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지만 이리도 즐거운

삐뚤빼뚤한 마음

by 단아

타고난 저질 체력. 에너지가 차고 넘쳐 낭비하기 바쁜 10-20대에도 활력 또는 생기를 실감하는 일이 드물었다. 하교 시간만 목 빠져라 기다리다 집에 가면 얼른 드러누워 뒹굴거렸다. 와식이 체질임을 의심한 적이 없다. 각종 신체 활동에 지지리도 소질이 없음을 일찍 깨달았고, 못 하는 것이니 더 멀리한 것은 당연지사. 신체 근력과 기능을 비활성화 상태로 오래 방치했다. 그럼에도 젊은 몸뚱이라 염증이나 손상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뭔가 잘못되어 감을 느꼈다. 밀대로 거실 바닥을 닦고 나면 꼬리뼈 쪽이 욱신거리고, 왼쪽 무릎이 가끔 시큰했다. 장시간 이동해야 할 때 앉은 자세에서 역시 왼쪽 허벅지 뒤쪽이 뭉근하게 당기기도 하고. 게다가 없던 체력은 바닥을 쳤다. 아 운동하기 싫은데. 일단 맨 몸 운동부터 혼자 조금씩 따라 할까. 제법 근육통이 있었고(얼마나 안 움직였으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운동한다는 간사한 뿌듯함에 빠져 꾸준히는 했다. 하지만 작년 가을, 룰루랄라 측정한 인바디에 2차 충격을 먹고(처참한 근육량) 역시 돈 내고 배워야 할 때가 왔군 하며 바로 필라테스 센터에 등록하기 이른다. 모종의 객기로 그룹에서 개인레슨으로 변경해 거하게 금전을 태우고 시간을 만들어 꼬박꼬박 출석했다. 이런저런 동작들을 제법 흉내 낼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하드웨어에 생각보다 문제가 많다는(골반 틀림, 측만경향 등) 정보를 획득했다. 특히 하체 부종이 심하고 툭하면 다리에 쥐가 나 개인레슨 선생님이 폼룰러와 마사지를 선사하셨다. 혹 아시는지? 뭉친 다리를 풀면 날카로운 비명이 나온다는 것을. 여기에 둔한 협응능력+겁+무존재에 가까운 상체 근력이 더해져 대부분의 동작을 뚝딱거려 지도자의 의아함을 자아냈다(예-'이게 왜 안 되지..?'). 특히 척추 움직임이 매우 뻣뻣해 롤업은 택도 없다. 선생님의 티칭은 세심하고 꼼꼼했기에 오롯이 내 몸뚱이의 문제였다. 너무너무 동작이 안 되는 날에는 시무룩한 채로 자기 비난의 테크트리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재밌었다. 즐거웠다. 속된 말로 더럽게 못 하는데 한 번의 결석도 없었다. 초반에는 오기가 컸지만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 가는 날을 기대했다. 으악으악 하다 보면 50분은 금세 지난다. 세상에. 이토록 '그 순간'에 집중한 적이 있었던가? 머리가 싹 비워졌다. 빡세게 운동한 며칠간 골골+기어 다녔지만 그래도 좋았다. 생각한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필라테스를 최우선으로 뒀다. 수업 없는 날에는 스트레칭과 폼룰러를 빼먹지 않았다. 못 하는 거 안 하고, 이상하게 효율이나 가성비를 따지던 인간이 무지성으로 운동을 했다. 이걸로 뭘 해보겠다는 심산 따위 없다. 그냥 했다. 즐거우니까. 심지어 하는 것만큼 근육이 붙지도 않았다(바란 적 없는 체지방이 빠졌다). 어떤 날엔 내 몸을 잘 아는, 지켜봐 온 누군가의 위로를 들을 때도 있었다(센세: '그래도 회원님은 어떻게든 하려고 한다. 롤업 못 해도 괜찮다. 잘하는 동작을 찾으면 된다.' 나: ㅠㅠ[개 큰 감동]).


얼추 조금은 따라 하겠다 싶어 그룹 레슨으로 바꾼 지 두 달째 되었나. 여전히 필라테스가 좋다. 시작하고 1년이 안 되었지만 (그리고 여전히 못하지만) 처음에 비해서는 나아졌다 싶다. 어떻게 보면 엉망진창에서 오 제법?으로 1년이 안 걸렸다는 거다. 자신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는 건 이런 것이로군. 즐거움이 곁들여진 무지성 운동이었지만 신체뿐 아니라 마음에도 영향을 미쳤다. 안 할 이유가 없으니 일단 해보자고.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이다. 가식도 3년이면 성품이 된다는 이반지하 작가의 말을 떠올린다. 마음을 키우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지금의 내 상태를 알고(인식), 받아들이고(수용), 필요에 따라 반복적으로 연습한다면(훈련) 변할 수 있다.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은 일부만 맞고 일부는 틀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상담이 직업인 사람으로서도 노력하고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역시 필라테스 덕분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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