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한 마음
한 때 신봉하던 말이 있다. 바로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 열렬히 믿었기 때문에 믿는 대로 보고자 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던 것이 한 번 이상한 놈(?)은 계속 이상했기 때문이다. 좀 달라졌나? 싶다가도 본색이 드러나는 게 예삿일이었고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끌끌 차는 걸로 마무리했다. 각종 연애사와 인간관계 고민에도 단골로 등장해서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참 편리하지 않은가? 원래 그런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게. 그러니 그렇지 않은 우리(나)와는 관계가 없고, '원래 그런'사람만 잘 피하면 된다고 믿는다. 하나의 문장 안에 너와 나의 불안을 가둔다.
본디 인간은 불완전하고 모순 덩어리여서 약한 부분이 많다. 누군가의 곤란이나 피해로부터 황급하게 선을 긋고, 피해 입은 존재를 재단한다. 참 못난 모습 중 하나다. 이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 저 사람이 OO 해서 그러 런 거야. 이런 안전감을 확보하기 위함일 거다. 그러니 말로 가두자. '역시 불안정 애착이라 안정적인 연애를 못 하나 봐!'➡(속마음: '나는 불안정 애착이 아니니까 무탈하게 연애하겠지.'). 자녀 양육에서도 마찬가지. 부모가 마음 읽기를 안 해줘서 트라우마가 생긴 거 같아(?). 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누구의 어떠한 점 때문에 돈을 못 모으고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식의 말. 살면서 한 두 번 들어본 것이 아닐 거다.
불안함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고약한 세상사에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점도 나쁜 게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하니까. 문제는 과하게 선을 긋고 가둔다는 거다(늘 적당히가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반듯하고 매끄러운 유행 격언이 싫을 때가 있다(혼자 설 수 있어야 둘이서 함께 할 수 있다던가..). 올바름을 지향하는 정도가 아닌, '그래야만 한다!'로 경직된다. 이 때문인지 타자화(他者化)가 성행한다. 너와 나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타인에게 원인을 돌린다. 말을 통해 가두는 행위가 빈번하다. 다만 이것이 실제로 안전할까? 원래 악을 쓰고 피하고자 하면 기를 쓰고 쫓아가기 마련이라 역설적으로 평생 더 불안할 수 있다.
어쩌면 예민함도 주변에서 한 마디씩 듣다 보니 이건 안 좋은 것이라 습득했을지도. 외부의 말이 내부로, 그리고 예민함 안에 우리가 우리를 가뒀을지도 모른다. 예민하니까 이건 안 돼, 못 할 거야, 무던하게 굴어. 예민함이 드러나지 않게 조심해. 덜 예민한 다수는 우리를 보며 '난 저 정도(?)는 아니야.'안심했을 거다.. 억울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미 지나갔으니 그렇다 치고. 어쨌거나 사람은 변한다. 주변에서, 스스로가 예민함 안에 가뒀을지언정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굉장히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착실히 늙었으며(ㅋㅋㅋ)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받다 보니 너스레와 사회성 콤보를 장착했다. 코어는 여전히 예민하지만 예민함과 함께 살아가기를 조금씩 배우고 있다. 가두지 않아도 되고, 가둘 수도 없다는 것을 겨우 받아들였달까. 예민해서 뭘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경계한다. 가만히 있으면 걱정이 뻗치기 때문에 일단 뭐라도 하고 본다. 다시 깨닫는다. 사람은 변하는구나. 오지랖도 부려본다. 마침 상담하는 인간이 아닌가. 쓸모를 발휘하자. 예민함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지는 말자고.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라고. 함께 이야기하자고.
지치지 않고 말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