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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사의 효용성

<두 여자의 집> 30대 딸과 60대 엄마의 아옹다옹 일상 돋보기

오래도록 이 곳을 찾지 않았다. 가을이 오고 해가 짧아지면서 동굴로 들어가려는 나를 느낀다. 처음에는 이 곳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쓰는 게 좋았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데, 지난 몇 주 동안은 내 안에 더이상 글감이 차오르지 않았다. 높은 가을 하늘의 조각구름을 보아도, 노랗고 붉게 물든 나뭇잎을 보아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루라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사는 것만이 중요했다. 오늘은 기사도 없고 하니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감정을 꺼내려 한다. 

 최근에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문 앞에서부터 기름 냄새가 진하게 났다. 그날은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2인용 식탁 위로 엄마와 내가 쓰던 밥 그릇 2개를 포함해 부엌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그릇이 죄다 꺼내져있었다. 밥 그릇 위로 봉긋하게 담긴 하얀 쌀밥 6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안 먹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토란국도 보였다. 생선과 고기, 호박전과 산적, 색색의 나물 등 부엌에는 음식들로 가득했다. "많이 준비했네" 라는 나의 무심한 말에 엄마는 성실하게 작성한 숙제 검사를 앞둔 아이처럼 신이 난 듯 보였다. 엄마의 부탁으로 옷을 갈아입고 막걸리와 유과를 사러 마트에 다녀왔다. 이날 제사에 초대된 조상님들은 나의 고조부와 고조모, 증조부와 증조모, 조부와 조모 모두 6명이었다. 

 아빠랑 헤어지고 나서도 꾸준히 제사를 챙기고 있는 엄마가 이해가 되는 건 아니다. 시집을 왔으니 이 집 사람이라는 엄마의 말이 나에겐 딴 세상 이야기같다. 다 지워버렸으면 싶은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엄마가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같다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아빠가 챙기겠지, 사지 뭘 다 만들고 그래, 조상님들도 우리 사정 아시니까 이해할 거야, 기도나 하면 되지 제사까지..."라고 말해봤지만 엄마가 쌓은 생각의 성은 굳건하다. 엄마는 제사 음식을 만들면서 행복해한다. 버스로 몇 정거장 떨어진 재래시장까지 다녀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엄마를 막을 용기까진 없다. 그건 나와 엄마의 평화를 깨는 전쟁 선포와도 같다. 

 제사라고 해봤자 초를 켠 뒤 천주교식으로 기도드리는 게 전부지만, 상을 펴고 음식을 담고 또 나르고 절을 하고 음복을 했다. 기왕 준비한 음식 조상님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집에 잘 머물다 가시라고 기도했다. 

 가만히 앉아 생각했다. 어릴 적 명절이면 시골 집에 가면 제일 먼저 숨어들던 증조할머니방의 구조나 할머니의 채취가 묻어있는 이불을 덮고 누워 텔레비전을 보던 일, 명절 아침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사촌동생들 절을 대신 받으며 장난치던 일, 할아버지가 배달오토바이에 치어 의식을 찾지 못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울음, 할머니가 내 손 잡으며 항상 너희들 위해 기도한다며 서울가는 우리 가족을 배웅하던 모습 등을 떠올렸다. 아직도 생생한데 돌아보니 20년은 더 된 기억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나머지 세분은 잘 느끼지 못했지만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아주 약간은 들었다.  

 제사를 드리는 게 시대에 어긋났다고, 미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상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걸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빠도, 오빠나 새언니도 없이 엄마 혼자 음식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이해할 만큼 나는 착하지 않다. 엄마는 무얼 놓지 못 하고 있는 걸까. 그런 행동들로 어떤 위로를 받는 걸까. 엄마는 정말 조상님들이 나와 오빠에게 복을 가져다 줄 거라 믿을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생각을 멈춘다. 엄마의 마음을 조상님들이 알아주셨으면 하길 바랄 뿐이다. 

 참, 이날 엄마가 조상님들께 요청드린 기도는 나의 결혼이었다. 그때 잠시 제사가 후손에게 주는 효용성이 무엇인지 따져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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