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좋아했다. 선수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스포츠산업학과가 처음 신설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것만 같았다. 수포자로서 내신은 형편없었지만, 다행히 모의고사 성적은 괜찮았다. 본격적인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체대 입시 학원에 등록했다. 거기엔 단순히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운동 괴물들이 모여 있었다. 그 사이에 있으니, ‘내 길은 공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마치고 독서실에 돌아오면 또 거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내 길은 운동인가?’, 대체 난 어느 세계에 살고 있는가-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때의 난 마치 줄타기를 하듯 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듯한 그 아슬아슬한 감각이 오히려 그 시절의 나를 버티게 했다. 두 길은 반대 방향의 길이 아니었다. 사실 한 길을 정할 필요도 없었다. 어떤 날은 포장된 길을 걷다가, 또 어떤 날은 도로 바로 그 옆에 나있는 풀숲을 헤치며 걸었다.
운동과 공부로만 가득 채운 고3 시절이 끝날 즘, 다행히 원하던 학과에 합격했다. ‘내가 꿈꾸던 길로 들어왔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것도 잠시, 입학 첫날부터 후회가 그득했다. 이 학과 역시 체대의 문화 속에 있었고, 그 안엔 엄격한 규율과 위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가혹행위와 이해하기 힘든 규칙들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용납됐다.
그때의 나는 그 문화를 따르는 걸 택했다. 새벽에 집합하라면 집합하고, 엎드려뻗치라면 뻗쳤다. 왜 나에게 고함치고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화도 났지만 대부분은 측은지심으로 선배들을 바라봤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 내가 바꿀 수 있는 위치가 된다면 그때는 하지 않으면 된다고 여겼다. 그 사이, 자퇴를 선택하는 동기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퇴보다는 교환학생으로 그 현실을 벗어났다.
교환학생과 클럽메드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새 대학 3학년이 되어 있었다. 그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앞으로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가장 관심 있는 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졌다.
하지만 여전히 정확히 하고 싶은 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막연히 마케팅 직무를 목표로 대기업부터 외국계까지 네임드 회사를 중심으로 지원서를 냈다. 몇 군데는 붙고, 수십 군데는 떨어졌다. 그러다 한 외국계에서 영업관리직 포지션이 떴다. 처음 접하는 산업이고 생각했던 직무도 아니었지만, 괜찮은 연봉과 대우 그리고 회사의 네임밸류에 혹해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도 그곳은 재택근무가 기본이었다(지금 생각하면 놀랍기 그지없다!) 팀 미팅이 있는 오후에만 사무실에 출근했다. 재택을 할 수 있도록 홈 오피스도 지원해 주었다. 복지도 연봉도 좋은 곳이었지만, 옆에서 직접 보고 배울 선배와 상사, 그리고 협업하는 팀 문화가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영업관리 일을 하며 한 가지 확실히 배운 게 있다. 누군가와 관계를 잘 쌓는 방법은 말발이나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 성실함과 진정성이라는 것이다. 내 의도가 진실되고 태도가 성실하면, 언젠가는 그 마음과 기회가 닿았다.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서 관계를 쌓는 게 너무 불편했다. 업에 대한 가치관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영업하려고 고객에게 잘해주는 것 같이 느낄까 봐- 그게 참 싫었다. 그 이후 다른 회사에서 만난 선배가 내게 '목적이 있다고 해서 진실되지 않은 건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렇지 그때 난 정말 고객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지' 그 마음을 스스로 알아챘었다면 조금 더 잘 지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또, 내가 고객을 꾸준히 찾아가지 않으면 정말 만나야 할 순간에도 만날 수 없었다. 우연히 운이 좋을 때도 많았지만, 그건 도박이었다. 내가 고객을 만나기로 스스로 다짐한 날에, 어떤 컨디션이든 고객을 만나러 가는 그 태도 자체가 중요했다. 결국 만날 수 없게 되더라도 그 이후의 기회는 그 성실함에서 시작되곤 했다.
입사 1년쯤 지났을 무렵, 내 일상에 또 한 번의 바람이 불었다. 본사에서 신제품이 출시되면서, 제품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전 세계 지사에 전파하기 위한 Train the Trainer(TTT) 교육이 열리게 된 것이다. 각 나라에서 단 한 명씩만 선발해 교육을 받았는데, 내가 그 자리에 뽑혔다.
인도에서 열린 TTT 교육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전문가들에게 직접 배우며 얻은 지식과 정보 그 자체도 신선했지만, 진짜 신선함은 그 이후에 찾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팀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고, 교육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해 이해하기 쉽게 수정하고 보완했다. 또한 고객들이 특히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은 따로 추려, 고객들을 위한 별도의 세션을 마련하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건 떨리고 긴장되는 일이었지만, 열심히 준비한 만큼 사람들의 눈빛을 반짝이며 집중할 때, 너무나 커서 감당하기도 힘든 성취감을 느꼈다.
직접 매출을 만들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는 영업도 매력적이었지, 팀이나 고객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을 잘 정리하고 교육 콘텐츠로 만들어 전달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들이 성과를 내거나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나에게 훨씬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런 재밌는 일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두근거렸다. 어떻게 하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아쉽게도 당시 회사는 글로벌 본사에만 교육팀이 있었다. 한국 지사는 물론, APAC에도 교육 담당자 포지션은 없었다. 다른 회사를 찾아보니, 교육 관련 표지션이 꽤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교육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전공도 다르고, 관련 경험이나 경력도 없었다.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연결고리는 대학원 진학이었다.
그렇게 27살, 인생 첫 퇴사를 했다. 안정적인 곳을 나온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망설여진다. 이 때도 그랬던 것 같다. 38살 지금의 나도 여전히 이런 게 힘든데, 그때의 나도 그랬겠지. 이 시기를 되돌아보니 문득 나는 안정과 불안정의 반복 속에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p).
그렇게 사회생활 2년 만에 다시 학생으로 돌아왔다. 2014년 3월, 28살의 나는 대학원생이 되어 다시 모교로 향했다. 다시 돌아온 캠퍼스는 새로웠고,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는 일 역시 낯설었다. 중앙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대학생들을 바라보면, 그때의 난 왜 그렇게 걱정하고 불안하며 20대 초반을 보냈을까- 웃으며 보내기에도 아까운 날들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엄청난 어른이 된 것처럼 20대 후반을 보내고 있었다.
몰디브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그리던 미래가, 이제는 내게 일상이고 현실이 되어 가는 중이었다.
〈다음의 사람〉은 인생의 전환과 성장을 다루며, 2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는 연재 시리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