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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May 30. 2019

처가살이 8년 만에 눈뜬 요리

제2의 삶의 공간인 주방을 함께 쓰는 장서 관계

주방은 협력의 공간이고 연대의 산실이다. 주방에 선지 어언 7년째다. 그동안 장모님이 주방을 운영해오셨다. 15년을 함께 살면서 주방은 멀었다. 이제는 장모님이 해준 음식들이 별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주방은 미묘한 공간이다. 그릇의 배치, 양념의 보관, 각종 식재료의 처리 등이 늘 일어난다.


설거지는 주로 장모님이 하신다. 개수대 공간은 장모님의 차지다. 사위인 내가 요리를 전담하면서 역할이 분화됐다. 이전에는 아내와 내가 설거지를 하곤 했다. 그땐 당연히 요리를 몰랐던 때다. 아내는 지금도 휴일에는 간간이 설거지를 한다.


주방은 냉장고 정리가 필수다. 양념을 놓는 곳, 야채와 과일, 식재료, 반찬 등이 대개 일정한 곳에 배치된다. 김치냉장고 역시 마찬가지다. 각종 김치의 저장 위치를 알아둬야 한다. 냉장고는 자기 요리의 출처다. 냉장고를 통해서 재료가 요리로 태어난다. 요리하는 사람은 냉장고의 효율성을 익혀야 한다.


특히 냉동실 사용에서 재료의 보관에 차이가 크다. 노인들은 떡을 좋아하고 남으면 대개 냉동실로 보낸다. 많은 떡들이 몇 달이 가도 그대로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이 얻어온 야채들은 데쳐서 냉동실로 간다. 밥에 넣어먹는 콩, 밤 등도 냉동실 행이다. 냉동실이 비좁을 때도 있다. 그러면 다소 언짢아지기도 한다. 나는 고기나 생선을 주로 보관하는데 쓴다.


장모님과의 입장 차이는 문화적 충돌 때문이다. 장모님은 음식을 절여 놓는 문화에 익숙하다. 고추, 마늘 등 재료를 대량 절이려면 간장, 설탕, 식초 등 많은 양이 필요하다. 나는 절이는 음식보다는 그때그때 해 먹는 걸 선호한다. 절임 문화는 옛날 분들의 공통적인 속성 같다. 농경문화가 남겨준 유산인 셈이다.


농산물은 일시에 수확하면 보관이 문제다. 결국 말리거나 절이거나 얼리거나 하게 된다. 장모님은 한 번씩 친척 밭에서 농산물을 대량 얻어오곤 했다. 그때마다 처치 곤란을 겪는다. 나물일 경우 장모님은 삶아서 냉동실로 넣곤 했다. 일단 냉동실에 들어가면 나올 일이 드물다. 생나물을 많이 해 먹기 때문이다.


나물을 데칠 때도 장모님은 대개 무르게 삶는 경향이 있다. 나는 되도록 살짝 데치는 것을 좋아한다. 영양소 파괴도 적고 잎들이 덜 물러져 무치기에도 좋다. 나이가 들면 질긴 음식을 싫어하게 되는 모양이다. 틀니에 부담되기 때문이다. 딱딱한 것보다는 질긴 것을 잘 못 드시는 것 같다.


음식은 모름지기 식감이 있어야 한다. 너무 무르면 씹는 맛이 없다. 다만 건나물일 경우에는 지긋이 삶아줘야 한다. 건나물 중에서도 시래기는 유별나다. 시래기는 잘 말릴수록 조직이 강해진다. 물에 불리면 상당히 질긴 특성을 지닌다. 잘 삶아야 하는 이유다.


장모님은 고기 다루는 데도 약하다. 고기를 이용한 요리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고기는 보통 밑간(재움)해서 사용한다. 밑간이란 고기를 연하게 하고 잡내를 잡아주는 작업이다. 밑간은 다진마늘, 간장, 맛술, 참기름, 후추 정도면 무난하다. 매실액을 넣으면 좀 더 효과를 볼 수 있다.


한식은 나물, 야채를 다루는 장점이 있지만, 고기를 이용해 우려내는 음식에도 강점이 있다. 육류와 야채가 우러난 음식은 다양하게 많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등이 야채와 함께 요리됨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파와 양파는 육류의 성질을 잡아주는 대표적인 향신 야채이기도 하다.


장모님은 레시피에도 약하다. 어르신 세대는 주로 구전으로 전수받거나 친구 간의 네트워크로 요리를 접한다.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을 뒤지거나 학교, 학원에서 배우기도 한다. 계량이 기본이라 레시피대로 하게 되면 거의 실패가 적다. 레시피는 응용력도 길러준다. 비슷한 재료를 서로 교체해 써보면 되기 때문이다.


잡채 만들 때 당면을 다루는 내 모습에서 장모님은 놀라워하신다. 잡채는 ‘엄마’로 상징되는 요리 중의 하나다. 각종 채 썬 야채를 볶고 당면을 삶아 참기름 둘러 섞으면 부러울 게 없다. 당면의 고구마 전분은 미각을 잡아당긴다. 야채 별로 어울린 비주얼도 잡채의 강점이다.


문제는 당면 삶기다. 어르신들은 당면을 먼저 삶고 건져낸 후 기름과 간장을 넣어 볶는다. 결국 과정을 두 번 나누어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계량을 알면 이 작업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당면의 양에 맞게 물과 간장을 넣음으로써 한 번에 삶고 볶아버린다. 맛, 색감, 식감이 모두 뛰어나다.


향신 재료 사용에도 차이가 크다. 향신 재료는 고기를 삶는데 꼭 필요하다. 어르신들은 육수에 대한 개념이 적은 것 같다. 멸치육수는 보통 20분, 다시마는 5분 정도 끓여내고 건져낸다. 장모님은 다시마를 잘 건져내지 않는다. 멸치는 함께 먹는 경우가 많다. 다시마를 그대로 두면 끈적거리고, 흐물흐물하는 멸치는 음식의 깔끔함을 해친다. 물컹한 멸치가 미각에 별로 탐탁지 않은 이유다.


장모님의 요리는 내게 많은 영향을 줬다. 왜 그렇게 요리하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장모님은 이제 사위인 내게 의존을 한다. 나는 많은 영역에서 요리를 전담한다. 소스를 만들어내는 일은 기본이다. 끓이고, 무치고, 보기 좋게 만드는 역할도 나의 몫이다.


장모님은 사각지대에 있는 일들을 많이 처리한다. 야채를 다듬고, 설거지를 책임지고, 가사의 다른 많은 일을 담당하신다. 때로는 주방이 비좁기도 하다. 동선이 겹치기도 한다. 특히 장인어른의 몫은 배우자인 장모님이 챙겨야 한다. 어느새 주방은 제2의 삶의 공간이다.


※ 요리 음식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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