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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햄찌 Nov 16. 2020

아파트 화단의 고양이 가족 이웃사촌

우리 아파트 화단에는 고양이 가족이 산다


장마를 앞둔 6월. 작은 아파트로 이사 왔다. 낡고 지하철역과 거리가 있어 비싸지 않았다. 소위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는 물건이다. 시장 논리와는 별개로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매력을 찾아가는 재미는 있다. 가볍게 달릴 수 있는 공원과 가깝고 버스 노선도 회사까지 꽤 편리한 편이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보너스까지 누릴 수 있게 됐다.      


동네에 익숙해졌을 무렵, 어딘가를 가고 있던 길이었을 것이다. 아파트 화단에서 고양이를 발견했다. 귀엽다. 나도 모르게 걸음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게 됐다. 고양이가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숨을 죽였다. 고양이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조경수와 무성한 잡초 사이에 몇 마리가 더 있었다. 귀여운 생명체들이 모여 있다니. 크기와 생김새를 봐서는 처음 눈에 띄었던 고양이가 어미, 나중에 발견한 세 마리의 고양이가 새끼들 같았다.     



고양이들을 처음 발견한 것은 지난 6월. 어미는 삼색 고양이다


고양이들에게 집중됐던 시야는 조금씩 넓어졌다. 화단에는 누군가 고양이 가족을 위해 조성해 놓은 공간이 있었다. (조악하지만 아늑해 보이는) 집과 밥그릇, 물그릇도 있었다. 밥그릇과 물그릇에는 사료와 물이 그득했다. 고양이 가족들의 식기는 깨끗했다. 주기적으로 관리해주는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심지어 이 사람은 감자탕이나 찜닭 같은 배달음식이 담겼던 일회용 용기를 물그릇으로 재활용하는 알뜰함까지 보였다.      

캣맘·캣대디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혹자에게 길고양이는 골칫거리다. 밤새 울어대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거나 찢긴 쓰레기봉투에 집 앞이 더러워졌다면 말이다. 고양이는 번식력마저 뛰어나다. 연간 4~5회 정도 출산을 할 수 있다. 그만큼 피해 규모는 확대된다. 민폐쟁이 고양이를 쫓아내지는 못할망정 보살피다니, 캣맘과 캣대디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도움을 줘야 이 같은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영역은 사냥이 이뤄지는 공간인 만큼 고양이에게는 생존과 직결된다. 사냥 능력을 상실한 고양이에게도 영역 본능은 남아있다고 한다. 기존 반려 고양이와 새로 입양한 반려 고양이의 동거가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번 영역을 정한 길 고양이 역시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새끼 고양이는 검은 고양이 두 마리, 삼색 고양이 한 마리. 총 세 마리다.


길 고양이는 악착같이 사람들의 쓰레기를 뒤질 수밖에 없다. 이틀 이상 음식을 먹지 못한 고양이는 간과 신장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또 사람이 먹는 자극적인 음식물을 섭취한 고양이의 배설물은 사료를 먹은 고양이의 배설물에 비해 악취가 심하다.      


사료와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것이 길 고양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인 셈이다. 물론 쉽지 않다. 음식을 챙겨주고 아늑한 거처를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호의를 베푸는 순간 고양이들의 안녕에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운 좋게 성묘가 된 고양이는 빠르게 개체 수를 늘려갈 것이고, 피해 규모는 확산될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지난 4~5개월간 화단의 고양이들을 관찰하면서 열빙어 트릿(간식)을 서너 번 사준 게 전부다. ‘친절한 방관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간식은 그들이 제공한 눈요깃거리에 대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TNR을 강조하더라. 길 고양이를 포획(Trap)해 중성화(Neuter) 시킨 뒤 다시 그들의 영역으로 보내(Return) 주는 방식이다. 다수의 지자체에서 길고양이 TNR 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지자체 별 예산 규모는 천차 만별이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5월 전국 지자체 TNR 예산 현황을 조사해 발표(https://blog.naver.com/animalkawa/221963761628)했다. 가장 많은 예산을 배정하고 있는 곳은 경기도 수원시였다. 연 3억7211만원을 TNR 예산으로 배정해뒀다. 반면 전남 강진군·구례군·담양군은 각각 75만원의 TNR 예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는 지자체도 있다.      


전국 지자체 TNR 예산현황(출처=동물연대)


고양이는 구조 동물군에서 제외되는 준야생동물로 법에서 분류된다. 민간 동물보호단체에서 함부로 구조할 수 없다. TNR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의 경우 신고자 개인이 15만원 정도의 예산을 부담해야 된다.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결국 법적 분류, 지자체 예산 확대 등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길 고양이와의 불편한 공생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겨울을 앞두고 있는 요즘. 아파트 이웃사촌 고양이 가족은 화단에 있는 집과 지하에 마련된 미화원 휴게공간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햇볕이 좋은 날에는 화단에서, 바람이 찬 날에는 지하에서 머물고 있다. 화단에 있는 밥그릇과 물그릇도 여전히 풍족하다. 다행히도 아파트 주민들과 공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오늘도 언제 마주칠지 모를 이웃사촌을 위해 열빙어 트릿을 가방에 챙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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