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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Mar 14. 2019

남자는 매일 알람을 맞춘다

한 끼 아침밥상을 향한 80분의 여정

아침 6시, 눈을 떴다. 어두운 방안, 몸을 일으킨다. 벅찬 아침이다. 오늘도 나는 살아있다. 방안 공기를 느낀다. 깨어남은 시작이다. 리셋된 몸이 부팅되는 순간이다. 한밤중에 몸은 영혼 없는 공장이다. 성장호르몬이 온몸을 돌아다닌다. 상처 난 곳은 회복되고, 부족한 곳은 메워진다. 의식하지 않는 곳까지 혈액이 순환된다. 깊은 호흡으로 산소가 끝까지 채워진다. 소리 없는 공장, 왕성한 신진대사의 시스템 현장이다.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향한다. 스위치를 켠다. 싱크대가 형태를 얻는다. 아담한 주방의 세계가 열린다. 주방은 언제나 목적지다. 역동적인 현장이다. 생존의 근거지다. 생계의 요충지다.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거점이다. 늘 같아도 똑같진 않다.


오늘 아침 식단은 황탯국, 계란말이, 고등어구이, 시금치나물무침이다. 하루의 시작은 시시각각 다르다. 아침은 촌각을 다툰다. 출근 때문이다. 출근 시간을 역순 하면 8시 10분이 마지노선이다. 10분에 출발해야 9시 이전에 사무실에 도착한다. 닦고 준비하는데 25분, 식사시간 15분. 결국 아침 미션은 80분 내에 마쳐야 한다.


먼저 간단하게 개수대에서 손을 씻는다. 육수는 하루의 시작을 의미한다. 육수 내기는 보통 20분. 육수는 멸치가 일반적이다. 오늘은 황탯국이라 북어머리를 이용한다. 육수는 미리 끓여놓는 사람들도 있다. 내 경험상 육수 내는 시간은 미션에 큰 영향이 없다. 육수 내는 동안 다른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끓는 육수를 이용하면 요리시간도 단축된다. 재료에 열을 곧장 전달할 수 있어 유리하다. 고등어는 밑간을 해둔다. 비린내를 잡기 위해서다. 생강가루 약간에 맛술, 레몬즙을 한 스푼 정도 섞어 쓴다.


시금치나물은 대충 다듬고 살짝 데쳐 헹궈 꽉 짜둔다. 무는 편 썰기로 먹기 좋은 크기로 얇게 썰어둔다. 양파는 채 썰고 콩나물은 한 줌 씻어둔다. 황태채는 물에 살짝 불려 꽉 짜둔다. 계란은 네 개를 골고루 풀고 대파, 당근, 양파를 다져 섞는다. 소금과 후추를 적당량 넣어 간을 맞춰둔다. 이 정도면 육수 내는 시간에 가능한 작업들이다. 조금 더 걸리더라도 미션에는 지장이 없다.


황탯국은 장모님이 즐겨 찾는 메뉴다. 사위가 끓여주는 황탯국을 특히 좋아한다. 황탯국은 사실상 최초로 배운 레시피 요리다. 2013년 9월 한식 요리학원 수강 때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때 배운 레시피를 잊지 못한다.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땐 재료를 미리 볶아 여리게 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거기에 끓은 육수를 붓고 끓이면 작업시간이 단축돼 맛이 좋아진다. 재료가 우러나는 시간도 절약된다.


어떤 요리든 금방 한 게 맛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끔 라면이 맛있는 이유를 물어보곤 한다. 다들 수프, 면, 먹기 편한 것 등 제각각 이유를 댄다. 다 맞는 이유들이다. 근데 나는 금방 끓였기 때문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다들 공감했다. 자신이 금방 요리한 것이기 때문에 맛있을 것이다. 라면의 특성상 금방 먹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기도 하다.


물기 있는 메뉴를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재가열하면 간과 성질에 변화를 가져온다. 못 먹을 것은 아니지만 처음 맛과는 차이가 날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엔 용기에 따로 담아서 레인지로 데우는 게 좋다. 레인지는 현대인들의 필수품이 됐다.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 향을 입힌다. 들기름은 강한 불에 산패되기 쉬워 처음엔 약불을 이용한다. 편 썰어둔 무와 양파 일부를 먼저 볶는다. 소금도 살짝 치면서 볶는다. 황태채도 넣고 볶다가 열을 살짝 올려 충분히 볶는다. 육수를 붓고 나머지 양파와 콩나물을 넣은 후 중불에 푹 끓인다.


끓는 동안 고등어는 팬에 기름 살짝 둘러 올린 후 노릇노릇 굽는다. 시금치나물은 볼에 담아 다진 마늘, 간장, 들기름 듬뿍, 대파는 흰 부분을 다져 넣는다. 대파는 흰 부분과 파란 부분으로 나뉜다. 재료에 따라 색깔 부위를 선택하면 된다. 진한 재료는 흰색, 옅은 재료는 파란 부위를 쓰면 좋다. 통깨는 손가락 힘으로 으깨어 쓰면 더 고소함을 즐길 수 있다. 갈아서 쓰면 고소하긴 해도 깨 모양을 살릴 수 없다.


음식은 모름지기 눈으로도 먹는다. 살살 무치고 간이 부족하면 소금으로 더 해주면 된다. 보통 나물에 쓰는 간장도 종류별로 달리 쓰면 좋다. 간을 세게 할 때는 진간장, 연하게 할 땐 다시마간장이 좋다. 색을 묽게 유지하는 데는 국간장이 좋다. 시금치나물무침엔 다시마간장을 이용한다. 조금이라도 심심하게 먹기 위해서다.


황탯국이 끓는다. 두부 한모를 깍둑 썰어둔다. 대파와 청양고추, 홍고추를 채 썰어 준비한다. 대파는 원형으로 얇게 썰면 깔끔한 경우가 많다. 대파 썰기는 주재료의 크기나 형태에 맞추면 좋다. 계란 하나를 풀어둔다. 계란알을 쓰기 위해서다. 황탯국 불을 줄이고 간을 본다. 간을 볼 때는 불을 줄이는 게 좋다. 국물이 너무 뜨거우면 간을 정확하게 보기 어렵다.


간은 세 가지로 한다. 새우젓, 국간장, 소금이다. 대체로 한식은 간을 여러 종류로 쓰면 좋다. 젓갈류, 간장류, 소금류가 그것이다. 새우젓은 액젓과 함께 양념으로 많이 사용된다. 액젓은 까나리와 멸치 액젓이 많이 쓰인다. 특히 미역국엔 액젓 간이 더 감칠맛 낸다. 황탯국은 특히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야 좋다. 세 종류로 간을 할 때 국물 색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다. 간이 됐으면 두부와 대파, 청홍고추를 넣고 중불에 한소끔 끓인다. 계란알을 동심원으로 풀고 약불에 놓고 뚜껑을 덮는다.


고등어가 구워진다. 노릇노릇 앞뒤로 구워 접시에 담는다. 그 팬을 씻어 물기를 닦고 다시 식용유를 두른다. 이젠 계란말이 차례다. 팬에 열기를 확인한다. 미리 준비해둔 야채 계란물 2/3를 팬에 깐다. 모짜렐라 치즈를 토핑 한다. 계란말이는 타이밍이다. 계란은 금방 익기 때문에 골든타임이 중요하다. 바닥이 익을 때쯤 말기 시작한다. 나는 주걱과 숟가락을 사용한다. 주걱은 마는데, 숟가락은 반대쪽에서 잡아주는데 쓴다. 숟가락은 보조용이다.




치즈계란말이는 우리 집 시그니처 메뉴가 돼버렸다. 이틀에 한번 꼴로 말다 보니 경험이 쌓였다. 뭐든 그렇지만 계란말이는 경험이 중요하다. 순간 타이밍을 놓쳐선 안되기 때문. 많은 이들이 계란말이 요리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장모님도 계란말이에 자신 없어하신다. 계란은 우유와 함께 완전식품으로 통한다. 하루에 꼭 섭취해야 하는 이유다.
계란 요리는 대개 프라이, 찜, 스크램블, 말이 정도로 분류된다. 프라이는 가장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요리다. 찜은 수분으로 부드럽게 부풀려 먹는 요리다. 스크램블은 익는 성질을 이용한 요리법이다. 양식에 많이 사용된다. 말이는 경험이 요구되는 요리다. 금방 익는 계란을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들어놓으면 비주얼이 좋다. 두툼한 자태는 식욕을 자극한다.


찜과 말이는 야채를 다져 이용하기에 좋다. 말이는 베이스가 너무 얇아도 두꺼워도 안 된다. 얇으면 찢어지기 쉽고, 두꺼우면 말기가 불편하다. 적절한 두께와 익는 순간을 경험으로 느껴야 한다. 모짜렐라치즈를 넣으면 늘어지는 변수를 잡아야 한다. 재밌는 것은 식으면 더 탄력적으로 변한다. 늘어지면 마는데 정성을 들여야 한다. 때로는 주걱과 숟가락으로 함께 마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주의할 점은 말면서 판을 이동시킬 때다. 끝단이 함께 따라와줘야 한다. 계란 물을 두 번째 부었을 때 특히 연결지점을 주시해야 한다. 말면서 끌어당기는 이유는 계란물의 영역을 넓혀줌으로써 익는 속도와 마는 순간을 잘 결합시킬 목적 때문이다.


불 조절도 신경 써야 한다. 나는 강불로 주로 작업한다. 빨리 해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약간만 타이밍을 놓쳐도 바닥이 타버린다. 불을 약하게 하면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다. 계란말이는 사랑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메뉴다. 모양과 맛, 영양이 모두 뛰어나다. 하지만 쉽게 먹을 순 없다. 누군가 요리를 해야 하기 때문. 계란을 다 말았으면 불을 끄고 남은 열로 다시 돌려가면서 원형을 잡아준다. 썰 때는 김밥과 비슷하다. 날카로운 칼로 한 번에 썰면 좋다. 다 썬 후 칼날은 닦아줘야 한다. 치즈가 묻어 굳으면 딱딱해진다. 접시에 예쁘게 담는다.


이제 황탯국에 계란알을 푼다. 계란알은 동심원으로 돌려 넣어준다. 뚜껑을 잠시 덮고 식탁 차림을 준비한다. 밥을 퍼담고 반찬들을 배치한다. 국 뚜껑을 열고 국자로 저어 퍼 담는다. 계란이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담긴다. 후추를 뿌려 식탁에 놓는다. 잘 배열한 후 아이폰으로 촬영을 한다. 중앙 배치는 늘 방금 한 음식이다. 이를 중심으로 네모나게 배열한다.


맛난 식사는 이미 과정에 있다. 요리과정은 열정이다. 집중과 시간의 분배 작업이다. 80분 순차적인 과정은 단 한 끼로 가는 여정이다. 한 번의 식탁이 완성되는 결정적 계기이다. 선택과 판단이 따르고, 집요한 추적과 계산이 부가된다. 계량은 경험에 의해 맛으로 결정 난다. 이 모든 과정은 80분 노력의 결과다.


매일 아침 요리는 역동적인 에너지의 장이다. 하루의 시작은 기획이고 생산이다. 이미 일주일 전에 확보된 구상이 현실화하는 순간이다. 매일 먹는 아침은 나를 결정한다. 우리 가족을 연결한다. 아침은 고유한 질서이고 축적된 체계다. 나로부터 시작되고 파생된 생활의 구조다. 매일 아침은 종류는 다를지언정 이렇게 태어난다. 아침이 나를 일깨우는 이유다. 나를 단련시키는 근거다. 내가 새롭게 태어나는 시스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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