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사표를 써 보라.
추운 날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다 보면
저절로 속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입 밖으로 내뱉기는 교양있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서
속으로만 말하지만 강도는 쎄다!)
"이 놈의 직장, 언제 때려치우나!"
"이 추운 날에도 전철역으로 뛰어가야 하니?"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미친 듯이 자동차를 몰아야 하니?"
"아,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
"아침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이 무신 일이고?"
"겨우 눈꼽이나 떼고 마구 달려나가는 구나!"
차분히 앉아서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한번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고 싶은데
도무지 그 생각할 시간이라는 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사표를 써 보려고 한다.
아래 위로 공격당하며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살아야 하나?
그렇다고 월급이나 듬뿍 받는 것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그러고 보니 참 정신없이 살았다.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정리해 본 적도 없이 산다는 것은
목표도 설정하지 않은 채 마구 달리는 것과 무어가 다른가?
그러니 일단 사표를 써야 한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말이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빙빙 돌아가니까
마치 빙글빙글 마구 돌아가는 놀이기구를 탄 것 같으니
일단 내려야 되겠다.
그래야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별을 할 것 같다.
사표를 쓰려니 속에서 이유를 대라고 한다.
그것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있는 공적인 이유를 대라고 하네?
이유는 무슨 공적인 이유냐?
그동안 너무나 공적으로 살아서
너무나 가족과 사회를 위해 나를 버리고 살아서
바비 출근하는 발걸음이
도대체 누가 걸어가고 있는지
누가 일을 하러 가는지 헷갈릴 정도로
내가 사라지고 닳아버렸는데
아직도 그 공적인 이유가 그리 중요하더냐?
제발 그 공적이라는 말 좀 그만하라.
그 아가리를 닥치시오!
공적으로 살려다가
헉헉거리면서
내가 완전히 상실될 지경에 이르렀소!
이제 지극히 사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려 하오.
이제 지극히 개인으로 살아가려 하오.
"당신 우마오 당이지?"
"아니오, 난 개인이오!"
중국이 자기 조국이라고 굳게 믿는
조선족 동포들이
선거때마다
중국에 유리한 후보를 위해서
한국 선거판에 댓글공작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제 조국을 위해서 그런다고 하니
이 얼마나
조국과 나라를 위해
훌륭한 공적 임무인가.
좌우간 공적인 것,
사회적으로 역할을 다하라는 것에
이제 사표를 내려고 한다.
"뭔 지ㄹ?"
그렇게 비웃지 마라.
"뭘했다고?"
그렇게 비하하지 마라.
얼마나 착실하게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임무를 다하며
마음에 안 들어도 싹싹하게 웃으며 일했는지 모른다.
마음에 안들어도
"못합니다! 안합니다!"
그 말을 못하고 꾸역꾸역 하라는 대로 하며 살았단 말이다.
그러니 사표를 내도 되겠지?
"이 ㅆ팔, 언제까지 내가 네 밑에서 일해야 하니?"
아무리 봐도 돈 욕심에 찌들어
사람을 돈으로 보는 인간 아래에서 내가 살아야 하겠니?
윗 사람이 못마땅하다.
아랫사람이 못마땅하다.
그래서 사표를 내려고 한다.
속으로는 마음에 안들어도
겉으로는
이마에 '원만한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어
아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상큼하게 사느라 힘들었다.
속은 시커먼데 비열하게 웃으며 살았다.
노후를 보장하려고
남에게 손내밀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려고
너어무
성실하게 일했으니
참 잘했다고
너무 훌륭하다고
이만하면 인격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껍데기라
이제 좀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실상을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표는 언제 쓰냐고?
이게 사표지!
"김 아무개는 오늘 부로 회사를 사퇴합니다."
2023년 8월 31일
꼭 이렇게 써야만 사표냐?
맘에 안드는 모든 것들을 실컷 욕해주고
때려주고 아웃시켜 버리라.
그게 진짜 사표다.
이오아 사표를 쓰는 김에 내 마음에 거슬렸던 인간들을
싹 다 한번 발라버려!
뭐그리 착하게 산다고 하면서
제 속을 컴컴하게 만드냐고!
그거 바보빙신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이제 그렇게 사는 일에 사표를 쓰라고!
속이 다 뭉그러지도록
가짜 얼굴로 살지 말고
그래
겉으로는 살살 웃으면서 살되,
속으로는
싹 죽여!
속으로는 좀 죽여도 돼!
욕을 실컷 해 주었더니 쬐금 미안해져서
그 다음날 그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게 되더라고!
과거의 이중적인 삶에 사표를 내봐!
왜 그 인간들 때문에
내 소중한 월급을 버리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