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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은영 Oct 13. 2023

[책을 써보기로 한다] 서사 2. 치환

서사 파트 - 나를 통제하는 키워드를 뽑아내기까지의 이야기


나의 모든 것이 육아로 치환되었다 


제목을 읊조려내면서 감정선을 어떻게 선택하면 좋을지 고심하였다. 억울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은 저 멀리 던져버린 지 오래이다. 감정을 고조시켜 보았자 변화하는 것은 하나 없고 나 자신만이 소진될 뿐임을 뼈저리게 겪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감정선은 선택되어 있는 것 같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저 제목을 읽으면서 ‘아, 또 뻔한 이야기이겠구나.’라는 감정선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최대한 나의 경험을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 나 같은 당사자도, 그 문제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도,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도, 그냥 힐끗 바라보는 사람 모두 담담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다른 엄마들에 비해 유난히 많이 굽은, 튀어나온 거북목을 가지고 있다. 그나마 최근 몇 년 간은 곧게 펴는 운동을 꾸준히 한 편이어서 그 부위의 부종이 좀 내려앉기도 했고 형태적으로도 조금 개선이 된 듯하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다시피 나의 온 자원을 아이에게 쏟아 넣다시피 했다. 내 몸이 어떤 느낌인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거의 인지하지 못했다. 아이 출생 1년 동안에는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로서의 경각심이 최대치였기에 기민하게 움직이고 즉각적이었으며 나의 의무 수행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도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야 사실 내 몸과 마음을 돌볼 틈이 없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나의 위기는 아이가 태어난 지 1년이 조금 못 되었을 시점, 2013년 6월 11일에 닥쳤다. 친정엄마의 뇌출혈이었다. 그 이후 6월 23일 의료사고로 엄마가 심정지를 겪고 인공호흡기를 끼게 되었을 때까지, 그때까지 느껴본 적이 없었던 표현해 낼 수 없는 감정상태에 이르렀다. 감당하기에는 투머치여서였는지 구체적으로 토해내고 깨알같이 울어내는 과정을 생략하고, 엄마가 식물인간으로 누워 계셨던 8년간 줄곧 나의 감정을 보류하였던 것 같다. 알 수 없는 기분으로 그 시기부터 수년을 살아내었는데 그때 특히 나의 마음과 몸에 대한 인지 감각이 사라지다시피 했던 것 같다. 내 마음과 몸이 망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 정녕 몰랐다. 나는 이 8년에 대한 글을 쓸 계획을 하고 있다. 글을 쓰며 보류했던 감정의 분출을 해결할 생각이다. 


그 난감하고 어려웠던 수년이 지나고 어느 날, 나의 허리 디스크, 척추 4번과 5번 사이의 디스크가 어디론가 빠져나가 있었고, 그로 인해 오른 다리가 종일 저리는 긴 세월이 있었으며, 자주 찾아오는 두통이 생겼다. 나의 오른쪽 난소 옆에는 자국내막증으로 인한 ‘종(혹)’이 6cm로 자라나 있었다. 2017년 4월 그 수술을 하였을 때, 어린 자식을 두고 어찌 될까 봐 불안했다. 그런데 그것도 적당히 불안했지 그 이상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나는 내 감정을 많이 유보해 왔던 것이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상세설명을 해주었던 의사 선생님의 배려와 상냥함이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데 정말 큰 위안과 감사함이 느껴졌던 걸 보면 적잖이 불안해했었긴 했나 보다. 


이외에도 너무나 명징한 체중의 증가, 살쳐짐, 그에 반해 줄어든 근육, 들어 올릴 수 있는 물체 중량의 감소, 내 몸의 제어에 대한 불확실성의 증가 등 수많은 내 인생의 변수들의 값이 달라지고 있었다. 


델타. 기호로 표시하면 Δ. 함수를 구성하는 변수의 변화의 값을 이른다. 육아로 인해 내 삶의 변수가 어떤 숫자들로 치환되었을지 하나씩 짚어보는 것은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감정기 싹 빼고 말이다. 그러면 듣는 사람에게 피로감도 덜 주겠지 생각한다. 아빠에게도 델타값들이 많이 존재하겠지만, 24시간 중 24시간의 구성 내용이 모조리 바뀐 엄마만 하겠는가. 


가장 눈에 띄는 값으로는 단연 수면시간이다. 그리고 체중 증가로 인해 입을 수 있는 옷 가지 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쇼핑할 시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출산 전까지 자리 잡아왔던 스타일링 코드가 알게 모르게 사라졌다. 그 외 삶을 구성하는 많은 변수들 중, 높은 값이었던 것이 낮은 값으로, 낮은 값이었던 것이 높아지는 일대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델타'에 대한 논의는 후에 '현실을 해체'하는 시도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출산 후 얼마간의 시간 동안(사람마다 다르다) 온 시간이 아이로 꽉꽉 채워지는 덕분에 발생하는 델타값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여도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 성장 단계 단계마다 엄마의 삶도 그에 따라 재구성되기에 수시로 델타값이 발생하고 그것을 처리하는 데에 에너지가 든다. 


삶은 시간을 채우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그 내용이 곧 나를 확인하는 매개가 되며 곧 나이다. 이 시간의 내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면 한 여성의 삶의 서사가 어떻게 복잡해지는지, 설명하는 시도조차 얼마나 어려워지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담스럽게 들리지 않게 하려고, 하소연 내지는 앙탈로 느껴지지 않도록 '델타'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담담하게 써 내려가려 하는 노력에 공감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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