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사람 - 30대 초반

by The Other Game

올 것이 오고, 갈 것이 갔다


서른이 되었을 때 나는 여전히 스포츠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었다. 열정을 쏟아부은 만큼 점점 더 많은 기회가 따라왔다. 때로는 버겁게 또 때로는 가뿐하게 일을 해냈다. 딱 그 정도 균형으로 일이 주어졌다. 야근과 대학원에 치이느라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고,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취미를 즐기며 하루하루를 채웠다. 일도 여전히 즐거웠다. 지루할 틈 없이 경쾌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 무렵 나는 결혼을 했다. 결혼은 다소 갑작스러웠다. 마음의 준비가 단계적이지 않은, 사랑과 의리 사이 어딘가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것도 분명 내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 막막해하며 결혼 생활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일에서는 안정감을 누렸지만, 2년 간의 결혼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그 여파인지 혹은 회사와의 인연이 다했는지, 이 시기에 또 한 번 이직을 하게 되었다.


서른둘, 이혼과 이직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며 삶은 크게 흔들렸다. 이혼을 겪으며 나는 그제야 나 자신을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은 절대 견딜 수 없으며, 무엇은 의외로 감내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픈 일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감당해야 마땅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올 것이 오고, 갈 것이 간 것뿐이었다.


이혼을 통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가족을 향한 내 마음가짐이었다. 늘 무언갈 잘해야만 날 인정해 줄 거라 생각했던 아빠는 사실 언제나 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었음을,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날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 성격을 유별나고 예민하게 본다 생각했던 오빠는 내 소식을 전했을 때 내게 어떤 판단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계속해서 미안해하고 아파했다. 엄마의 그 모습은 나를 몇 번 무너트렸는데, 나는 부모님께 사실은 죄송했으면서도, 이혼은 죄가 아니라며 되려 큰소리를 치고 오히려 잘 된 일이라며 이혼을 통해 엄청난 인사이트를 얻은 척을 했다. 그 모든 흉내와 괄괄 거림을 가족들은 그냥 지켜봐 준 것 같았다. 새언니는 조카가 나중에 고모처럼만 컸으면 좋겠다고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언니가 그 말을 내가 아니라, 우리 엄마에게 해준 것이 고마웠다. 자랑스럽고 멋진 고모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단순하고 또렷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또 다른 안식처가 되어준 회사


새로 이직한 곳은, 같이 일했던 동료의 추천으로 알게 된 곳이었다. IT 대기업의 교육팀이었다. 당시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던 회사였고, 조건도 현재보다 좋았다. 무엇보다 거의 모든 일을 혼자 담당하며 체계보다는 유연성을 중시하던 외국계와 달리, 역할이 세분화되고 체계가 잡혀 있는 대기업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마침 그런 체계를 배우고 싶던 7년 차 시점이었다.


이직한 곳은 이전과 모든 것이 정반대였다. 업무 방식, 회의 문화, 이메일 커뮤니케이션까지 모두 달랐다. 대기업의 문화와 체계를 배우고 싶어 왔지만 '이건 왜 하나요?', '다른 방식으로 해볼 수도 있나요?' 같은 질문이나 제안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긴 아니었다. 주어진 것을 익히고 혹시 모를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문화였다.


또한 여기서는 혼자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일도 없었다. 모든 일이 수차례의 논의를 통해 가장 안전하고 보수적인 방식으로 실행되었다. 답답했지만, 혼란스러운 내 사적인 삶과 달리 회사의 체계와 팀 단위로 일하는 방식은 오히려 안정감을 주었다. 답답함과 편안함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새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은 지금도 나에게 좋은 인연으로 남아있다. 개인적으로 지치고 힘들었던 나의 서론 초반을, 그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날 알고 아끼던 사람처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었다. 30년이 넘게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사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두 발이 땅에 닿아 있기 위해


이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로 전사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하루 종일 집에서 홀로 지내야 했다. 아침 햇살에 눈을 뜨면 모든 순간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평화로웠지만, 해가 지면 혼자라는 현실이 묵직하게 가슴을 치고 갔다.


그건 단순히 곁에 사람이 없어 오는 외로움이 아니었다. 아빠가 몰던 배에서 내려 잠시 다른 사람의 배에 올랐다가, 이제는 내 배를 홀로 몰고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판단과 노력에 따라 순항할 수도, 파도나 암초에 걸려 고꾸라질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밤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했던 건, 내게 필요한 것이 대신 배를 몰아줄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다. 망해도 내 손으로 망하고, 잘돼도 내 손으로 잘되는 삶을 바랐다. 내게 필요한 건 배를 잘 몰아야 할 이유였다. 가족이든 커리어든 무엇이 되었든, 지키고 책임질 무언가가 생길 때 사람은 더 강해지고 더 즐거워진다. 내가 느낀 공허함은 외로움이라기보다 그런 부재였다. 마치 20대 초, 몰디브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해지던 순간처럼.



그렇게 1년쯤 지났을까, 문득 대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을 집중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를 고통의 시간이 지나더라도 최소한 학위는 남을 터였다. 그래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 불안은 두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아서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찾느라 둥둥 떠 있지 않고, 과거를 곱씹크라 밑으로 가라앉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미션들이 필요했다. 현재의 일을 하나씩 밟아 나갈 때만 두 발이 단단히 땅을 딛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다음의 사람〉은 인생의 전환과 성장을 다루며, 2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는 연재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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