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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은 May 27. 2024

극단적이고도 주관적인 연애기억

그래, 나도 그들 기억엔 쓰레기였겠지.

지난 연애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글로 풀어내면서 어느 정도 감정이 정리된 것도 있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나도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쌍방인 연애관계에서 과연 나는 순도 높은 사랑을 아낌없이 주는 성숙하고 고결한 존재였을까? 당연히, 절대로, 결코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물론 애인과 싸우는 중에 혹은 헤어진 뒤에 내 감정을 챙기는 것은 중요하지만, 다 끝난 연애를 돌이켜보면 나 역시 정서적으로 꽤나 불안했고, 불안정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안하고 불안한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 불안정한 세상을 어떻게든 견디고 또 버티고자 했지만 그게 녹록지 않았던 거겠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헤어졌겠지.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나마 잘했다는 생각을 한 것은 '진짜 최선을 다해서 사랑한 것'이다. 그렇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나니, 헤어지고 나면 딱히 미련도 후회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게 되었던 것 같다. 굳이 지난 연애들에 후회를 찾자면 '더 빨리 헤어졌으면 좋았을 텐데'정도가 있겠지만 그 또한 내 마음이 다 하지 못한 상태에서 헤어지면 괜한 후폭풍만 있었을 것 같아 그런 후회도 길게 가지 않는 듯하다.


그럼에도 내 성격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어쩜 이렇게 연애를 계속할까? 연애를 하지 않으면 허전한 걸까? 어떻게든 계속 이어지는 연애가 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바람으로 끝난 연애가 너무 충격이 컸던 것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별로 연애를 하고 싶지 않았어! 근데 그들이 막 돌진하는 데 어떡해!"라고 생각해 왔지만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연애'라는 행위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돌진한 것도 어쩌면 나에게 뻗을 자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어떤 무언가, 굳이 결핍까지는 아니더라도 친밀함에 대한 욕구가 가득했기에 그런 부분을 캐치한 상대방이 돌진한 것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내가 '아니,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라며 항변할 이유도 없고 또 앞으로의 연애에서도 그동안에 그랬던 것처럼 수동적인 자세로 시작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무튼, 내 나름대로 연애 전-후로 나의 모습을 정리해 봤다. 나를 돌아보는 거라 기억은 미화되어 있을 테고 아무래도 내 일이라 지극히 주관적일 테지만, 그래도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연애 전, 수동적이면서도 이상하게 적극적인 모습:

사람이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당연히 갑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이후에 나에게 호감을 표시했을 때 나는 꽤나 당황하면서도 이상한 방식으로 적극적이었던 것 같았다. 만나보고 싶다, 사귀면 잘해주는 타입이다. 등의 평범한 플러팅 속에서 나는 "네, 의견 감사합니다. 적극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응답드릴게요."같은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이것이 인티제 특성도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상대방은 '어?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또 내가 "당신을 만나보겠다."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했을 때에도 당연히 '이 사람도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싶어서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사귀고 나니 본인 감정과 속도나 깊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불안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이. 근데 여기서 질문이 생겼다. 나는 왜 상대방의 플러팅에 '최대한 빨리'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까?


일단은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들 연애 시장에서 '연애' 자체를 단기간에 이뤄야 할 프로젝트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괜히 상대방의 시간을 뺏으면 안 될 것 같았던 것 같다. 또 그렇게 시간을 끌면 나도 모르는 새 '어장관리녀'가 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대답해줘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 때문에 20대에는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지 여부도 잘 모르고 사귄 적도 있지만 30대에는 그런 적은 없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압박을 갖고 대답하기보다 내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또 시간이 더 필요하면 양해를 구해보기로 했다. 


연애 중:

연애를 하는 동안에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사실 나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러나 최근의 연애(A-B-C)를 돌이켜보면, 대화하는 것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고 소소하게 웃음 포인트가 맞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자세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A랑은 대화가 좀처럼 이어지지 못했고 B는 본인이 기분이 좋을 때 혹은 본인이 뭔가를 원할 때는 적극적이고 수용적으로 대화를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늘 비난과 화가 돌아왔던 것 같다. 특히 B는 비아냥거리는 말투와 조소, 부정적인 말투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애인인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늘 부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본인에게는 늘 관대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A와 B 모두 연애가 끝나고도 끊임없이 연락을 해서 "너만큼 나를 사랑해 준 사람은 없었다."라고 말하며 재회를 바란다고 했기 때문에 대충 내가 잘했었나 보다 추측만 하고 있다. 그저 외로움에 재회를 원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그런 빈말이라도 입밖에 나오는 정도라면 그래도 대충 B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넘기기로 한다.


C와의 대화는 어땠는지? 생각해 보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는 정말로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 한 사람인데, 분명 모임에서 만났던 C는 정말 재밌고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하루하루 가까워질수록 이상했던 기억만 난다. 그는 같이 있다가도 갑자기 혼자 터져서 웃는 일이 많았고 웃음이 터진 이유도 조금 공감하기 어려웠다.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느 날인가 함께 갔던 음식점에 '풍자의 또 간집' 포스터가 붙어있었는데 계산을 다 하고 밖에 나와서 뜬금없이 '풍자 놈이 갔던 곳이었네'라고 C가 말했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그러게, 역시 풍자님이 맛잘알이네 맛있네.'라고 대답했더니 '풍자님이 아니라 풍자 놈이지. 쟤 남자잖아.'라면서 길에서 혼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는 솔직히 이 말이 너무 당황스러웠고 또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멍하게 그가 웃음이 멈출 때까지 서있었다. 그동안 C가 자신은 정말 편견이 하나도 없고, 젠더의식이 있는 사람인지 자주 말하던 사람이라 더욱 당황했던 것 같다. 웃음이 그치고 나는 이번에는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에 말을 꺼냈다. '아니, 성별정정도 끝난 사람을 굳이 놈이라고 칭할 것은 또 뭐야?'라고 물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자는 남자다.'라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대화에서 본인이 만들어 놓은 가면이 나로 인해 벗겨지는 듯한 순간이 오면, 나에 대한 비난을 덧붙였는데 '그냥 웃으면 되는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웃지 못하네, 내가 풍자 앞에서도 이러겠니?' 이런 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는, 혼자 웃긴 C와의 불편한 대화는 한 달이나 계속되었고 모임에 참여하던 사람들에 대한 뒷담과 나에 대한 앞담을 다 듣고서야 끝이 났던 것 같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꽤 가깝게 지낸 사이기에, 나에 대한 비난(쓸데없이 진지하다는 평을 포함하여)들을 지금까지 곱씹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저 흘려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차피 남을 평가하는 것은 자신의 인식세계를 기반으로 두는 것이기에 꼭 자기가 가진 세상 속에서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게 되니까. 결국 C도 타인(나)에게서 자신의 어떤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기준에 따라 나의 의도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평가한 것뿐, 그는 나를 진정으로 위하고 사랑해서 했던 조언은 아닐 테니까. 나 역시 그를 이렇게 '찝찝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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