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 팍 쉐리 늙었다.
'동안'이라 늘 평가받은 세월을 뒤로하고 2022년은 내가 팍삭 늙어버린 해로 기억된다. '코로나'가 날 늙게 했을까? 코로나에 해마다 감염되며 고생한 여파일지 모른다. 그해에는 희한하게도 어떤 선을 넘어 선 듯한 느낌이었다. 늙음의 징후는 얼굴에서부터 뚜렷했다. 특히 눈 아래 살 처짐이 확연히 보였다. 그걸 분명히 인지한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또한 팔자주름과 더불어 볼처짐도 두드러졌다. 거울을 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웃어주곤 하는 횟수도 그러고 보니 줄어든 것 같았다. 딸이 나에게 불도그 같다며 피부과에 가서 돈을 쓰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겉으로는 쿨한 척 "나이 들면 당연한 거지 뭐~ 어쩔 수 없지~" 하며 씩 웃어주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작은 절망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미 몸이 느끼는 통증과 그에 따른 피로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는 상태였다. 아침에 일어나 첫걸음을 디딜 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욱신한 통증, 손가락을 구부릴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을 비롯하여 몸 여기저기에서 통증이 왔다가 가셨다가 한다. 어떤 날은 이 몸뚱이가 너무 불편하고 감당키 어렵기도 하다.
'이 몸뚱이를 가지고 별일 없다면 40년 이상 더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고되어서 어떻게 살지?'
그리고 몸관리를 잘해나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SNS상에서 보면서 또 한숨이 나온다. '저걸 어떻게 해낸단 말이야. 난 저런 의지가 있지 않고, 발동시킬 동기도 딱히 없고, 분명 건강해지고는 싶지만, 저렇게 힘든 운동을 꾸준히 할 수가 없는데?' '대체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가능하도록 만든 것일까 싶고, 나라는 사람은 왜 대체로 많은 것들을 어려워할까?' 싶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계속 이렇게 못나게 살 거야?
‘그래, 내가 나이 들고 있다.. 이건 쇠퇴가 아니라, 전환이다.’ 내가 형성하는 생각이 곧 나의 세계이지.
젊음을 유지하려는 몸부림보다, 지금 이 늙음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절정’에서 벗어나 내려가는 이 길목에서 내가 진짜 배워야 할 건, 속도 조절이고, 변화 수용이며, 새로운 관점이다. 예전엔 변화란 곧 ‘혁신’이었지만, 지금은 변화란 ‘적응’이다. 적응에는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선물이다. 무턱대고 달리기보다, 스스로의 리듬을 찾고, 이 몸이 말하는 걸 들으며 살아야 하는 시기인 거다.
자, 나의 몸과의 대화는 어떻게 시작하고 지속해야 할까? "나이 들었다"는 말에는 어느 순간부터 자조와 체념이 깃들기 시작했지만, 그 말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일 필요는 없다. 나이 듦은 새로운 언어를 부여받을 수 있다. 이미 사실 나는 적응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막연하게나마 앞으로 나의 삶을 헤쳐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관건은 '나이 듦에 대한 수용'이라고 직관하고 있다. 팍 늙었다는 걸 정직하게 받아들이되, 그 과정 속에서 나를 구성할 단어들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몸에서 불편한 통증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한 번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감각을 톺아본 적이 없다. 두통, 뇌의 탁함, 경추, 어깨, 팔근육, 침을 삼킬 때의 느낌, 피부의 건조함, 배에서 느껴지는 근력, 각 관절의 작동 등 아끼며 보살핀 적이 없다. 이는 충분한 시간, 느린 관찰이 필요하니, 자연스럽게 시간의 구성을 달리 짜나가야 한다. 운동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충분히 하고 몸의 컨디션, 마음의 쉼을 기하여야 다른 일상의 구성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점을 이제 안다.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경험, 나이 듦에 따라 나에게 주어지는 일상의 리듬은 사색이 가능해지게 하고, 나이 듦을 통해 점차 갖추게 되는 '통찰', '선택의 명료함', '정제' 등의 가치가 나의 삶에 기여하게 되는 듯하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인생을 굉장히 길게 산 사람인 듯 들려 살짝 우습기도 하다.
늙음을 슬퍼하는 대신 환대하기. 한창때 거침없이 저질러 투입 대비 수확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에 비해, 지금은 몸의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을 충분히 두고, 한정된 시간을 슬기롭게 사용하여 한창때 못지않은, 어쩌면 더 수준 높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그런 지점은 있다. 이 같은 삶의 양식을 위해서는 젊었을 때 더 경험하고 더 축적해놓아야 했다는 생각이다. 이 부분이 부족하니 사실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러니 불편한 몸을 자꾸 원망하게 되는 심상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이미 과거는 지나갔다. 지금 갖고 있는 밑천을 최대한 이용하고 부족하다면 더 채우며 살면 된다고 말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만족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고 이루고 있는 일에 감사하자.
쓰고 보니 구태의연한 내용이긴 한데, 살아보니 그렇더라. 굉장히 새로운 것은 없다. 이미 얘기되고 있는 것을 삶의 어느 지점에서 깨닫게 되고 그것이 나의 것이 되는 식이다. 그러면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네" 하며 껄껄껄.
모두들 나 자신을 환대하는 기회를 가져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