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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은영 Oct 13. 2023

[책을 써보기로 한다] 서사1. 그 1년

서사 파트 - 나를 통제하는 키워드를 뽑아내기까지의 이야기

그 1년은 어떤 1년이었나?


지금은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지금 내가 회고하는 장면은 이러하다. 아이를 출산하고 병원 입원 중에 아이는 신생아실에 상주하고 이따금씩 아이가 병실로 올라와 만나던 때였다. 아이의 첫 똥을 만났다.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녹색이었다. 아이 출생 후 이삼일간은 젤리 같은 그 짙은 녹색의 똥, 즉 태변을 쌀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다 알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다 알고 있었다. 나는 고고한 자세로, 옆에서 보고 있는 남편에게 하나 가르쳐준다는 태도로 여유롭게 물티슈로 아이의 첫 똥을 처리하였다. 서두를 것도 없었고 난감해할 것도 하나 없었다. 


참으로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하기사 그 오만을 사전에 와해시키는 그 어떤 가르침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기에 살아오던 대로 당당하고 자신 있게 하면 마주하면 되는 과제 중 하나로 생각했다. 아이 키우는 것은 다 닥치면 하는 것으로 부모 세대도 생각을 하고 계셨겠다. 그러니 특별히 육아, 육아를 하는 부모, 또 육아를 하는 삶이란 것에 대해 세세하게 알려주실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1년가량은 내가 모든 것을 다 맡아 잘 돌보리라 결론지었다. 내 새끼 키우는 데에 친정엄마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교만도 떨었다. 엄마는 손녀 보고 싶을 때 오시면 된다는 멘트를 날리면서 말이다. ‘당연’이라고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알게 모르게 학습되어 온 모성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이었음을 지금은 안다. 그때는 ‘엄마가 되는 것’을 하나의 과제로 보고 그때까지 인생의 과제를 대한 것과 같이 내 머릿속에 설계한 대로 수행하면 될 것이라 여겼다. 사회에서 주어지는 과제와 엄마로서의 역할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을 조금도 알지 못했다. 1년 동안 아이에게 최대한 몰입하고 그 후에는 산뜻하게 경력을 이어갈 생각이었다. 이 부분에서도 역시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현실적인 가능성을 현실적인 변수를 놓고 세세하게 따져보지도 않고 당연히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능동적인 선택이라고 착각하였던 육아 초창기를 지나고 육아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사회적으로 부과된 모성의 역할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도 자각했다. 나만의 육아 스타일, 나의 마음결을 가득 담은 육아를 디자인할 여유를 낼 수 없을 만큼 이미 거기에 매몰되어 있었다. 최대한 내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 아이에게 닿는 나의 신경의 끈을 조금이라도 느슨해지지 않게 했다. 느슨해지는 것은 방치이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디스크가 나가고 전체적인 신체 밸런스가 무너져 불편함과 통증이 늘 함께 하였다. 그때 제대로 관리 못한 나의 몸의 컨디션이 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삶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지만 나의 불도저 같은 육아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뭐 훈장이라면 훈장이니까. 그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육아였다. 손 타니 많이 안아주지 말라고들 하셨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안아주겠어?’하며 최대한 안아주었고 안아서 재웠다. 걸핏하면 아기띠를 매고 바깥을 구경시켜 주었다. 위생적으로 흠결 없도록 하루에 바닥을 서너 번은 닦았다. 아이가 잘 때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 일이 거의 없이, 부족한 부분을 계속 채우려는 듯 두리번거리며 할 일을 계속 찾았다. 


육아용품 시장은 디지털 정보 서치의 노동까지도 가중시켰다. 맘카페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그대로 믿을 수도 없기에 여기저기에서 리뷰를 많이 보고 결론을 도출해야 했다. 최고가의 것은 못해줘도 중가와 고가 사이의 범위에서 선택하곤 했다. 가격이 육아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다양한 것을 시도해서 좋은 선택을 찾아내는 방식이 좋겠다 싶어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에게 초집중을 하므로 물건 선택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겨 웬만하면 절충안 몇 개를 소비하는 쪽을 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육아에 매몰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외의 것들에 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예를 들어 주변을 산책한다거나,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갖는다거나, 친구와 통화하거나 만나거나, 다음의 삶에 대해 조금 고민해 본다거나 하는 시간 말이다. 몸과 마음이 점차 피폐해지는지도 모른 체, 내가 집중할 것은 오로지 ‘아이’라는 생각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굴레에 완전히 잡히고 말았다. 


나의 그 1년은 정말 나 다운 1년이면서도 나 자신에게 무책임했던 1년이기도 하다. 나는 왜 그랬을까? 

‘잘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도 있었을 것이고, ‘타에 모범이 되는 것’이 삶을 지탱해 온 주요 윤리의식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잘 해낼 거’라는 오만은 노력과 에너지의 블랙홀 같은 육아라는 과제에 대해서는 작동시키면 안 되는 것이었다. 육아란 어느 시점에서 한번 끊어 완결시킬 수 있는 분리된 과제들로 이뤄져 있지 않기에 계속 육아에 몸과 마음을 부어 넣게 되면서 결국엔 ‘나는 어디?’ ‘나는 뭐 하고 있는 거지?’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 속에서 늘 ‘끌어올려!!’가 들렸던 것 같다. 선택, 실행, 시행착오, 조정, 다시 선택과 실행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아이 자체에 가야 했을 나의 에너지가 육아를 채우는 요소들을 핸들링하는 것에 많이 치중되어 갔던 것이다. 무자비한 세상이 주는, 마치 고려하지 않으면 죄스럽게 느껴지는 옵션들에 휘둘리며 말이다. 


그렇게 나의 1년은 비로소 드라마틱하다고 할 수 있는 중대한 변곡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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