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숭아 Sep 26. 2022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나를 먼저 돌보아라. 

언젠가 자기계발한다고 여러 공부를 하러 전전할 때 강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회사에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회사에 헌신하면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는 게 정상인데 왜 헌신짝이 되지? 하고 의문을 품었지만 회사일 말고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이후 인생에 빛이 보인다는 식으로 내멋대로 해석을 했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정말 아찔할 것 같기도 했다. 헌신하지 않으면 대충 일하라는 말인가? 적당히 눈치보다가 월급이나 챙기는 약삭빠른 자세로 살아가라는 뜻인가? 그게 옳은 건가? 때로 주말에 무언가를 하라고 지시하는 상사를 볼때면 화가 나기도 했다. 피곤에 쩔어있는데 그런 하찮은 일까지 심부름을 시키나? 짜증도 났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하라는 대로 했다. 참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이도 똑같은데 상사라는 자리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나는 은근히 부아가 났다.  

  "그래, 두고 보자. 은퇴하면 뭘 하실지? 난 이미 준비하고 있걸랑."

그때 나는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는 참이었고 아마도 수 년 안에 책을 한 권 내고 작가의 반열에 올라볼 작정이었다. 작가의 반열에 오르다니, 하찮은 내가 무슨 수로! 하긴 오래전 잡지사에 근무한 경력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수 십년 전의 그 실력이 아직까지 남아있을 리가! 일기 한 줄도 안쓰는 데? 그 생각이 맞았다. 국내 1호 책쓰기 강사란 분을 찾아갔는데 그 앞에서 내 화려한 과거 경력은 도무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 분이 진행하는 부트 프로그램에 나는 잘 따라가지 못했다. 늘 그래가지고 무슨! 핀잔을 들었다. 그래도 줄기차게 과거의 내 경력을 입에 올렸다. 어느 날, 책 읽고 후기 쓰기 과제를 억지로 해서 냈더니 한 마디 인정해 주시는 말씀을 내리셨다. 

 "00님은 괜히 잡지사 근무 했다고 하는 게 아니군요! 이 마무리를 보라니!"

 하도 오랜 만에 들어보는 칭찬이라 기쁘기 보다는 놀랐다. 저 분의 입에서 칭찬의 말이 나오다니! 수업후에 그 분이 사주는 음식도 토하거나 설사를 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도 독한 소리를 하시는 지라 그 소리를 들어주느라 내 위장과 대장은 속에서 얼마나 긴장을 하고 방어를 했을까?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곡 몸 밖으로 나와버렸다. 보이지 않는 길고 날선 칼로 내리치면 나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겉으로 웃었다. 그러자 그걸 포기했다. 이러다 병나지, 병 나기 전에 도망쳤다. 

                            

 그리고 신문 사설 베껴쓰기를 계속했다. 그게 밑거름이 된 것 같았다. 한 일년쯤 지나자 글쓰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조직을 위해 희생하기도 그만 두었다. 대신에 핑게가 늘었다.  병을 핑게 대고 컨디션을 핑게 대고 가정사를 핑게대면서 내 시간을 늘려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유년 시절을 돌아보고 나 자신의 감정과 내 몸이 생태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리 건강한 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중독이 되어있었다. 남들이 일찍 퇴근하고 간 뒤에도 저녁 8시까지 근무하기도 하고 출근은 가장 일찍 했다.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도맡았다. 내 손에 들어오면 이상하게도 쉬운 일이 되었다. 말없이 일하는 모습은 상사들의 마음에 들었고 일은 더욱더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가 암에 걸려 쓰러졌다.  그 분도 무척이나 열심인 분이라 나는 '아차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잘하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감하겍 일을 줄였다. 그러니 겨우 숨이 쉬어졌다.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았는데 왜 나는 굳이 내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했을까?  나는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피부 관리도 되어 있지 않아 부스스하고 옷도 이상하게 이비고 있었다. 아직도 30대인줄 알고 있는 건지 어울리지 않는 청춘 이미지를 가진 옷들이 옷장에 걸려있었다.    





 나는 조직이 아닌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감정기복이 많은 나를 만났다. 그때마다 부드랍게 다독여주기 시작했다.                            

 "아이고, 얼마나 힘들었니? 이제는 좀 쉬어가자, 상사들의 무리한 요구도 늘 참기만 하면서 살았구나."

  "돈을 너무 아끼지 말고 맛난 걳도 사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갖자."

 "나를 싫어하는 듯한 인간들과 일부러 관계를 잘 하려 애쓰지 말자. 그저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마무리 하자. "



모든 기준을 나에게 맞추기로 했다. 조직과 사회를 위해 살아가던 나를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기로 했다.  내 몸이 너무 피곤하면 한없이 잠을 잤다. 왜그리 잠이 많이 오는지 시간만 나면 잤다. 낮애도 밤에도 잠을 잤다. 오랜 시간의 공부가 끝나고 방학이 된듯 나를 풀어놓았다. 

 '그래, 그동안 미친 듯이 살았으니 됐어!'

 '방치했던 치아부터 고치자.'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살펴보자.'

 '미친 듯 굴러가는 시간 속에서 정신을 차리자.'

 왜 살아왔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열심히 달리던 날들을 스톱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고요했다.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날것 같았다. 하느님이 혼내실 것도 같았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멈췄다. 그리고 나는 펜을 들어 내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가 2020년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나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다. 불안은 나를 늘 따라다녔고 나를 숨죽이게 했다. 돌아보니 어린시절부터 그랬다. 영문도 모르게 갑자기 고함을 치며 혼내시던 아버지, 하도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모자란 어머니의 부족한 사사랑에 나는 늘 배고팠다. 감정은 널뛰기를 학고 아무도 나를 돌보는 이가 없던 시절이었다. 

직장에서는 잘릴까봐 얼마나 불안해 했는지 모른다.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 일로 불이익을 당할 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늘 불안한 마음으로 동동거리며 살았다. 조직에 충성은 당연했고 직장에 최선을 다한다는 건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이는 잔뜩 먹고 몸은 말라 비틀어져 있고 무릎도 간간히 아프다. 5:5로 조직과 개인으로 양분하기만 했어도 내 살은 더욱 풍성했을 텐데.. 내가 조직을 떠나 나올때 뒤돌아보니 뎅그라니 건물만 보였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난 무얼 한 것일까? 한 사람의 따스한 인연도 남길 수 없다면 이건 뭘 한 걸까?  좀더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개인적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살았더라면 덜 허무할까?  나에게 귀를 귀울이는 삶을 살기 위해 책을 써내려가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아티스트 웨이>를 시작하려 한다. 책을 내며 나를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조금씩 나에게 다가가보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해지려고 하지 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