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도 될까요?'

삐뚤빼뚤한 마음

by 단아

드라마 악귀, 영화 씨너스. 아, 파묘에서도 봤다. 영생을 사는 뱀파이어(비록 낮에는 못 다니지만), 자유자재로 인간의 목숨을 취하는 귀신, 자손 보려 대서양을 건너 캘리포니아까지 간 조상령. 이 존재들의 공통점은 흥미로웠다. 바로 내부에 있는 존재에게 입장을 허락받아야 한다는 것. 처음엔 이게 뭔가 했지만 장르적 약속인 듯하다. 히어로물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기본값이듯. 그래서 인간 능력을 초월한 외부 존재는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내부의 미물은 침입을 막고자 갖은 애를 쓰는 장면이 연출된다. 끝내 힘에 부쳐 열어주든, 술수에 빠져 열어주든, 맞이하는 자의 동의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고 이다음에야 난동을 부릴 수 있는 거다.


그러니까 악귀 등등을 삶의 고약함이라 가정했을 때 감정, 생각, 태도는 침입자를 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심약한 상태에서는 침범을 막을 수 없다(약한 자의 잘못이라 여기지 않는다). 운 좋은 소수를 제외하고 사는 건 고행이라 온갖 종류의 불행, 고난, 좌절이 쏟아진다. 한 번도 원한 적 없음에도 말이다. 끝이 아니다. 여기에 랜덤성이 가세한다. 법 없이 살아온 사람, 숭고한 자취를 남긴 사람도 어쩔 도리가 없다. 외려 무임승차인이 덜 불행할 수 있다. 랜덤성은 이토록 무자비하다.


그런데 인간이란 종자는 이런 엉망진창에서도 기어이 길을 찾는다(정말 놀랍다). 와중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골라낸다. 태어난 이상 태어나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고 선택한다. 어떤 시기는 희망을 놓아버리고 수면 아래로 침잠한다. 하지만 다시 떠올라 고민하고, 고민하고, 선택한다. 또 침잠하더라도 전보다 빨리 빠져나온다. 이 리듬은 사람마다 다르다. 살아가는 태도를 궁리하기 전 상태에 오래 머무르는 누군가가 있을 거다. 주어진 것을 원망하는 데 긴 시간을 쓰기도 한다. 어쩔 땐 원망과 함께하기를 (자신도 모르게) 택하기도 한다. 숱하게 들어왔던 라떼의 언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태도'가 이렇게 중요하다. 들이느냐 마느냐는 태도 한 끗 차이에서 비롯되니까. 인간이 싫을 때도 많지만 바로 이런 지점들이 호기심을 이어가게 만든다.


궁금한 점은 또 있다. 비슷한 불행과 고난을 겪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지나간 일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의 상처로 남는가.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심정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호기심의 사유가 강약을 선별하여 비난하거나 피해 가기 위함이 아니다. 차마 어쩔 수 없는 것들로 둘러싸인 삶 안에서, 근근이 살지언정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이다. 생존에 대한 의지가 상대적으로 강하거나, 과거 침범에 시달리다 고군분투 끝 자유를 얻은 것일 수도 있다. 운 좋게 상담하는 사람으로 살며 이런 귀한 서사를 자주 접했다. 괴로움 안에서도 자신의 발자취를 남긴, 불행에 잠식되지 않기를 선택한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게다가 평생의 상처일 줄 알았던 시간이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래도 내 직업의 소명은 불가피한 불행을 함께 견뎌주는 것일까. 평등하지 않은 불행을 맞이한 누군가의 삶이, 그래도 불행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말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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