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그리던 미래가, 이제는 내게 일상이고 현실이 되어 있었다.
보트 위에서 인도양을 바라보던 내가, 지금은 강의실에 앉아 있다. 돌고래를 부르겠다며 보트 엔진을 켜고, 몰디브 하늘을 가르는 경비행기에 몸을 싣던 내가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니- 하는 대학원생의 하루를 보낸다. 쏟아지는 과제와 이해할 수 없는 이론들과 학자들 속에서 머리는 점점 돌처럼 굳어가는 것 같았다.
석사과정을 시작하면 바로 석사생답게-변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자격이란 게 그렇지 않았다. 자격을 얻었다고 해서 모두가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자격이 나를 넘어서는 그 무서움이 조금씩 커졌다.
강의실에서의 지식들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처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답답하고 지루했다. 영업직이었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던 걸까. 수치화되지 않는 단기적 성과가 없이, 공부를 하는 게 자꾸 날 멍 때리게 했다. 공부하는 나-를 보는 건 즐거웠지만, 그다음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일하고 있을지를 상상할 수 없었다.
반면, 연구 자체를 즐기는 친구들은 달랐다. 어떤 학자나 이론을 알게 되면 관련 선행연구를 찾아 읽었고, 새로운 개념이 나오면 추가 학습하는 일이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연구의 결과가 실제로 어떻게 활용되는지가 궁금한 학생이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캠퍼스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결국 6개월 만에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우연히 본 채용공고에서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의 Retail Trainer를 모집하고 있었다. 리테일 매장 교육 업무였다. 내가 해왔던 세일즈 경험과, 짧지만 제품 교육 경험이 맞닿아 있었다. 계약직 1년이었다.
첫 회사와 비교하면 연봉과 복지는 반토막이었다. 하지만 이미 퇴사를 했던 터라 비교할 이유는 없었고, 학업과 병행하며 경력을 쌓을 기회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게 은인이자 동시에 애증의 대상이 된 상사 J를 만났다.
J는 내게 처음으로 교육에 대해 1부터 10까지 알려주고, 어쩌면 지금까지 내 안에 심긴 '일에 대한 가치관'을 심어준 사람이었다. 일 욕심이 많았고, 능력도 있었다. 사소한 일을 맡길 때조차 그 일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지금도 따라 할 수 없는 그녀의 가장 큰 강점은 '구체적인 타임라인과 명확한 업무 내용 지시'였다. 무엇을, 왜,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알고 하는 일은 엄청난 성취감을 주었다. 경주마처럼 그 일을 마치고 J에게 제출(?)하면, J는 본인이 준비하던 것과 내 결과물을 퍼즐처럼 맞춰, 내 눈앞에서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 보여줬다. 그 과정을 보는 것은 어떤 보상보다 뿌듯했다. 내가 팀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 J에게 그럴듯한 팀원으로 인정받는 것 같은 뿌듯함이 이 온 가슴을 채웠다.
강점이 과잉될 때 오는 맹점도 있기 마련이다. J는 현장 경험을 중시하여, 계약직임에도 나의 매장 방문 업무를 많이 지시했다. 각 매장을 돌고 돌아오면, 그 시간이 저녁이든 밤이든 꼭 1시간 정도 일대일 미팅을 했다. 그리고 면접 보듯 여러 질문들을 내게 던졌다. '매장 가는 길에 어떤 브랜드들이 있었는지, 그 브랜드엔 어떤 고객들이 있었는지, 다른 브랜드 카운터에 서있는 직원들의 표정은 어땠고, 왜 그런 거 같은지' 같은 것들이었다. 오로지 우리 매장만 생각하며 직진했으니 대답할 수 없었다. 답을 못하면 호되게 혼났다. 그래도 그게 나에 대한 기대와 애정에서 비롯된 관심이라 생각했다.
사실 꽤 자주 발끈하는 평소의 내 성격 상, 조금은 대들거나 기분 나쁜 티를 낼 법도 했을 텐데 J의 모든 훈계에는 말문이 턱- 막혔다. J가 주는 위압감은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떨릴 정도다. 능력이 워낙 출중하니 어떤 반박도 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J의 인성적 결함이 드러날 때에도, 난 그걸 보지 못했다(보지 않음에 가까웠다).
J의 회사 내 인간관계를 말하자면, 엉망에 가까웠다. 상사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 보다 몇 배는 더하게 동료들의 미움을 샀다. J는 개의치 않았고 오직 상사만을 위해 일했다. 덕분에 나는 입사 초기부터 은근히 따돌림을 당했다. 입사 첫날부터 인사는커녕 눈 맞춤도 받아주지 않고, 업무 요청은 번번이 거절당하거나 교묘하게 묵혀져 곤란한 적이 많았다. 라운지에서 다른 팀 사람들을 우연히 마주칠 때면, 그들은 J 험담을 은근히 하며 내 동조를 구하기도 했지만, 나는 동조는커녕 그녀를 오히려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그때의 나는 J의 성실하고 충실한 지지자였다. 회사 내 관계를 생각하면 외롭고 서글펐지만, J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았기에 만족했다.
그 회사에서의 삶은 점점 다람쥐 챗바퀴처럼 굴러갔다(그런데 매우 빠른 챗바퀴,,). 야근은 일상이었고, 퇴근 후에는 택시를 타고 대학원으로 향했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회사로 돌아가 일을 마무리하곤 했다. 아무리 늦게 퇴근한 날도 그다음 날에는 반드시 정시에 출근해야 했다. 1분도 늦을 수 없었다. 지각이라도 하는 날이면, 바로 근처 회의실로 호출이 됐다. 일로 승부를 보려 하기에, 그 외 어떤 책 잡힐 일을 만들지 않고자 하는 J의 원칙이었다. 출근 압박 때문에 지하철에서 배가 아픈 일이 잦았고, 중간에 내려 화장실에 갈 수도 없을 만큼 모든 순간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고된 6개월이 지났고 어느 날 인사팀으로부터 정규직 전환 제안이 들어왔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눈앞에는 더 단단히 묶일 게 뻔한 길이 놓여 있었다. 그 순간의 복잡한 심정은 지금도 뚜렷하다.
정규직 전환을 수락했다. 예상했었지만 더욱 빠르고 무거운 챗바퀴가 돌았다. 반복되는 야근과 버겁게 이어지는 하루들 속에서 몸과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렇게 또 다른 반년이 흘렀을 즈음, 내 커리어에 전환점을 찍을 기회가 다가왔다.
늘 마음속에서만 그리던 회사가 채용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그날이 또렷하다. 어느 날, 석사 동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거 딱 너를 위한 자리 아니야?' 링크 하나가 달려 있었다. 화면을 보는 순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바로 내가 꿈꿔왔던 스포츠 브랜드, 그 안에서의 인하우스 HRD 포지션이었다.
긴장과 기대 속에서 몇 달에 걸쳐 면접을 거듭했다. 그 시간은 길고도 길었다. 매장에서 교육을 진행하던 도중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 서둘러 쉬는 시간을 공지하고 매장 밖으로 나왔다. '합격하셨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부터 백화점 특유의 향까지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세상이 전혀 다른 색으로 물드는 듯했다.
그 시기는 석사 논문을 쓰며 매일같이 마음이 무너졌다 다시 일어서던, 그야말로 치열한 날들이었다. 그래서일까. 늘 ‘다음’을 준비하던 내게 마치 보상과 선물 같은 시간이었고,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 같은 순간이었다.
그곳도 분명 단점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와 스포츠에 대한 애정으로, 불만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모든 일과 순간이 배움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그 어떤 것보다 유익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소중한 인연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머뭇거림 없이 달려든 순간이었다. 계산과 고민 대신 확신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그 확신은 언제나 나를 새로운 기회로 데려다주었다.
오피스에 들어서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스포츠의 문화가 깃들어 있었다. 스포티한 인테리어는 물론,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도 스포츠 정신과 맞닿아 있었다. 그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오랜 시간 믿기지 않았다.
그곳에서 내게 주어진 일들은 늘 내 능력을 살짝 넘어서는 것들이었다. 어떤 날은 버거워 울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예상보다 수월하게 일을 해내기도 했다. 그렇게 부담과 성취가 교차하는 날들이 쌓여,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다양성과 포용성을 주제로 연간 프로그램 기획 업무가 주어졌다. 하고 싶은 것을 가감 없이 담아낸, 내 기준에서는 야심만만한 기획안이었다. 당시 3년 차 주니어였으니, 솔직히 많은 부분이 축소되거나 수정될 거라 예상했지만 부서 헤드는 모든 제안에 이견 없이 바로 진행하라고 했다. 그 회의가 끝나고 얼떨떨했다. 내 기획력을 인정받아 오는 얼떨떨함이 아니라, 이 모든 걸 이제 어떻게 해내나 걱정에서 오는 얼떨떨이었다. 몰래카메라이길 바랐지만, 헤드는 진심이었다.
하루는, 이걸 진짜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엄습해 훌쩍이며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퇴근하려던 헤드가 우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네가 기획한 건 충분히 가치 있고, 그 과정에서 네가 더 많은 걸 배우게 될 거라고 생각해'. 그 말에 더 눈물이 났다. 진짜 돌이킬 수 없구나. 가스라이팅인가- 헷갈리기도 했지만 묘하게 의지가 불타오르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낸다, 그것도 아주 잘'이라는 결심이 섰다. 그 치열하고 숨 가빴던 1년은 지금도 내게 가장 도움이 된 업무 경험이자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그곳에서 나는 교육만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역량 개발과 성과 관리까지 배울 수 있었다. 기업 교육은 결국 성과와 연결되어야 하며, 조직의 미션과 비전에 부합하는 교육을 기획해 실제 현장에서 업무와 팀 운영에 도움이 되도록 설계하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이 내겐 너무나 자연스럽고 의미 있게 다가왔다. 특히 핵심 인재들의 커리어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체계적인 Career Path를 만들어가는 일은 큰 매력이 있었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조직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그 성장이 다시 조직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만들어가는 브랜드의 철학은 내 마음 깊이 새겨졌다.
나의 20대 후반은 변화로 가득했다. 종종 사주를 보러 가면 '20대가 참 힘들었겠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 일을 공부했고, 결국 원하던 자리까지 왔는데- 뭐가 힘들었다는 걸까?
하지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들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는 '다음'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우던 시간들이 촘촘했다. 매일이 분주했고, 마치 숨겨둔 보물을 찾듯 살아가며 1분을 1초처럼 보냈다. 돌아보면 치열했고, 그래서 공허했다. 너무 빨리 정신없이 달렸다.
얼마 전 갤럽의 글로벌 강점코치 과정을 수료했다. 34개의 강점 중 상위 5개의 강점을 살펴보고 있자니, 괜히 20대의 내가 애틋하게 느껴졌다. 5개 중 ‘최상화’와 ‘존재감’이라는 강점이 날 자꾸 콕콕 쑤셨다. 마음이 아프기까지 했다. 최상화는 ‘좋음’에 머물지 않고 ‘탁월함’을 향해 끊임없이 달리게 한다. 만족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존재감은 주변의 인정과 칭찬에서 힘을 얻는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인정받을만한 일을 찾아 나서는 마음. 결국 이 둘이 내 안에서 부딪히고 불타오르며 나를 지지고 볶았던 게 아닐까.
과정 중에 한 코치님이 내게 물었다. '그 두 강점이, 지금 자신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안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그 질문에 멈칫했다. 최상화와 존재감이 내 마음을 듣는다면 내게 뭐라 할까. '우리가 널 힘들게도 했지만, 동시에 널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우리야.'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마음이 이상했다.
숨 가쁘게 달려온 20대는 이제 감사로 남아 있다. 부모님의 지지, 친구들의 응원 같은 이미 주어진 복 덕분에 하고 싶은 걸 선택할 수 있었다. 아직 30대는 끝나지 않았지만, 20대를 이렇게 쭉 돌아보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떤 걸 하지 말아야 할지를 알 것 같다. 너무 많이 생각하기, 걱정하기, 고민하기 등.
두서없이 써 내려간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특히 앞으로의 나에게 의미 있게 닿기를 바란다.
〈다음의 사람〉은 인생의 전환과 성장을 다루며, 2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는 연재 시리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