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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Apr 02. 2019

남자의 요리는 관계의 혁명이다  

고부 간에서 장서 간 관계 중심으로 변화해 간 동력

나를 셰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아내와 한 부서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다. 쑥스러운 일이다. 몇 번 음식을 만들어 갖다 준 것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 셰프는 요리교육을 전문적으로 받고 현장에서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대부분 남자들이다. 셰프가 유행인 시대이기도 하다. 셰프들이 방송을 주름잡는다. 일명 셰프테이너들이다.


요리하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 요리 청년들이 많다. 식당 창업을 젊었을 때부터 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어진 데다 셰프의 열풍도 한몫하고 있다. 셰프는 보통 남자다. 여자의 요리가 흔해서일까, 별로 주목하지도 않는 세상이다. 요리가 산업화되면서 생긴 현상이다. 누구든 먹어야 사니까 창업이 이루어진다.


고기를 굽는 남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을 요리라고 할 수 있을까. 옛날 수렵시대에는 남자들이 고기를 구웠다. 고기는 그냥 익혀서 먹으면 됐었다. 그런 행위들이 지금에도 그렇게 별 차이 없이 이루어진다. 채집을 주로 담당했던 여자들은 달랐다. 불완전한 초식동물인 인간은 아무 야채나 먹으면 안 됐다. 뭔가 다른 방법과 과정이 필요했다. 그게 요리로 발전했다.


요리는 이제 남자들 가까이에 와 있다. 최근 요리 학원에는 남자들이 많다. 은퇴 후 요리하는 남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맞벌이 시대에는 더욱 요리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요리는 아직 먼 길이다. 주방은 남자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디테일한 주방 기구들과 각종 다양한 양념, 꼼꼼한 요리의 전 과정을 수행해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남자가 요리에 빠져들지 못하는 데에는 정보 홍수 시대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인터넷만 켜면 무엇이든 검색할 수 있는 시대다. 무엇이든 보인다. 그럼에도 보이는 대로 요리는 안 된다. 정보는 간단히 얻을 수 있지만 경험은 그렇게 간단히 얻을 수 없다.


실제로 요리를 하고 축적해야 그 레시피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이 가치이고 역량이다. 얼마나 많은 체험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가 핵심이다.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요리에 대한 사실적 체험을 말할 수 있다.


요리를 취미로 여기는 남자들도 있다. 요리는 취미와 다르다.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리는 관계의 산물이다. 자기가 즐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깊어진다. 자신만 행복해지는 취미와 다른 이유다.


남자들이 요리를 하면 디테일이 늘어난다. 섬세한 감각이 길러지고 안목이 넓어진다. 요리는 건강, 패션, 육아, 액세서리, 수다 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결국 여성들의 세계에 자연스럽게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요섹남은 그렇게 완성되는 셈이다.


내조는 아내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가 요리함으로써 내조가 가능하다. 맞벌이 시대에 남편의 내조도 필요한 시대가 됐다. 실제로 아내의 덕으로 사는 남편들도 많다. 남자의 일자리가 사회적으로 불리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부부의 역량이 사회적으로 평가받는 지점이다.


나는 아내가 일하는 병원 부서에 음식을 만들어서 배달하곤 했다. 잡채, 현미김밥, 유부초밥, 궁중떡볶이, 자몽청, 우엉차, 단호박스프, 닭가슴살모듬샐러드, 딸바라떼, 피자 등 종류도 많았다. 그때마다 아내는 낯설어 하는 것 같으면서도 힘을 얻는다.




요리는 생존의 비법이다. 진화의 근거다. ‘사람은 그가 먹는 것에 의존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소화시키는 것으로 산다’고 했다. 요리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무기질 등 영양을 배치하는 능력이다. 또 음식을 연하게 만들어 소화를 잘 되게 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연하게 만든 음식을 좋아하게 진화됐다. 그 덕분에 소화에 쓰이는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절약하고 열량 생태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요리는 관계의 원천이다. 요리는 엄마가 탄생한 여정이다. 요리하면서 주부들이 식단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걸 알았다. 인스타그램 피드는 그 경로였다. 내가 만든 식단 메뉴들을 보고 사람들이 따라 했다. 매일 잘 봤다며 계속 올려달라는 댓글을 수시로 접한다. 레시피에 대한 요청도 많다. 다음날 아침에 새롭게 해먹을 기대는 관계로부터 파생된 유대의 근거다.


특히 남자의 요리는 가족의 문화를 바꿔놓는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새롭게 재편된다. 여성의 가사가 새로운 지위를 얻는다. 남자들에게도 관성을 탈피시킨다. 게임을 즐기던 남자가 새로운 질서와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성역할이 변화 확대되는 지점이다.


고부 간, 장서 간 관계가 새롭게 형성된다. 엄마의 손맛, 친정의 음식 문화가 재편된다. 형부와 처제들 간의 관계가 더 공고해진다. 부모와 함께 사는 모델에도 변화가 온다. 육아의 패턴도 달라진다. 여성이라는 굴레가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요리는 대화의 수단이다. 먹는 일은 언제나 대화의 소재다. 식당에 모여서 음식이 나오면 저절로 음식 얘기가 나온다.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뭘 먹을지 생각부터 한다. 전철 칸에서 할머니들끼리 나누는 요리와 음식 얘기를 자주 듣곤 한다. 요리법이 뭔지, 어떻게 해야 맛있는지, 오늘은 뭘 요리했는지,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시시콜콜히 얘기를 늘어놓는다. 듣고 있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나도 끼어서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요리가 내게 준 힘이자 자신감이다.


※ 요리 음식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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