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림의 통과 의례

삐뚤빼뚤한 마음

by 단아

k-무속에 대해 어디까지 경험해 보셨는지. 나라의 창시자(단군)가 샤먼을 겸했던 터전에서 나고 자랐지만, 기껏해야 미래가 불안한 20대 때 친구들과 신점을 보러 간 정도고, 여러 콘텐츠들을 통해 간접 체험한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정체 모를 '카더라'의 이야기 속에서는 토속 신앙이 약간은 서려 있어 어쩐지 익숙하달까. 먹을 만큼 먹은 나이임에도 주변에서 어떤 무당이 용하더라는 말을 들으면 귀가 솔깃해진다.


작년 말쯤이던가. ott플랫폼 티빙에서 <샤먼: 귀신전>을 봤다. 기묘한 사연들과 이를 파헤치는 무당들. 그리고 무당이 무당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도 함께. 어느 날, 불현듯 신병이 찾아왔다. 이미 녹록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부정하고 부정하다 지독한 신병을 앓고 어쩔 수 없이 신의 그릇이 된다. 무당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제2 관문이 펼쳐진다. 신의 대리자. 아쉬우면 열렬히 찾지만 일상에 들이려 하지 않는다. 필요한데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님비도 아니고..). 안온한 양지의 삶과는 거리를 두고 살 수밖에 없다. 원래 신의 대리자는 역사적으로 응당 대접받지 않았나..? 이 작고 작은 땅덩어리의 토속신앙은 왜 이모양인가. 일단 그릇을 고르는 기준부터 의아하다. 이왕이면 편안~하게 배 떵떵 거리며 사는 인물을 점찍어도 좋을 텐데. 하지만 기가 막히게 현생 담금질 당한 사람들을 알차게 뽑는다(그리고 더 굴린다...). 인간의 몸을 빌려 뜻을 전할 만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지 않을 건데 이상한 노릇이다. 혹은 '그래야만'하는 걸까. 고통을 겪어 봐야 고통 안에 있는 타자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가.


10년도 더 전에 본 사주에 의하면.. 뭐라더라? 조선시대였다면 기생, 무당, 도둑 소굴의 우두머리(?) 팔자라 했는데. 하나같이 음지의 업을 들먹여 꽤나 열받았으나 당시 내 인상이 무척 사나웠기 때문으로 추측해 본다. 좋게 해석하자면 뭐 번듯하게 뜻을 펼치지 못하더라도 소소하게 사람과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뜻이려니 싶다. 현생도 심리상담을 업으로 하고 있으니 얼추 결은 비슷하다. 게다가 예민함을 오래된 이슈로 갖고 있고, 예민함과 그에 수반되는 괴로움을 잘 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관점을 나눌 수도 있다. '예민한 건 신의 선물(?!)이니 잘 써먹어서 성공해야지!'가 아니라, 타인의 힘듦으로 향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빚어져 태어난 데 이유가 있나 싶고(결과론적 해석이다). 물론 신병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나 어찌 되었든 살피고 헤아리려면 부침의 통과 의례를 거쳐야 하는 것인지, 이같은 신의 설계(?)에는 의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항상 이런 무용한 생각들이 즐겁다. 늘 효율에서 멀수록, 샛길을 기웃거릴수록 흥이 난다. 역시 자본주의에 부적합하다. 빼어난 성취와 결과를 누리기엔 글렀다. 하지만! 이렇게 생겨먹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다. 잘 헤아리고, 잘 듣자.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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