 아, 아니다, 아니야. 앞서 말한 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의 기준이지 내 것은 아닌 거니까.. 에효효. 보시라. 이미 갈등 투성이다. 어쨌거나 다시 돌아가서, 밑천은 무슨 말이냐 하면 쓸 수 있는 카드패가 몇 개 안 남은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 정신건강문제를 이야기할 때 기준을 두는 편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약 복용은 일상생활에서 기분의 문제가 클 때 손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치료 방법이지만, '정신과 약'이라는 심리적 저항감은 아직까지 강력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권하게 된다(물론 필요에 따라 강력 권고하기도 한다!). 그럴 때 치료가 필요한 시점을 '먹고, 자고, 일하고, 어울리는 것이 예전처럼 잘 되지 않고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때.'라고 정한다. 그럭저럭 잠을 자던 사람이 잠드는데 2시간 이상이 걸리고, 식욕이 확 떨어지고,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 일에서 실수가 왕왕 있고, 우울하다는 건 딱히 모르겠지만 어떤 일을 시작하는 데 한 세월이 걸린다면 우리의 일상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이때 약물과 심리상담을 동시에 받으면 효과가 몇 배로 좋아진다(이는 다수의 연구 결과에서 검증되었다)처럼, 명확한 이슈와 대처에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중에서도 다소 심각도가 있는 증상들, 죽음에 대한 생각과 충동 혹은 감정을 조절하는 데 심한 어려움을 겪어 나도 모르게 충동적 언행을 표출하는 시기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면 오히려 밑천이고 뭐고 생각하지 않는다다. 역시 목표는 명확하다. 지금보다 조금 더 편안해지는 것(업계 용어로 '증상 완화'). 즉 잠을 못 자면 수면에 교육과 동시에 심신 안정과 관련된 심리적 기술을 안내하고, 최근 너무 큰 스트레스를 경험했다면 갑작스러운 상처에 대해 안정이 될 때까지 말하도록 돕고 함께 견딘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충동도 다르지 않다. DBT(변증법적 행동 치료)의 개념과 기술을 적재적소에 적용하고, 타고난 기질과 성격 구조에 대한 이해와 함께 '죽음'에서 거리를 둘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다룬다. 물론 비판단적으로. 사람에 따라 제법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효과가 있을 때는 제법 큰 보람도 온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의 자기 발전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일상생활은 그럭저럭 하는데, 여기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는 영역. 이럴 때 마음속으로 '당신은 이미 여러 강점과, 좋은 점이 있는 충분한 사람이에용!'이라고 외친다. 실제 어떤 분들은 걸어온 삶의 내용이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 아니면 과거에 많이 힘들었는데, 내담자의 노력으로 엄청 많이 좋아졌고, 그 상태에서 상담을 계속하고자 하는 경우. 이럴 때 멈칫하며 뭘 도와줄 수 있을까 반문한다. 솔직히 많이 초조했다. 어라, 나는 이 부분에서 크게 쓸모가 없을 거 같은데? 누군가의 시간과 돈이라는 재화를 낭비하게 두면 안 될 텐데..! 언젠가는 이런 마음을 조심스럽게 개방하기도 했다. 상냥한 내담자분은 '그저 들어주는 것으로 충분'혹은 '내 이야기를 <어떤> 사람에게 이야기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와우. 뒤통수가 화끈했다. 오롯이 나의 기준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해 초조했군! 누군가의 필요를 성급하게 재단하면 안 되는 거였다. 깊이 반성하렴.
근데 여전히 모종의 찜찜함은 남아있다. 과거 상담을 받았던 때, '상담자는 자신이 나아간 만큼만 내담자를 이끌 수 있다'는 말. 아무래도 나라는 사람이 '불편한 단계'에서 '그럭저럭 기능하는 상태'로 발전은 하였으나, '자아실현을 향해가는 상태'에는 닿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다른 단계로 가지 못했고, 그만큼 역량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거다. 크으.. 회피하지 않겠다. 그래서 아주 큰 마음을 먹고 상담자 집단상담 같은 새로운 형태의 교육을 받아봐야지 싶다. 역시 허술함이 많은 인간이라 채워야 할 것도 많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